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김인권은 보기와 달리(?) 학창 시절 공부로도 유명했다.

고등학교 시절 수능에서 상위 0.8%의 성적을 기록하며 서울대를 포함한 여러 대학에 원서를 냈지만, 최종 선택은 동국대 연극영화과였다.

원래 꿈이 영화감독이었기 때문. 서울대 갈 뻔했다는 소문에 대해 김인권은 “서울대 가장 낮은 과를 썼지만 떨어졌고, 애초에 목표는 동국대였다”고 웃으며 해명했다.

학창 시절에는 어두운 그늘도 있었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 손에 맡겨졌고, 고등학생 때 어머니가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후 김인권은 "전교 1등 하면 엄마가 살아날 것 같았다"며 미친 듯이 공부했고, 결국 고3 말 전교 1등이라는 성적을 찍어냈다.
수능 0.8%라는 성적표는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였다.

원래는 영화감독을 꿈꾸며 연출을 전공했지만, 우연히 ‘송어’라는 영화의 오디션에 참가하며 배우로 첫발을 내디뎠다.
처음에는 "배우가 개런티가 더 많더라"는 현실적 이유도 있었지만, 결국 연기의 매력에 빠졌다.
‘송어’ 출연 이후에도 ‘조폭마누라’, ‘말죽거리 잔혹사’ 등에서 감초 역할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배우의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데뷔 후 무려 11년간 무명 시절을 견디며 김밥 배달, 과외 등으로 생활비를 벌었다.
심지어 김밥 배달을 하다 초등학교 동창과 마주쳐 민망했던 기억도 고백했다.
“팬레터도 없었고, 나를 찾는 사람도 없었다”며 공백기 동안 심한 외로움과 생존 공포를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인생을 바꾼 작품, 영화 '해운대'

그런 김인권에게 전환점이 된 작품은 바로 영화 ‘해운대’였다.
설경구의 추천으로 캐스팅된 그는 ‘오동춘’ 역으로 1000만 관객의 사랑을 받으며 확실히 각인됐다. “해운대 전과 후로 배우 김인권이 나뉜다”는 윤제균 감독의 말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해운대’ 이후에도 김인권은 안주하지 않았다. “나는 무비스타가 아니라 관객이 보고 싶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자신의 외모에 대해선 "언젠가 연기력으로 미남 기준을 바꿔놓겠다"는 소박한 포부도 밝혔다.

늘 생존을 고민해온 김인권은 자신을 '생계형 배우'라 말한다.
"예전보다 역할이 주어질 때마다 감사하고 있다. 언젠가 연기의 고향인 무대로도 돌아가고 싶다"고 전했다.
모든 사진 출처: 이미지 내 표기
Copyright © by 뷰티패션따라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컨텐츠 도용 발각시 저작권 즉시 신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