원화 추락의 끝은..고환율·고물가·고금리 '악순환의 늪'

반기웅 기자 2022. 9. 22.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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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어진 복합위기 그림자
뒷골 당겨… 원·달러 환율이 13년6개월 만에 1400원을 넘어선 22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와 원·달러 환율 종가가 표시돼 있다. 전날보다 코스피는 0.63% 내린 2332.31에 마감했고, 원·달러 환율은 15.5원 오른 1409.7원에 거래를 마쳤다. 문재원 기자
원화 약세에 수입물가 상승
금리 인상·무역적자 등 촉발
고환율 현상 심화 ‘도돌이표’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서면서 ‘3고’(고환율·고금리·고물가)에 따른 복합위기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치솟는 환율이 수입물가를 끌어올리고 금리 인상을 이끌어 위기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 경제의 동력인 무역수지도 고환율 벽에 가로막혔다. 무역수지 적자 확대는 다시 원화 가치 하락을 불러 고환율이 심해지는 악순환도 예상된다.

미국의 고강도 긴축 여파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를 침체로 몰아넣어 한국 수출은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400원을 돌파했다. 1400원대 환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3년여 만이다. 한국 정부는 원·달러 환율 1400원을 마지노선으로 보고 구두개입과 미세조정 등을 단행했지만 이날 새벽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자이언트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고환율은 당장 물가를 추가적으로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수입물가가 상승해 연쇄적으로 국내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환율이 10% 오를 때마다 물가가 0.6% 상승한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고환율이 계속되면서 정부의 ‘10월 물가 정점론’도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고물가가 가계소비를 위축시킨다는 점이다.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 이후 경기 버팀목 역할을 해오던 민간 소비가 위축되면 수출마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하반기 성장동력이 실종될 수 있다. 이미 시장에서는 지금보다는 연말이, 연말보다는 내년 초가 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가계부채도 걱정이다. 한국은행은 환율 방어를 위해 다음달 빅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가능성을 내비쳤다. 올해 6월 말 기준 가계대출은 1757조9000억원으로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오를 때마다 가계대출자들의 이자 부담은 3조4455억원 늘어난다. 환율을 잡기 위한 금리 인상이 자칫 가계부채 폭탄에 불을 붙일 수 있다. 부채 상환 여력이 떨어지는 자영업자도 금리 인상을 버티기 어렵다. 3월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 규모는 960조7000억원으로 1000조원에 육박한다.

산업계가 짊어질 부채 부담도 커진다. 대출 비중이 높은 국내 기업은 높은 이자 비용을 떠안아야 한다. 달러 결제가 많은 항공, 해운 등의 산업에서 문제가 크게 불거질 수 있다. 금융 방어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은 충격이 더 크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국내 제조기업 307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고금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응답한 기업은 61.2%에 달했다.

원화 가치 하락 속에 무역수지는 적자를 거듭하고 있다. 이달 20일까지 누적 무역적자는 292억1300만달러로 연간 기준 역대 최대인 1996년 기록(206억2400만달러)을 웃돌았다. 무역적자 규모가 커지면서 대외건전성 지표인 경상수지도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아졌다. 경상수지가 적자로 전환하면 원화 가치가 추가적으로 떨어질 수 있다.

미 통화스와프 체결 미온적
당국 시장 개입도 효과 미미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는 것이 정부로서도 괴롭다. 정부는 이날 오전 구두개입성 발언을 내놓았지만 환율 상승세를 꺾지 못했다.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은 미국 측이 큰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지금은 거시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한국 경제가 고환율, 고금리를 언제까지 감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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