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명 넘는다"는 무당… 정부엔 '없는 사람들'
경찰·교사보다 많다는데... 실태 조사는 전무
무속인 상당수 사업자 등록 안 해 과세 공백
문화유산 차원에서만 무속인 인정하고 지원
"전국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존재" 방치된>
편집자주
하늘과 땅을 잇는 원초적 존재, 무당은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 미신으로 치부되기도 하고 범죄의 온상이 될 때도 있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통해 위로를 받기도 한다. 한국일보는 석 달간 전국의 점집과 기도터를 돌아다니며 우리 곁에 있는 무속의 두 얼굴을 조명했다. 전국 어디에나 있지만, 공식적으론 어디에도 없는 무속의 현주소도 파헤쳤다. 문화 코드로 자리 잡은 무속이 나아갈 길에 대해서도 모색했다.
"한국에는 무속인 30만 명이 있으며, 한국인 160명 중에 1명꼴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2007년 '최신 기술이 발달한 한국에서 무속이 부흥하고 있다'는 기사에서 보도한 내용이다. NYT는 이 수치의 출처로 '한국 예배자 협회'(Korea Worshipers Association)를 들었는데, 국내 최대 무속인 단체인 대한경신연합회(경천신명회)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경천신명회는 최근까지도 국내 무당 규모가 30만 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무당이 경찰관(13만여 명)이나 초등학교 교사(19만여 명)보다 많다는 얘기다.
문제는 해외 유력 언론까지 보도하는 '무당 30만 명 주장'을 검증할 수단이 없다는 데 있다. 무속 관련 정부 통계는커녕 최소한의 실태조사 결과도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무속인은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존재다. 도심 곳곳에서 점집 간판을 볼 수 있고, 온라인 공간은 물론 방송에서도 무당 콘텐츠가 쏟아진다. 무속인 사기 범죄도 심심찮게 발생하는데도, 정부는 무속을 없는 존재로 취급한다. 기본적인 관리 시스템이 부재한 것은 물론, 무속을 어떻게 규정할지에 대한 기준 자체가 없다.
"의사 연봉 안 부럽다"는 무당도 사업자 등록 X
무속인 규모는 통계청이 매년 실시하는 전국사업체조사를 통해 개략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2022년 기준 '기타 개인 서비스업'에 속하는 '점술 및 유사 서비스업' 사업체 수는 9,391개이고, 종사자 수는 1만194명이다. 무속 단체가 주장하는 30만 명과는 차이가 크다.
게다가 무속인 상당수가 국세청에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아 실제 규모는 더욱 파악하기 어렵다. 본보가 무당 12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61.4%가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무속인은 음식점이나 숙박업 사업자 등과 달리 지자체에 영업 신고를 할 필요도 없다.
사업자로 등록하지 않으면 세금 탈루로 이어질 수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점이나 사주를 봐주는 분들은 영세해 대부분 면세 대상"이라며 "억대 수익을 내는 일부 무속인이 과세 대상인데, 이런 분들은 사업자 등록이 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무당들 얘기는 국세청 설명과 달랐다. 서울 논현동에서 만난 무당은 "하루에 10명씩 손님을 받으면 한 달에 3,000만 원을 번다. 의사, 변호사 연봉 부럽지 않다"면서도 "사업자 등록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점집뿐 아니라 굿당과 기도터 역시 관리 사각지대에 있다. 본보가 지난 8월 경기 고양시에 위치한 굿당에 취재 협조를 요청하자 "기사 나가면 세금 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서울 인왕산 등에는 국유림을 점유해 무속인들에게 기도 공간을 제공하고 돈을 받는 기도터도 있었다. 서울국유림관리소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국유림은 공익용으로 사용되거나 보존돼야 해, 그런 (기도터 등) 용도로는 허가가 날 수 없다"며 "(미허가 시설물을) 적발하면 시정명령을 내리거나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말했다.
