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전 세계 관객들이 차기작을 기다리는 감독, 봉준호의 신작이 드디어 공개됐다. <기생충>으로 칸과 아카데미를 석권한 봉준호의 신작 <미키 17>은 캐스팅부터 개봉일 결정까지 영화 제작 모든 과정에 관객들의 호기심과 기대를 품은 눈빛이 닿아있었다.
<미키 17>로 여덟 번째 작품을 선보이는 그는 지금 ‘봉8’이다. ‘봉7’는 <기생충>, ‘봉6’은 <옥자>다. 영화가 한 편씩 개봉될 때마다 영화 속 ‘미키’처럼 죽었다 살아나며 새로운 번호를 부여받는 것 같다며 슬그머니 농을 던졌지만, 적어도 봉준호가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모두 담아냈다는 자신감은 충만했다.
- 감독
- 출연
- 아나마리아 바토로메이,패스티 페런,마이클 먼로,카메론 브리튼,크리스천 패터슨,로이드 허친슨,다니엘 헨셜,봉준호,에드워드 애슈턴,최두호,디디 가드너,봉준호,제레미 클레이너,피트 치아페타,피터 도드,제시 에르만,메리앤 젠킨스,앤드류 래리,브래드 피트,앤서니 티타네그로,다리우스 콘쥐,피오나 크롬비,제이슨 녹스-존슨턴,앨리스 펠튼,캐서린 조지,샤론 마틴,정재일,양진모,댄 글래스,최태영,장희철,프랜신 마이슬러
- 평점
<기생충>(2019)의 거대한 성취 후 첫 번째 장편영화다. 많은 작품의 연출 제안들이 있었을 것 같은데도 <미키 17>을 선택한 이유와 한국 영화가 아닌 할리우드 영화를 택한 점도 궁금하다.
<기생충>을 작업하고 있을 때, 이미 두 가지 프로젝트를 더 준비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애니메이션이었는데 2018년 말, 2019년 초 작업을 시작했다. 캐릭터 디자인, 구성과 같은 초기 작업들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6년째 이어오고 있다. 또 하나는 실사 영화인데 영국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기생충> 오스카 캠페인 중 런던에 갔을 때 실제 사건과 연관된 분과 부모님 등을 만나고 난 후 약간의 윤리적 딜레마에 봉착하게 됐다. 이분들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내가 어떻게 해야 될지에 대한 몇 가지 모순점을 자각하며 꽤 오랫동안 준비해 온 것을 스스로 접게 됐다. 2017년, 2018년부터 꽤 오래 준비해 오던 작품을 접다 보니 마음이 허하고 허무하던 차에 마침 그때 <미키 7>이라는 소설을 플랜 비 엔터테인먼트에서 보내준 거다. 나와 <옥자>(2017)를 함께 했던 회사의 인연 있는 프로듀서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게 워너브러더스에서 판권을 산 소설이라고 하더라. 아직 출간되지도 않은 소설인데 콘셉트가 흥미로워서 그런지 워너브러더스가 판권을 산 거고, 이 소설이 조금 독특하니까 독특한 영화를 많이 찍는 플랜 비에 보냈고, 소설이 기이하니까 또 이상한 영화를 많이 찍는 내게 보내졌다. 이렇게 흘러 흘러 내게 왔는데 읽어보곤 바로 매혹이 된 거다. 정확하게 말하면 14페이지 정도 되는 요약본이었는데 콘셉트가 너무 재미있었다. 죽고 리프린팅되고 또 죽고 리프린팅되고. 죽는 게 직업이다. 무슨 산업재해 전문 노동자도 아니고 이게 되게 이상한 거지 않나. 휴먼 프린팅이라는 독특한 설정 속에서 인간적인 이야기를 다뤄볼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괴물>(2006) <설국열차>(2013) <옥자>가 넓게 보면 다 SF 영화들인데 이 장르에 대한 애정도 있다 보니 덥석 하게 됐다. 그게 2020년 여름의 상황이었고, 2021년에 시나리오를 썼다. 이게 되게 중요한 대목이다. (웃음) 2021년도에 다 완성된 시나리오대로 찍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 이전에 다 썼다는 것을 꼭 알아주기 바란다. (일동 웃음) 미국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저격 사건 이후 재촬영을 해서 넣은 것이냐는 이상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2021년 시나리오를 썼고, 미국 대선 한참 전인 2022년에 런던에서 다 촬영을 했고, 2023년에 후반작업을 했다. 타임라인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설국열차> <옥자>에 비해 2~3배나 많은 1억 2000만 달러의 예산이 투입된 블록버스터다. 흥행에 대한 부담도 있을 것 같다.
