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명의 산실 루브르·대영·구겐하임·메트로폴리탄 ‘변화의 주역들’

루브르 첫 여성 관장부터 구겐하임 네덜란드인 관장까지…다양성·실험정신의 시대 개막
[사진=l-b-dupe]

‘인류 문명의 보고’라 일컬어지는 세계 유명 박물관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발맞춘 전시 기술의 업그레이드, 관람객을 위한 전시 편의성 및 소통 확대 등 전통과 미래의 균형을 찾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변화의 중심에는 전문성과 혁신성을 동시에 겸비한 리더들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해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영국 대영박물관, 미국 구겐하임·메트로폴리탄 등 각 나라를 대표하는 박물관 관장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과거와 미래를 잇는 ‘연결자’ 역할에 매진하고 있다.

의미 있는 2024년…루브르·대영·국립중앙박물관 모두 새 사람 주도 새 단장 한창

국가에서 소유·운영 중인 국립중앙박물관은 1945년 개관했다. 박물관엔 무려 150만여점에 달하는 한국의 고미술품, 유물 등이 보관돼 있는데 한류 열풍에 힘입어 매 년 관람객 숫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엔 관람객 418만명을 동원하며 개관 이래 최대 규모의 관람객 기록을 세웠다. 전 세계 박물관 중 관람객 방문 순위 6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아시아권에 위치한 박물관 중 세계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린 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유일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수장은 김재홍 관장이다. 1965년 전임 윤성용 전 관장과 같은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학교에서 국사학을 전공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3년 학예연구사로 국립중앙박물관과 인연을 맺은 그는 유물관리부, 역사부를 거쳐 국립춘천박물관장을 역임하는 등 약 20여년 간 박물관 관련 행정 업무를 수행했다. 퇴임 후에는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한국학연구소장,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다 올해 7월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발탁됐다.

▲ 올해 7월 취임한 국립중앙박물관장 김재홍. [사진=국립중앙박물관]

1793년 개관한 루브르박물관은 모나리자와 밀로의 비너스 등 세계적 명작을 소유한 명실공이 세계 최대 규모의 미술관이다. 이집트 문명부터 근대 미술까지 약 7500여점의 작품을 보관 중이다. 루브르박물관을 이끌고 있는 인물은 로랑스데카르(Laurence des Cars) 관장이다. 2021년 228년 루브르 역사상 최초의 여성 관장으로 더욱 유명한 그는 1966년 프랑스 앙토니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문화 분야의 명문가로 유명하다. 아버지는 저명한 언론인이자 역사학자인 장 데카르 박사이며 할아버지는 베스트셀러 소설가인 기 데카르 작가다.

어린 시절부터 예술 분야와 가까웠을 수밖에 없던 로랑스데카르 관장은 파리 소르본 대학교와 루브르 예술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이후 1994년 오르세 미술관 큐레이터로 경력을 시작했고 2014년 오랑주리 미술관장, 2017년 오르세 미술관장을 각각 역임했다. 오르세 미술관장으로 재직 당시 그는 보수적인 프랑스 예술계와는 다른 진보적인 행보로 대중적 관심을 받았다.

‘흑인 모델들: 제리코에서 마티스까지’ 전시를 통해 프랑스 미술사 속 흑인의 역할을 재조명했으며 나치에 약탈당한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을 유대인 후손에게 반환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당시 프랑스 여론은 “학자적 전문성과 외교관의 처세술을 겸비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그의 파격 행보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루브르 박물관의 연간 1000만 명이 넘는 관람객 분산을 위해 제2출입구 신설을 추진하고 있으며 하루 입장객을 4만5000명에서 3만 명으로 제한하는 등 루브르박물관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세계 최초의 국립 공공박물관으로 널리 알리진 영국의 대영박물관은 1759년 한스 슬론 경(Sir Hans Sloane)이 기증한 약 7만1000점의 예술품과 역사 유물, 자연사 표본 등을 기반으로 설립됐다. 이후 영국 정부의 식민지 확장 정책에 의해 세계 각지에서 가져온 수집품이 늘면서 박물관 규모도 점차 커졌고 현재는 인류의 태동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세계 각 문명권의 역사 문화를 망라하는 800만점 이상의 유물과 민속 예술품이 보관돼 있다. 루브르박물관, 바티칸박물관 등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대영박물관의 수장은 니콜라스 컬리난(Nicholas Cullinan) 관장이다. 올해 3월 취임했다. 1977년 미국 코네티컷주에서 영국인 부모 아래 태어난 그는 4세에 영국으로 이주해 웨스트요크셔 헵든브리지에서 유년기 시절을 보냈다. 홈스쿨링으로 교육받은 그는 세계 최고의 미술사 연구대학으로 명성이 자자한 코톨드 예술학교에 입학해 그곳에서 석·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 루브르박물관 로랑스 데카르 관장(사진 왼쪽)와 대영박물관 니콜라스 컬리난 관장. [사진=루브르박물관, 대영박물관]

