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 데보라 스미스 “‘surely’ 번역 두고 한강 작가와 오랜 고민” [한강 노벨문학상]
2016년 ‘대산문화’에 기고한 번역후기
<채식주의자> 번역과정의 고민과 한강 작가와의 논의 담아 채식주의자> 소년이> 채식주의자>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의 장편소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등을 영문 번역한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도 주목을 받고 있다.
스미스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런던대학에서 한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매료돼 첫 20페이지를 번역해 영국의 유명 출판사 그란타 포르토벨로에 보냈다. 이는 <채식주의자> 영문 출간으로 이어졌고 스미스는 책 출간 후 아는 출판사와 평론가, 독자에게 모두 이메일을 보내 홍보했다. 이후 책은 대대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는 2016년 한강 작가와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은 작가와 번역가에게 공동 수여됨) 을 수상한 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작품의 한강 작품의 매력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강은 인간의 가장 어둡고, 폭력적인 면을 완벽하게 절제된 문체로 표현해내요. 그건 아마 시인으로 활동했던 경험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아직도 사람들은 한강이 지난(2016년) 1월 출판기념회를 위해 영국에 방문했을 때를 이야기해요. 책은 런던의 가장 큰 서점에서 매진되기도 했죠. 모든 사람들이 한강의 말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였어요.”
대산문화재단이 발행하는 계간 ‘대산문화’ 2016년 여름호에는 스미스가 기고한 <채식주의자> 번역 후기 ‘자극하고, 불편하게 만들고, 질문하고’가 실려 있다. 번역 과정의 고민들과 번역을 두고 한강 작가와 논의하는 과정 등이 담겼다.
그는 이 글에서 원서의 독서 경험을 최대한 보장하면서 해석의 다양성을 가능케 하는 번역을 고민했다고 전한다. 스미스는 한강 작가의 시적인 문체가 지닌 고유성과 보편적 소구력에 주목했다. “한강의 작품을 접할 때면 나는 장르를 불문하고 그 작품 특유의 분위기와 어조와 결이 하나의 정제된 이미지로 다가오는 경험을 종종 하는데, 이건 작가의 소설가이자 시인으로서의 이중생활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생생한 인상은 번역가에게 매우 유용하다.” 한강 작가 특유의 문체, 어조, 스타일, 음색이 하나의 고유한 인장처럼 각인되기에 각기 다른 모국어를 사용하는 독자들에게도 이를 최대한 잘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동시에 <채식주의자>가 한국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나 경향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받아들여질 위험들을 우려하기도 했다.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본 영혜는 자기 몸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젊은 여성, 즉 순응을 강압하는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가 그녀에게 지정해 준 역할을 철저하고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인물로 읽힐 소지가 컸다. 물론 이러한 해석이 다른 가능한 해석들에 비해 덜 맞는 것도 덜 틀린 것도 아니지만, 이러한 독해는 자칫 작품을 지나치게 단순화할 위험이 있다. 작품을 문학보다는 사회인류학적 보고서로 읽어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스미스는 그같은 섣부른 단순화의 사례로 2015년 런던 북페어에서 한강 작가가 ‘가족과 관계’를 논하는, 여성 작가들로만 구성된 패널에 들어갔던 사례를 들었다. 반면 당시 남성 작가들은 ‘정치와 예술’에 대해 논했다.
스미스는 소설을 번역하면서 한강 작가와 계속 의견을 주고 받았다고 전했다. 특히 소설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 영혜의 언니 인혜가 한 말, “꿈속에선, 꿈이 전부인 것 같잖아. 하지만 깨고 나면 그게 전부가 아닌 거란 걸 알지…(후략)” 번역을 두고 가장 오랜 시간 의견을 주고 받았다. 스미스는 이를 “surely the dream isn’t all there is?…”로 번역했다.
“‘surely the dream isn’t all there is?’ 하고 영혜에게 말하는 대목에서 (한강) 작가는 인혜의 확신 없는 머뭇거림이 영어권 독자들에게 전달되지 않을 것을 우려했고, 이에 나는 영어의 ‘surely’란 단어가 어째서 확신을 의미하기보다는 오히려 화자가 스스로를 설득하고자 노력하는 인상을 주기 마련인지 설명해야 했다.”
작품에 나오는 ‘오월의 신부’를 역사·문화적 특수성을 고려해 본래의 의미가 잘 전달될 수 있게 번역하는 방안도 같이 논의했다. ‘오월’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의미한다. 한강 작가는 <채식주의자> 폴란드어 번역처럼 ‘오월의 신부’를 ‘산타 마리아’로 번역했을 경우, 영국 독자들도 이를 납득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고 한다.
한편 스미스는 소주를 ‘코리안 보드카’와 같은 식으로 다른 문화의 단어를 차용해 쓰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바 있는데, <채식주의자>에서는 한국 특유의 관계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름 대신 한국식 호칭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다.
“영국 독자들은 유교적 위계에 따른 경직된 사회 질서를 자동적으로 이해할 가능성이 적었다. 내가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호칭을 옮김에 있어 개개인의 이름을 쓰기보다는 한국식으로 ‘처제의 남편’이라든가 ‘지우 어머니’와 같은 관계에 기반한 호칭을 사용하기로 정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채식주의자>의 영문 번역을 두고 한차례 오역 논란이 있었지만, 한강은 그의 번역을 “내 고유의 톤을 포착하고 있다”며 “실수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실수들이 소설을 전달하는 데에 결정적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데보라 스미스는 2016년 한국문학번역원 초청 기자회견에서 “‘채식주의자’ 번역이 완벽하지 않고 번역 당시 오류가 있었다 해도 독자들의 읽는 즐거움을 해치지 않았음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스미스는 한강 작가의 작품 외에도 배수아 작가의 <에세이스트의 책상> <서울의 낮은 언덕들> 황정은 작가의 <백의 그림자> 등을 번역하며 한국 문학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또 영국에서 아시아·아프리카 문학에 특화한 비영리 목적 출판사 ‘틸티드 악시스’(Tilted Axis)를 설립했다. ‘틸티드 악시스’는 한강 수상 소식이 알려진 10일 엑스(X)에 “한강의 수상을 축하한다”며 “또한 우리는 영어권에 그의 작품을 가져온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와 이예원(<희랍어 시간> 공동번역가)에게도 찬사를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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