무속인 협회 "종교로 인정"... 정부 "정교 분리 원칙"
무속을 어떻게 규정할지에 대한 정부 방침도 명확하지 않다. 경천신명회의 이성재 이사장은 8월 본보 인터뷰에서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사단법인 한국민족종교협의회에 가입한 점을 들며 "무교(巫敎)가 종교로 인정됐다"고 주장했다. 민족종교협의회는 '7대 종단'으로 불리는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소속으로, 경천신명회 외에 천도교, 원불교, 대순진리회, 증산도 등 12개 단체가 민족종교협의회에 속해 있다.
정부는 헌법상 정교 분리 원칙에 따라 특정 종교를 승인하거나 인정하는 절차가 없다고 선을 긋는다. 문체부 관계자는 "민족종교협의회는 문체부가 허가한 법인이지만, 종교를 허가하거나 인정해 준다는 개념은 아니다"라며 "특정 교단의 가입 여부는 (정부가 아닌) 법인 정관에 명시된 기준과 절차에 따라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어떤 믿음 체계를 '정식 종교'로 인정할지 여부는 정부 역할 밖이란 얘기다.
하지만 기존 종교와 무속을 바라보는 정부 시각이 다르다는 점은 분명하다. 종교 지원 사업이 대표적이다. 문체부 측은 "불교, 기독교, 천주교 등 기성 종교를 대상으로 한 사업이 많다"며 "민족종교 중에선 천도교, 원불교 정도가 지원 대상"이라고 말했다. 2018년 문체부가 발간한 '한국의 종교 현황' 보고서에도 무속 관련 내용은 전무했다. 종단 규모나 조직화 정도에 따라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천차만별인 셈이다.
법원에선 무속 의식을 통상적인 종교 행위로 보기도 한다. 수원지법 안양지원은 수감 중인 딸을 가석방으로 빼주겠다며 굿을 하고 피해자로부터 3,180만 원을 받아 챙긴 혐의(사기)로 기소된 무당에게 지난 6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전통적인 관습 또는 종교 행위로서 허용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났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문화유산 차원 '전통 의식' 관리... 오히려 "돈 안 돼"
정부는 문화유산 차원에선 무속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현재 △강릉단오제 △하회별신굿탈놀이 △진도씻김굿 △동해안별신굿 △남해안별신굿 △서울새남굿 등 12개 무속 의식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무형유산마다 보유자(과거 인간문화재)에게는 한 달에 200만 원, 전승교육사에게는 90만 원을 지원한다.
하지만 정부가 인정한 무형유산은 이미 거대한 사회 현상이 돼버린 무속 행위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더구나 국가 지원을 받는 무당 자체도 매우 적다. 본보가 국가유산포털에서 확인한 결과, 무속 관련 무형유산 보유자이면서 무속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은 3명에 불과했다.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다 보니, 무형유산 보유자가 손님에게 점사를 봐주고 굿을 해주기도 한다. 강릉단오제 보유자인 빈순애(65) 강릉단오제보존회장은 본보 인터뷰에서 "강릉단오제 전수교육이 주된 일이지만, 일이 없을 때는 개인사업으로 손님도 받는다"며 "돈 차이가 많이 난다. 손님을 받는 무당은 먹고사는 데 문제없고, 전통의식을 주로 하는 무당은 문화행사나 공연이 아니면 빛을 못 보고 산다"고 토로했다.
무속 전문가인 조성제 무천문화연구소장은 "정부는 무교인들을 제도권 밖으로 몰아내면서도 무형문화제로 지정하는 이중적 행태를 취하고 있다"며 "무속인 관리와 연구 차원에서라도 최소한의 실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
팀장 : 이성원 기자
취재 : 손영하·이서현 기자, 이지수·한채연 인턴기자
사진 : 하상윤·정다빈 기자
영상 : 김용식·박고은·박채원 PD, 김태린 작가, 전세희 모션그래퍼, 이란희·김가현 인턴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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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도발' '복' 그리고 '쩐'... 무당 70명이 그날 대관령 오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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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된 무당은 고통받는 이들의 나침판… 신 무서운 줄 알면 나쁜 짓 못해"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이성원 기자 support@hankookilbo.com
이서현 기자 he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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