2006년 구겐하임 미술관에 취직해 큐레이터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는 테이트 모던의 국제 현대미술 큐레이터를 지냈다. 테이트 모던에서 일하던 당시, 앙리 마티스 특별전을 기획해 5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을 동원하는 성과를 거뒀다. 2015년에는 과거 대학 시절 방문객 도우미로 일했던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 관장에 올라 세간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당시 그는 1896년 박물관 개관 이래 최대 규모인 5300만 달러의 리노베이션을 성사시켰으며 영국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유색인종 초상화로 꼽히는 조슈아 레이놀즈의 ‘마이의 초상’을 구매하기도 했다.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 관장 시절의 성과를 인정받아 올해 그는 대영제국 훈장(OBE)를 수여받았다. 이후 내부 큐레이터가 1800점이 넘는 유물을 절도한 사건으로 혼란에 빠진 대영박물관의 구원투수로 발탁됐다.

세계 미술사의 중추로 떠오른 미국 뉴욕…뉴욕 미술을 움직이는 두 명의 ‘빅마우스’

1937년 개관한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은 현대 미술의 산실로 불린다.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나선형의 박물관 건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피카소, 칸딘스키, 잭슨 폴록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다수 소장돼 있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의 수장은 마리엣 베스터만(Mariet westermann) 관장이다. 올해 6월부터 구겐하임 재단 산하 뉴욕·베니스·빌바오·아부다비 구겐하임 미술관을 총괄해 맡고 있다. 과거 리사 데니슨 관장이 뉴욕관을 맡아 관리한 적 있으나 재단 산하 미술관 전체를 이끄는 여성 수장은 마리엣 베스터만 관장이 처음이다.

그는 1962년 네덜란드 브리엘에서 태어났다. 윌리엄스 칼리지에 예술학을 전공했고 뉴욕대학교에서 예술사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자신의 고국인 네덜란드 관련 예술·교육 저서를 출간하는 등 네덜란드 미술사를 중심으로 경력을 쌓아 나갔다. 앤드류 W. 멜론 재단 부회장, 뉴욕대학교 예술학 연구소장, 클라크 미술연구소 연구부소장, 뉴욕대학교 아부다비 캠퍼스 부총장 등을 역임하며 미국 문화·예술계의 유력 인사로 거듭났다.

▲ 구겐하임 박물관 마리엣 베스터만 관장(사진 왼쪽)과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맥스 홀라인 관장 [사진=구겐하임 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마리엣 베스터만 관장은 구겐하임미술관 수장에 발탁된 이후 그동안 축적해온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대학 부총장으로 일할 당시 대학의 첫 노벨상 수상자인 월레 소잉카를 교수로 영입하고 시각예술·미디어 MFA 프로그램을 신설하는 등 영역 확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2026년 개관 예정인 구겐하임 아부다비 박물관 개관 준비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중동 지역의 긴장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 당초 예정대로 개관할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1870년 문을 연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미국 최대 규모의 종합 미술관이다. 반 고흐의 ‘밀밭의 삼나무’를 비롯해 모네, 렘브란트 등 거장들의 작품 200만점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19세기 미국의 문화적 부흥을 이끈 산실로 평가 받는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The Met)의 관장은 맥스 홀라인(Max Hollein)이다. 그는 1969년 출생의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2018년 8월부터 관장 직을 역임 중이다. 세계 주요 미술관장들의 모임인 ‘비조(Bizot)그룹’의 의장직도 함께 맡고 있다.

과거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유명 건축가 한스 홀라인의 아들로 더욱 유명한 그는 비엔나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비엔나 경제 대학교에서는 경영학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1996년부터 2000년까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인턴으로 시작해 5년간 수석 보좌관을 지냈다. 이후 31세의 젊은 나이에 프랑크푸르트 쉬른 미술관장에 발탁됐고 프랑크푸르트의 슈테델 미술관과 리비에그하우스 미술관 관장직도 동시에 맡았다.

그는 슈테델미술관 관장을 역임하며 사진, 여성미술, 현대미술 컬렉션 확장 등의 성과를 이뤘다. 덕분에 슈테델미술관은 독일 미술 비평가 협회가 꼽은 ‘2012년 올해의 박물관’에 선정됐다. 또 리비에그하우스박물관은 대대적인 개편을 시도해 박물관 역사상 최대 방문객을 유치해 호평을 얻었다. 이후 2016년 샌프란시스코 미술관 관장을 거쳐 2018년 미국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관장직에 올랐다.

미국 현지에선 관료적 색채가 강했던 이전 관장들과 달리 그는 제프 쿤스부터 고전 미술까지 폭넓은 전시를 기획하는 실무형 관장이라는 평가가 많다. 특히 현대미술을 고전 작품과 조화롭게 전시하는 등 전시 기획력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 주요 미술관장들의 모임인 ‘비조(Bizot)그룹’의 의장직도 함께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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