늘 부담스럽다. 개봉을 앞둔 지금 불안하고 초조한 상태다. 작품의 규모와는 상관없다. 내가 지금 ‘봉8’ 상태다. <기생충>이 ‘봉7’ <옥자>가 ‘봉6’ <설국열차>가 ‘봉5’. 영화 한 편 찍을 때마다 나도 온몸이 갈려 나가는 듯 매번 죽었다 깨어나는 느낌이다. 여러 번 죽어도 매번 두렵고 싫은 영화 속 미키(로버트 패틴슨)처럼 나도 마찬가지다. 초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보이니까 신나기도 하고, 복합적인 심정이다.
원작의 우주선 지도자 에로니모 마셜은 영화 속에선 케네스 마셜(마크 러팔로)로 이름이 바뀌었다. 또한 원작에 없는 아내까지 함께하는 설정으로 바꿨는데 이유가 있나.
왜 바꿨지? 거기엔 단계가 있었는데. 왠지 케네스라는 이름이 정치인 같지 않나? (웃음) 부인 이름인 ‘일파 마셜(토니 콜렛)’은 더 독특하다. ‘일파’가 북유럽의 이름이라고 한다. 원작에서는 역할 자체가 없는 부인이 등장해 독재자가 커플로 나오면 블랙 코미디적 느낌이 있을 것 같아 그렇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스티븐 연이 연기한 ‘티모’도 사실 원작과 다른 이름이다. 작품 속에 축구선수 이름을 많이 가져왔는데 ‘티모’도 ‘티모 베르너’라는 독일 축구선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근데 독일에서는 ‘티모’에 사기꾼이란 뜻도 있다고 하더라. 스티븐 연이 연기하는 티모가 바로 사기꾼 캐릭터 아닌가. (웃음)
<미키 17>을 보면서 봉준호 감독이 하고 싶은 거 다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누가 이런 말을 했다던데 어떤 규모의 예산이든 규모가 정해지는 순간, 그 예산에 10%만 더 플러스 되면 좋겠다고 말이다. 10%가 더 목마르다 하는 거다. 예를 들어 100억 원짜리 영화라고 하면 이게 110억 원만 됐어도 내가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었을 텐데 이런다는 거다. <미키 17> 제작비 관련 기사마다 다르게 나오고 있는데 정확히 1억 1800만 달러다. 요즘 환율로 계산하면 1700억 정도다. 처음에 워너브러더스에서 설정한 제작비 목표가 1억 2000만 달러였다. 자랑을 좀 하자면 내가 워낙 스토리보드대로 정확하게 찍고, 재촬영도 전혀 없이 모든 것을 일정 안에 딱 맞췄기 때문에 심지어 200만 달러나 남긴 거다. (일동 웃음) 그 대신 크리에이티브 관련한 측면에서는 일체의 타협이 없고, 말씀하신 것처럼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을 다 했다. (웃음) 스튜디오에서도 그걸 존중해줬고 원래 계약 자체가 감독이 최종 편집권을 갖는 계약이었으니까 말이다. 스토리보드 이야기를 잠깐 했는데 규모가 크건 작건 내가 준비한 대로 찍는 방식이라 이전 영화와 비교했을 때 작업하는 데 큰 차이를 못 느꼈다. 내 전작들에 대해 미국 업계에도 대부분 알려져 있어서 ‘저놈은 맨날 이상한 걸 찍는다’ 이런 자포자기 심정이 있지 않았을까. (일동 웃음) 좋은 의미에서 보면 내 작품 세계를 어느 정도 아는 상황이니 일하기 편한 면이 있었다.
