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싹오싹 원통 안 남자는 말이 없다

1945년 7월 13일

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영국은 전화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았다

전쟁 기간 중 공업도시였던 리버풀은 독일 공군의 폭격으로 쑥대밭이 되었고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마땅히 놀 거리가 없었던 아이들은 잔해를 뒤져 고물을 찾거나 숨바꼭질을 하며 놀았다

그중 한 어린이가 한쪽 공터에 굴러다니던 원통형 실린더 하나를 발견했다

길이 약 2미터 남짓한, 어느 교회당 뒷편 건물에서 환기장치의 일부로 쓰이던 원통은 1941년 영국 본토 항공전 당시 독일공군의 폭격을 맞아 건물이 무너지며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1943년 미군 공병대가 대민지원으로 남은 잔해를 철거하면서 밖으로 빼둔 뒤로는 원통은 동네 주민들이 벤치로 사용하던 중이었는데

이 몹쓸 꼬마들은 이 원통을 발로 차서 굴리는 장난을 치기로 한다

그러던 중 토미 롤리스라는 소년이 부식된 틈 사이로 봐선 안될 것을 보고 말았다

"야! 저길 봐! 신발이잖아!"

장난을 멈춘 아이들은 틈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신발을 끄집어 냈는데 신발 안에는 발뼈가 들어 있었다

혼비백산한 잼민이 새끼들은 어른을 불렀고

어른들은 경찰을 불렀는데

신고를 받고 출동한 영국 경찰이 용접기를 동원해 원통 일부를 절단하자 원통 안에는 남자의 시신 한 구가 들어있었다

경찰은 원통을 병원으로 옮기고 수사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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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병원으로 옮겨진 실린더

변사자의 시신을 부검하던 경찰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옷차림이 너무나도 고색창연했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여왕 시절의 옷차림을 하고 있는 남자는 그렇게 시간을 건너 그들 앞에 나타났다(1945년 당시 영국 국왕은 조지 6세로 조지 6세는 빅토리아의 증손자이다)

그외의 변사자의 특징은 다음과 같았다

1. 키 약 1.8m 가량의 성인 남성.

2. 사망 당시 연배는 25세에서 50세 사이

3. 두개골 일부가 파손되었으나 사인은 아님(정황상 공습이나 미군 공병대의 복구작업 도중 파손된 것으로 추정)

4. 머리와 몸통은 어느 순간 분리되었으나 이 역시 사인에 영향을 주진 않음(잼민이들이 굴리고 놀았던 걸 생각해 보자)

5. 시신은 반 백골 상태였으나 머리카락 일부가 두개골에 붙어 있음

6. 인상 착의는 흰색 셔츠와 빅토리아 시기 스타일의 양복 차림임

7. 시신의 유류품은 다음과 같음
(1). 베개 역할을 한 벽돌이 든 자루
(2). 1884년과 1885년에 작성된 일기 두 권
(3). 1885년 7월 3일자 우체국 도장이 찍힌 "A.E.해리스"가 "T.C. 윌리엄스"에게 보낸 엽서
(4). 심하게 부식된 열쇠 일곱 개
(5). 손수건
(6). 브로치
(7). 녹색바탕에 붉은 점이 있는 보석이 박힌 결혼 반지 반지에는 "런던 1859"가 새겨져 있음
(8). 1885년 6월 27일자 런던 철도 안내도
(9). 리버풀의 "윌리엄스 컴퍼니(TC Williams and Company)"에서 발행한 영수증
(10). 윌리엄스 컴퍼니의 회계 명세서

처음 경찰은 변사자가 살인사건의 피해자나 공습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판단했으나 훼손된 시신이 외상의 흔적이 아니며, 시신에 대한 시기도 맞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자 유류품의 토머스 크리건 윌리엄스(Thomas Creegan Williams)라는 이름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경찰의 상공인대장 조사 결과 윌리엄스 컴퍼니는 실제로 있었던 회사였다

페인트, 광택제 및 물감을 생산 판매하던 회사였는데 1885년 알수 없는 사유로 부도 처리가 되어 폐업했다

경찰은 시청 및 성공회 교회에 접수된 묘지 안장자 명단을 넘겨받아 관내 묘지와 전수조사하며 조사했으나 토머스 크리건 윌리엄스의 아내만 사망이 확인될 뿐 윌리엄스라는 이름은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1885년 이후 실종된 윌리엄스가 시신을 구했든, 대타를 살해했든 죽음을 가장하고 미국이나 호주 등으로 도피해 신분세탁을 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지만 당시 행정망의 한계로 60여년 전 인물의 행적을 조사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참고로 현재도 영국의 행정망은 애미가 뒤져서 영국 경찰은 2017년 영국 그렌펠 타워 임대아파트 화재 당시에도 사망자 및 실종자 확인에 어려움을 겪었다

반지에 쓰인 1859년 TC 윌리엄스는 아들을 한명 낳았던 사실이 확인 되었으나 회사가 부도난 뒤 집을 나가며 연을 끊었는지 경찰의 캠페인에도 그의 후손이라는 이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부족한 단서로 분투하던 경찰은 1945년 8월, 변사자의 신원을 토머스 크리건 윌리엄스로, 사인을 빚쟁이를 피해 도피생활을 하던 윌리엄스가 굴뚝에 들어갔다가 질식사 한 것으로 확정짓고 그를 묘지에 안장하는 것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전쟁이 끝난 영국에 수수께끼같이 나타난 남자는 누구였을까

시대를 타고나지 못한 불운한 사업가였을까?

모든 의문을 품은 채로 남자는 다시 세상에서 잊혀졌고

그대로 시간은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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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위치라고 함


미스터리 탭에 올린건데 날아가 재업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