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정지 1년 6개월이 견책으로?” 신체 접촉 논란 김완기 재심에서 뒤집힌 ‘딱 한 가지

여기에 더해 직무태만 같은 항목을 어디까지로 볼 것이냐도 큰 변수가 됐다. 예를 들어 코스 사전 답사를 하지않은 점을 두고 ‘직무태만’이라고 단정할 수 있느냐는 문제다. 재심 판단은 대체로 “감독 재량으로 전략적 판단을 했을 여지가 있고, 수년간의 지도 성과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흐름이었다. 이 대목에서 스포츠 현장의 오래된 갈등이 보인다. 행정 문서의 언어로는 ‘직무태만’ 네 글자가 간단해 보이지만, 현장에서는 훈련 철학, 운영 방식, 선수 구성, 컨디션 관리 같은 변수들이 얽힌 복합 문제다. 결과가 좋으면 ‘노하우’가 되고, 결과가 나쁘면 ‘태만’이 되는 식의 사후적 판단이 끼어들기 쉬운 영역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징계는 감정이나 분위기가 아니라 구체적 사실로 가야 하고, 그 사실 판단의 출발점이 바로 절차다.

‘인천국제마라톤 결승선 장면’으로 불이 붙었던 김완기 전 삼척시청 감독 징계가 재심에서 뒤집혔다. 결론은 자격정지 1년 6개월이 취소되고, 견책으로 경감됐다. 스포츠계에서 견책은 사실상 가장 약한 경고다. 그래서 사람들은 곧장 “어떻게 이렇게까지 바뀌지?”라고 묻는다. 하지만 이번 건은 단순히 ‘감독이 살았다/죽었다’로 끝낼 일이 아니다. 오히려 스포츠 징계가 어떤 원리로 굴러가고, 무엇이 무너지면 결론이 완전히 뒤집힐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처음 논란이 커진 건 결승선 직후의 신체 접촉 장면 때문이었다. 이수민 선수가 골인하자 김완기 감독이 타월을 덮어주려는 과정에서 감싸는 듯한 모습이 잡혔고, 선수가 손을 뿌리치듯 반응하면서 여론은 순식간에 들끓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장면 하나로 판단을 끝냈다. 그런데 이번 재심 결론을 보면, 적어도 징계의 핵심 판단축은 그 ‘화면’ 자체가 아니었다. 재심 단계에서 강조된 것은 “그 사안이 성추행과 무관하다는 선수 측 입장이 이미 확인됐고, 심의 과정에서도 징계 항목의 중심으로 다뤄지지 않았다”는 취지다. 대중이 기억하는 ‘장면’과 위원회가 다룬 ‘징계 사유’가 처음부터 같은 선로 위에 있지 않았던 셈이다.

그렇다면 왜 뒤집혔나. 재심의 키워드는 한 단어로 ‘절차’다. 재심에서 핵심으로 지적된 것은 출석 요구서 등에 징계 사유가 충분히 구체적으로 적시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언제, 어디서, 어떤 행위가 문제였는지 제대로 고지되지 않으면 피징계자는 반박도 소명도 제대로 할 수 없다. 방어권이 흔들리면 결정의 정당성도 함께 흔들린다. 스포츠 징계는 법정 판결이 아니라고들 하지만, 현실에선 지도자의 커리어를 사실상 끊어버릴 수 있는 무게를 가진다. 중징계일수록 절차는 더 촘촘해야 한다. 이번 결론은 “내용 이전에 형식이 먼저 무너졌다”는 신호에 가깝다.

하지만 여기서 한쪽으로만 기울어도 위험하다. “절차에 흠이 있었으니 감독은 완전히 억울한 피해자”라고 단정하면, 반대편에 있는 선수들의 문제 제기는 공중에서 사라진다. 실제로 재심에서도 “일부 부적절한 언행이 있었던 점” 자체는 인정하는 뉘앙스가 남았다. 결국 이번 사건은 ‘무죄냐 유죄냐’의 단순한 구도가 아니라, 경중을 어떻게 나누고 어디까지 책임을 물을지를 두고 시스템이 스스로 시험대에 오른 장면이다. 견책으로 내려온 순간, 많은 사람은 ‘너무 가벼운 것 아니냐’고 말한다. 반대로 ‘늦게나마 바로잡혔다’는 목소리도 있다. 두 반응이 동시에 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징계가 무겁게 내려가도, 가볍게 내려가도, 절차가 신뢰를 얻지 못하면 어느 쪽도 납득시키지 못한다.

또 하나 놓치면 안 되는 건 ‘결승선’이라는 상황의 특수성이다. 마라톤은 골인 직후 탈진, 저혈당, 실신이 실제로 자주 벌어지는 종목이다. 지도자가 반사적으로 손을 뻗을 수 있다. 문제는 그 반사가 선수에게는 예상 못 한 통증이 될 수 있고, 중계 화면으로 박제된 순간 맥락이 잘려나간 채 도덕 재판처럼 번질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이런 사건을 줄이는 현실적인 해법은 “누가 옳다”를 외치는 것보다 훨씬 구체적이어야 한다. 골인 직후 안전 조치의 기준, 지원 인력 배치, 접촉을 최소화하는 방식, 선수의 사전 동의와 응급 매뉴얼 같은 것들이 더 촘촘해져야 한다. 그래야 선수는 덜 불안하고, 지도자는 덜 위험해진다.

이번 재심 결과가 남긴 메시지는 분명하다. 첫째, 스포츠 징계는 ‘중징계냐 무혐의냐’의 이분법으로 처리하면 곧바로 폭발한다. 경중을 촘촘히 나누는 기술이 필요하다. 둘째, 그 기술은 선의로 굴러가지 않는다. 고지, 증거, 진술 정리, 반박 기회 같은 기본 절차가 받쳐줘야 한다. 셋째, 여론은 대개 한 장면에 달라붙지만, 징계는 항목과 규정으로 판단한다. 이 간극이 존재하는 한, 비슷한 사건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결국 김완기라는 이름이 다시 논쟁의 한복판에 서게 됐지만, 더 큰 주제는 개인이 아니다. 이번 사건은 한국 스포츠가 ‘공정’을 말할 때, 그 공정이 어디에서 출발해야 하는지를 다시 묻는다. 절차는 약자를 보호하는 장치이면서 동시에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그 장치가 무너지면, 중징계는 쉽게 과잉이 되고, 경징계는 쉽게 봐주기로 의심받는다. 이번 재심이 남긴 가장 큰 숙제는 그래서 간단하다. 누가 이겼냐가 아니라, 다음번엔 이런 혼란이 반복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어떻게 더 단단하게 만들 것이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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