영화 속 외계 생명체인 ‘크리퍼’를 보면 ‘옥자’의 동글동글한 이미지도 보이면서 귀엽다는 생각도 들더라.
동글동글하다는 표현을 해 줘서 반갑다. 정말 동글동글하고 싶었다. (웃음) 원작에서는 크리퍼가 지네처럼 생겼다고 묘사돼 있다. 그런데 나는 그런 느낌은 싫었다. 나와 <괴물>과 <옥자>를 함께 했고 이번 작품에도 참여한 장희철 디자이너에게 크루아상을 줬다. 이게 디자인의 출발점이다. 내일 크루아상을 한번 사 드시면서 자세히 보시길 바란다. 주름이 잡혀 있어서 늘었다 줄었다 하며 움직일 것 같이 생겼다. (일동 웃음) 그리고 하나 더 참조한 것은 아르마딜로라는 동물이다. 몸에 갑옷 같은 게 있는. 이 동물은 누가 건드리거나 공격하면 공처럼 동그랗게 몸을 뭉쳐서 굴러간다. 영화에는 마마 크리퍼와 주니어 크리퍼, 그리고 베이비 크리퍼가 등장하는데 강아지처럼 움직이는 베이비 크리퍼는 귀여움을 담당하고, 떼를 지어 수만 마리가 굴러가면서 마마 크리퍼를 보호하는 주니어 크리퍼는 액션을 담당한다. 마지막으로 마마 크리퍼는 엄청난 카리스마를 지닌 정치인 같은 느낌이다. 마치 여성 4선 의원이나 원내 대표 같은 그런. (웃음) 미키와 대화할 때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의 무게감이 천근만근처럼 느껴지지 않나.
영화를 보면 계급론이나 불평등 같은 문제의식과 식민주의, 자본주의 등에 대한 풍자도 있다. 거기에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특별히 마음에 두고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2시간 동안 정신없이 재미있게 영화를 보도록 만드는 것이 내 목표다. 절대 핸드폰을 안 꺼내도록 말이다. 전에 영화를 보러 갔는데 앞쪽 좌석에 계신 분이 유튜브를 보고 계신 거다. 나도 유튜브를 좋아하고 나쁜 것은 아닌데 내 영화를 상영할 때 누군가 그렇게 한다면 큰 상처를 입을 것 같다. 그래서 관객을 어떻게 2시간 동안 완전히 빠져들게 할 것인가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메시지는 그다음이다. 나는 메시지를 위해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재미와 아름다움을 위해서 만드는데 대신 영화가 말하려고 하는 바가 없지는 않으니 다 보고 집에 돌아가 자려고 누웠을 때 어떤 장면이나 대사가 뒤늦게 떠오른다던가 내가 겪었던 어떤 일과 비슷하다던가 아니면 어디서 봤던 뉴스와 연결되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마치 가랑비처럼 젖어 드는 무언가가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메시지나 주제를 코 앞에서 포크로 찍어 들이미는 것은 싫다.
<기생충>의 제작사인 바른손이엔에이의 곽신애 대표가 ‘봉 감독은 영화를 잘 만드는 천재이기도 하지만 일단 너무 착한 사람이다’는 말을 했었다. 지금까지 영화를 보면 인간애에 대한 통찰을 영화화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생각들이 영화에 어떻게 엮여 있나.
