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 사라질 직업이라더니.. 멀쩡하네?

이 기사들을 보라. 2013년 영국이 자랑하는 명문 옥스퍼드대가 702개 직업을 분석해 10년 후면 사라질 직업이라고 발표했는데 1위부터 보면 텔레마케터, 화물 창고 업무 종사자, 시계 수선공, 스포츠 경기 심판, 모델, 계산원 순이었다. 유튜브 댓글로 “10년 후 사라진다는 직업은 정말로 사라졌는지 취재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내년이 10년 후인 2023년인데 이 직업들은 사라지 않았다. 음...옥스퍼드답지 않네??

‘10년 후 사라질 직업’이라는 유행어를 만든 옥스퍼드대의 이 논문은 2013년 칼 베네딕트 프레이 옥스퍼드대 마틴스쿨(사회과학연구소) 교수와 마이클 오스본 공학과 교수가 공동 저작한 ‘고용의 미래 : 우리 직업은 컴퓨터화에 얼마나 민감한가(The Future of Employment: How Susceptible are Jobs to Computerisation?)’ 논문이다. 구글 스칼라 기준 1만666회나 인용됐을 정도로 핵인싸 논문.

이 논문은 “미국 전체 직업의 47%가 10년 또는 20년 내로 자동화가 가능한 고위험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며 702개 직업에 대해 인공지능(AI)이 얼마나 잘 대체할 수 있는지를 조사해 0점부터 1점까지 점수를 매기고 순위대로 나열해 놓았다.

이 순위표에서 컴퓨터화 가능 점수가 거의 만점에 가까운 직업들은 10년이 지난 지금 정말 사라졌을까. 우선 논문이 밝힌 AI 대체가 가장 완벽하게 이뤄질 수 있는 직업 1위는 텔레마케터였다.

휴대폰 판매 권유 스팸 전화 녹음
"안녕하세요 KT 온라인 대리점에서 전화드렸습니다. KT에서 통신사 이동하지 마시라고 이번에 최신 폰으로 기기만 변경해 드리는데요…”

분명한 건 적어도 대한민국에선 옥스퍼드대 석학들의 예측이 완벽히 빗나갔다는 것. 이밖에도 AI 대체 점수 0.99점을 받은 화물 창고 업무 종사자는 코로나19를 맞아 역대급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일손이 얼마나 부족하면 구글 광고로도 이 채용 공고가 자주 뜬다. 또 스포츠 심판은 야구와 축구에서 일부 비디오 판독이 활용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모델도 AI 대체 점수 0.98점을 받았지만 가상 인간 모델 로지가 아이유를 대체할 거라 믿는 이는 없다.

반대로 AI 대체가 정말 힘들 거라고 했던 직업들. AI 대체 가능성이 0.0028점으로 702개 직업 중 가장 낮았던 레크레이션 치유 강사는 오늘날 코로나19로 인한 야외 활동 감소로 직격탄을 맞았다. 702개 직업 중 12번째로 AI 대체가 어렵다는 숙박 관리자는 대한민국의 무인텔 시장을 간과한 듯하고 스무 번째로 대체가 어렵다는 초등학교 교사는 학교에 가르칠 아이들이 줄어들면서 그만큼 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 왜 이 예측들은 모두 빗나갔을까. 박가열 한국고용정보원 미래직업연구팀 연구원에게 이유를 물었다.

박가열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원
"완전히 사라지거나 그러지는 않았죠. 기존 연구들의 핵심은 기술적으로 대체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갖다가 접근한 거거든요. 인공지능 기술이나 로봇 같은 자동화 기술에 의해 어떤 특정한 직무가 사라질 수 있느냐 이런 거를 본건데 사실은 그런 직업은 또 사회적 이해관계가 있잖아요. 경제성이 또 있어야 하거든요. 로봇으로 구현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엄청 어렵거든요. 경제적 비용이 크기 때문에…”

참고로 J. R 섀클턴 영국 버킹엄대 경제학과 교수가 쓴 ‘기계화와 직업에 대한 걱정(Worrying about automation and jobs)’이라는 논문에서도 이 논문을 콕 짚어 정면 비판하고 있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기술 혁신에 따른 실직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① 미국 공장 노동자들을 실직으로 몰고간 경쟁자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중국과의 저가 경쟁이었으며 ② 영국에서 석탄 산업이 붕괴한 것도 광부가 로봇으로 대체됐기 때문이 아니라 석유 및 천연가스로의 대체, 기후 변화 등 복합적 요인에 따른 산업 재편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정리하자면 옥스퍼드대 석학들의 미래 직업 예측은 정확히 빗나갔다는 것. 당시 옥스퍼드대의 논문은 단순히 기술적인 대체 가능성만을 따졌을 뿐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이해관계나 로봇으로 대체할 때의 경제적 비용 등은 고려하지 않은 결정적 오류가 있었다. 또 사실 10년 후 일을 예측한다는 게 쉬울 리가 없다.

당신도 취재를 의뢰하고 싶다면 댓글로 의뢰하시라. 지금은 “지구가 2050년 종말한다는 썰이 돌던데 지구 멸망설은 어디까지 사실인지 취재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 중이다. 구독하고 알람 설정하면 조만간 취재결과가 올라올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