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양의 입에서 나온 한 문장은 짧았지만, 그 파장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턱이 돌아갈 만큼 맞았다”는 말은 누군가의 분노를 자극하기 위한 과장이 아니라, 한국 프로야구가 오랫동안 덮어두고 지나온 시간의 실체를 그대로 드러낸 고백이었다. 웃으며 말했지만, 웃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웃음 뒤에는 10년 넘게 삼켜온 침묵과 체념이 묻어 있었다.

이태양이 꺼낸 기억은 2012년 겨울, 일본 미야자키 교육리그였다. 한화 이글스 2군 소속이던 시절,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다리를 절뚝이며 훈련을 소화하던 순간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코치의 눈에 보기 좋지 않았다는 것. 그 대가는 상상을 넘었다. 풀 스윙으로 날아든 뺨 다섯 대. 이태양의 표현을 빌리면 “턱이 툭 돌아갈 정도”였다. 지도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기에는 너무 노골적인 폭력이었다.
더 무거운 건, 그 장면이 특별한 사건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태양은 분노하지 않았다. 오히려 “코치님 입장에선 내가 잘못했을 수도 있다”는 말을 먼저 꺼냈다. 이 말은 변명이 아니라, 그 시절 야구판에서 선수들이 스스로를 설득하던 방식이었다. 맞는 이유를 찾는 게 아니라, 맞아도 되는 이유를 만들어야 했던 환경. 폭력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순간, 선수는 문제아가 되던 시대였다.

그날 이후 이태양은 정민철이라는 어른을 만난다. 폭행 장면을 직접 목격했던 정민철은 훈련이 끝난 뒤 이태양을 자신의 방으로 불렀고, 그곳에서 이태양은 처음으로 울었다. 턱이 아파서가 아니라, 마음이 무너져서였다. 지도자에게 맞고, 또 다른 지도자 앞에서 울어야 했던 스무 살 남짓의 투수.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은 두 사람을 더 가깝게 만들었고, 훗날 이태양이 정민철의 등번호 55번을 물려받는 인연으로 이어진다. 폭력과 보호, 두 얼굴의 지도자가 동시에 존재했던 시절이었다.
이태양의 고백이 더 무거운 이유는, 그가 실패한 선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효천고를 졸업하고 한화에 입단해,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냈고, 팔꿈치 수술과 긴 재활을 버텼다. 한화의 암흑기를 온몸으로 견뎠고, SSG 랜더스에서는 통합 우승의 한 축이었다. FA로 다시 친정에 돌아왔고, 퓨처스리그에서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스스로를 증명했다. 그런 선수가 이제 와서 “그땐 맞았다”고 말한다는 건, 개인의 한풀이가 아니다. 그 시절을 통과한 수많은 선수들의 목소리를 대신 낸 것이다.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차라리 때려라’라는 농담 같은 말이다. 깜지를 쓰게 하고, 정신적으로 몰아붙이는 것보다 차라리 맞는 게 낫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웃음이 터졌지만, 그 웃음은 씁쓸했다. 육체적 폭력이 일상이던 환경에서, 선수들은 폭력의 종류를 비교하며 살아야 했다. 이게 더 낫다, 저게 덜 아프다. 선택지가 있다는 착각 속에서 침묵이 유지됐다.
이태양은 끝내 가해자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지금 지도자로 있으면 안 된다”는 말만 남겼다. 이 말은 복수가 아니라 경고에 가깝다. 야구는 변해야 하고,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선언이다. 이미 시대는 달라졌고, 폭력은 더 이상 ‘낭만’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과거를 미화하려는 시선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강해졌다”는 말은 결과론일 뿐,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이태양은 이제 KIA 타이거즈에서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있다. 그를 때린 코치는 잊힐지 몰라도, 울던 제자를 감싸 안았던 방의 온기와 아침 식사를 챙겨주던 김응용 감독의 기억은 그의 공에 남아 있을 것이다. 같은 야구라도, 어떤 손에서 배웠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생이 된다. 이태양의 고백은 그래서 중요하다. 과거를 들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야구는 여전히 낭만의 스포츠다. 하지만 그 낭만은 누군가의 뺨 위에서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이제는 정말로, 폭력 없는 마운드에서 공이 날아가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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