그럼, 영화는 못 만든다는 이야기 아닌가? (일동 웃음) 그렇게 봐주시면 감사하지만 또 그렇게까지 선하지는 않다. (일동 웃음) 해외 영화제 같은 데서 전공이 사회학인데 그 때문에 사회적인 담론이라던가 그런 맥락에 대해 유독 많이 통찰을 하려 하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냐고 질문을 받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대답하는 것은 실제로 나는 사회과학이나 철학 같은 내용들을 잘 흡수하지 못한다는 거였다. 내 머리가 회전하는 쪽은 그런 쪽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만화를 그리면서 자라서인지 거대담론이나 통찰 같은 것 대신에 자잘한 것에서 출발하는 디테일이나 구석진 코너에 있는 어떤 것들로부터 출발해 파고들어 가다 보면 그 동굴이 점점 넓어지는 경향은 있다. <괴물>의 예를 들어보면 허름한 매점을 운영하는 가족이 하필 운이 없게도 딸내미가 괴물에 납치되는데 이런 이들을 국가 시스템이 도와주기는커녕 바이러스 보균자라는 이름으로 경계한다. 이렇게 쭉 확대되는 거다. <미키 17>도 미키를 중심으로 생각했다. 원작 소설은 훨씬 더 깊은 철학적 주제들을 가져와 끌고 간다. 재출력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도 있고 안티매터(Antimatter)라는 반물질 같은 것 등. 이런 것을 설명하는 접근 방식이 아니라 다시 출력된 내 몸을 보면 어떨까, 죽었다가 다시 깨어났을 때 나의 친구들은 나를 또 반겨줄까 하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질문들로 접근한 거다. 극한의 직업 속에 있는, 죽을 수도 있는 미션에 계속 투입되고 그럴 때마다 아프고 고통스럽고 무섭고 싫은데 그래도 죽어야만 하고 다시 또 출력되는 입장에서 이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은 뭘까라는 궁금증에서 출발해 이 사회가 미키를 어떻게 대하는가에 집중했다. 미키는 마치 조선시대 대장장이처럼 중요하고 꼭 필요한 일을 하는데도 오히려 천시하고 박대한다. 반대로 크리퍼 커뮤니티는 베이비 크리퍼 하나가 잡혀 있으니까 그를 구하려고 모두 다 뛰쳐나온다. 크리퍼 커뮤니티는 하나를 구하려고 모두가 나서는 커뮤니티고 이쪽은 그 하나를 계속 죽이면서 자신들은 안전하게 머물고 싶은 곳인 거다.
‘미키 18’이 자신을 희생하는 선택을 하는데 원작과는 달리 감독의 색깔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결말이라 생각이 든다. 그리고 ‘미키 17’이 일파와 케네스가 등장하는 악몽을 꾸기도 하는데 이런 결말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악몽에 잔상이 꽤 남지 않나? 굉장히 공들여서 찍었다. 일파 마샬이 빨간 옷을 입고 나와서는 그녀가 누르는 스위치에 따라 더 마주하기 싫은 사람이 나온다. 최근의 어느 나라 상황과 비슷할 수도 있겠지만. (웃음) 미키가 밝은 햇살 아래 나샤(나오미 애키)와 함께 웃으면서 끝나는 해피 엔딩이기는 하지만 못지않게 그 악몽의 잔상도 남기를 바랐다. 언제든지 그런 악몽의 상황이 도사리고 있다는 거다. 그게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그나마 천만다행인 거는 그 악몽을 극복한다는 거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숨겨진 장르가 ‘미키 반스의 성장영화’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영화 제목이 다시 노출되며 처음에는 ‘미키 17’로 시작했다가 중간에 ‘미키 18’, 그리고 타이틀이 뒤집어지면서 ‘미키 반스’로 돌아가지 않나. 마치 이름을 되찾는 여정 같은 영화다. 이런 이유로 숫자도 ’18'로 한 거다. 많이 죽이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랬으면 ‘미키 87’, ‘미키 124’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일동 웃음) 그런데 ’17'과 ’18’, 이건 어른이 되는 숫자다. 18세면 한국도 그렇고 서구도 이제 성숙해지는 나이로 인정한다. 그 경계선을 생각하며 ‘미키 17’과 ’18'을 떠올렸다.
SF 장르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좋아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SF 문고 같은 것도 많이 사 봤었고 환상적이고 신기한 것들이 많이 나와서 좋아했는데 어른이 되면서는 우주건, 미래건, 외계 아니면 디스토피아건 뭐가 됐건 그것으로 인해 우리의 현재 모습을 반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처나 몬스터에 인간의 모습을 비추어 보면 인간이 얼마나 한심한가를 오히려 볼 수 있게 된다. <미키 17>이 2054년의 미래를 묘사하고 또 우주 멀리까지 가지만 미래에 가보았자, 우주에 나가보았자 여전히 인간들은 또 지질하고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는구나. 그런 반 SF적인 것 때문에 SF를 좋아한다고 하는, 모순되는 대답 같지만 이게 좋아하는 이유다.
지금까지의 작품 속 사랑 이야기는 동료애나 가족애, 인류애 그리고 동물에 대한 사랑이었다면 <미키 17>에서는 처음으로 남녀 간의 로맨스가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미키와 나샤의 로맨스가 이야기의 큰 동력으로 작용하는데 남녀 간 사랑의 힘에 대해 어떤 깨달음 같은 것이 있었던 건가.
지금이라도 한 번 더 늦기 전에 해야지 하는 생각은 있었다. <마더>(2009) 찍을 때 오히려 걱정이 많았다. 당시에 내가 만 39세였다. 당시엔 ‘와! 이건 뭔가 더 원숙한, 어떤 삶의 성찰 속에서 내가 한 63세쯤 되었을 때 찍어야 하는 스토리 아닐까?’ 시나리오는 내가 썼지만 이런 생각이 들어 불안했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김혜자 선생님이 옆에서 ‘저는 그렇게 되면 그랜드마더가 돼요’ 하시며 빨리 찍어야 된다고 하셨다. (웃음) 이번 작품 속에서 미키와 나샤의 사랑 이야기는 이 영화에서 정말 중요한 기둥, 척추와 같은 거다. 원작 소설의 많은 부분을 내가 바꿨지만 그것만큼은 바꾸고 싶지 않았다. 소설 속에서 나를 눈물 짓게 만든 챕터가 있는데 나샤가 미키를 끝까지 지켜주려고 하는 어떤 순간이었다. 그래서 결국 핵심이 이거구나 했다. 잔혹한 상황에 처해 있는 미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괴되지 않는 것. 그게 내가 이 영화에서 관객과 나누고 싶은 부분이었다. 나샤의 역할을 여기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크리퍼에 대해 미키가 완전히 다른 성찰을 하게 해주는 것도 나샤다. 나샤가 미키에게 ‘크리퍼가 너를 구해줬어’라고 말하는데 이 말을 들은 미키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시스템이 죽음으로 떠미는데 최초로 자신을 살려준 것이 크리퍼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SF 장르 영화지만 현실 사회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간 프린팅이라는 게 굉장한 SF적인 콘셉트 같지만 실은 슬프고 잔혹한 현실이 반영된 거다. 최근 몇 년간 유난히 짧은 텀으로 산재 사고들이 이어지지 않았나. 화력 발전소, 지하철 스크린 도어, 제빵 기계 사고 등으로 청년분들이 안타깝게 돌아가셨다. 그런데 아마도 이 사건들의 그 자리에는 또 다른 분들이 일하고 계실 거다. 환경이나 툴이 바뀌었을지는 몰라도 누군가 그 자리에서 퇴장하게 되면 새로운 누군가가 그 자리로 온다. 영화 속에서는 미키가 혼자 그걸 계속한다. 반복적으로 리프린팅되면서.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가 마치 SF 장르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만약 지금 이 시기를 영화화하게 된다면 어떤 점에 주목해 볼 수 있겠나.
무엇이든 영화화하려면 최소한의 시간적 거리가 있어야 하지 않나. 지금은 그 상황의 한복판에 있으니 그런 발상을 하기는 쉽지 않다. 작년에 계엄과 쿠테타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나왔을 때 44년이라는 시간의 갭을 가지고 영화를 보는 것인데도 심박수 챌린지를 할 만큼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고 또 다들 분하고 원통해하지 않았나. 영화에 나온 독재자의 모습에 피가 떨리고. 나도 매일매일 그냥 열심히 뉴스를 보는 입장이다. 국민들이 큰 상처를 받았다. 정신적인 집단 트라우마다. 하루빨리 모든 것이 다 잘 회복되면 좋겠다.
글 ・ 나우무비 심규한
사진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