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원 주문'에 입금은 1만3900원…장사 망쳐야 수수료 깎아준다?
2만원어치 음식 주문을 받았는데 입금되는 돈은 1만3900원. 배달앱 수수료 부담이 자영업자의 생존을 위협하고 외식 물가를 올린다. 그러자 정부는 자율적인 상생 방안을 모색한다면서 지난 7월 '배달플랫폼-입점업체 상생협의체’를 출범시켰다. 상생협의체는 강제성이 없다. 배달플랫폼과 입점업체가 이견을 좁히지 못할 경우 공익위원이 중재안을 제시하고, 중재도 성사되지 않으면 공익위원이 '권고안'을 내놓는다. 지금까지 상생협의체 회의를 7번 진행했지만 합의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공정거래위원회 홈페이지에 가면 상생협의체 회의에 관한 '보도참고자료'가 있다. 자세한 내용을 알려주지 않아 투명성 면에서 아쉽지만, 상생협의체 회의가 1차부터 6차까지 어떻게 흘러갔는지 대강은 파악할 수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1차 회의에서는 출범식을 개최한 후 향후 상생협의체의 운영 방안을 공유했다. 2차 회의에서는 공익위원들이 향후 논의 주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배달앱과 입점업체 양측이 이를 청취한 후 각자의 입장을 밝혔다. 또한 신한은행의 배달앱인 '땡겨요'가 회의에 참석해 공공배달앱 활성화 지원을 요청했다.
본격적인 논의는 3차 회의부터였다. 3차 회의에서는 수수료·광비 투명성 제고, 고객정보 등 주문 데이터를 입점업체에 공유하는 문제, 배달플랫폼의 불공정관행 개선이 논의되었다고 한다. 또 11개 지자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공공배달앱인 먹깨비가 회의에 참석했다. 그런데 3차 회의를 마치면서 놀랍게도 “다음 4차 회의에서는 중개수수료·결제수수료 등 △수수료 부담 완화 방안과 △상생방안 참여 인센티브 마련에 대하여” 의견을 청취하기로 했다. 아마도 배달앱들이 '상생방안에 참여할 경우 우리에게도 인센티브를 달라'고 주장했고, 그 주장이 일단 받아들여진 듯하다.
'인센티브'는 4차 회의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5차 회의에서 다뤄졌다. 공정위에 따르면 5차 회의에서는 “배달플랫폼사의 자발적인 상생협력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플랫폼사별 상생활동에 대한 인센티브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구성원 간 다양한 의견을 교환”했다. 그리고 이날 회의에서는 '결제 관련 수수료'과 '고객 정보 등 데이터 공유 방안'을 논의했다. 그러니까 상생협의체가 출범한 지 두 달이 지나고 회의가 다섯 차례 진행되는 동안, 자영업자에게 가장 시급한 중개수수료 문제는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일, 6차 회의에서 드디어 중개수수료 문제가 다뤄졌다. 그동안 시간을 끌던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운영사)은 상생안이라며 수수료 차등 적용안을 제출했다. 배달앱 매출액 기준 상위 60% 점주에게는 기존과 같은 9.8%의 중개수수료율을 적용하고 그보다 매출이 적은 점주에게는 수수료를 낮춘다는 안이다. 상위 60~80%에게는 4.9~6.8%를, 상위 80~100%에는 2%를 차등 적용한다. 60~80% 업체들의 경우 고객에게 1천원 할인 혜택을 제공하면 수수료율 6.8%를 적용하고, 1500원 할인 혜택을 제공하면 수수료율 4.9%를 각각 적용하겠다고 했다.
[기자의눈] K배달앱, 이젠 상생 나설 때(24.10.01 서울경제)
배민, 점주가 음식값 할인해야 수수료 인하…업계 반발(24.10.09 연합뉴스)
“수수료 낮춰줄게, 음식값 할인하면” 자영업자 울린 배민의 '상생'(24.10.09 서울신문)
“장사 망쳐야 수수료 깎아준다고?...말로만 상생 외치는 배달앱(24.10.14 매일경제)
한발 물러서는 배민…'영세식당엔 2%대' 차등 수수료 검토(24.10.07 조선일보)
'이해관계 제각각' 배달앱 상생협의체…6번 만나도 빈손(24.10.09 뉴스1)
[단독] ⑤ 배달의민족, '배달팁' 착취에 라이더는 '빈손'(뉴스후플러스 10.05)
상생협의체의 경과와 배민의 상생안에 대해 언론의 반응은 싸늘하다. <서울신문>은 “자영업자 울린 배민의 '상생'”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매일경제>도 기사 제목에 “말로만 상생”이라는 문구를 넣었다.
입점업체들은 배민의 차등수수료 방안이 현행보다 후퇴한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2만원짜리 음식 주문을 받을 경우 고객에게 1000원 할인을 제공하고 중개수수료는 600원 덜 내게 되므로 400원 손해라는 것이다. 또 고객에게 제공하는 할인은 배달앱의 점유율을 지키기 위한 것인데 그 비용을 왜 점주가 부담하느냐고 반문했다. <서울신문>에 따르면 입점단체들은 배민의 상생안을 거부하고 “중개수수료율을 최저 2%에서 최고 5%로 제한하는 방안”을 요구했다.
배민의 상생안은 계산기를 두드린 결과라고 봐야 한다. 어차피 매출의 대부분은 상위 60% 업체에서 나오기 때문에, 배민이 제시한 방법대로 차등 수수료제를 도입할 경우에도 수수료 수입은 크게 감소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배민은 앱 노출 알고리즘을 쥐고 있다. 배달앱의 생태를 잘 아는 자영업자들은 차등수수료가 도입될 경우 배달앱이 수입 극대화를 위해 매출 상위 60% 업체를 많이 노출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사실은 수수료를 몇 퍼센트로 하느냐만 가지고 갑론을박할 일도 아니다. <조선일보>는 배달앱들이 처음에는 월 정액제 수수료를 받으면서 업체들을 유인하다가 2022년에 음식값의 일정 비율로 수수료를 받는 정률제로 전환했다는 사실을 예리하게 지적했다. 초반에 적자를 감수하며 가격을 낮게 책정하고, 시장지배력을 확보한 후에는 무자비하게 이윤을 거둬들이는 전형적인 플랫폼 기업의 전략이다.
언론은 쿠팡이츠의 소극적인 태도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다. <뉴스1>은 “업계 2위로 상생협의체에 참여한 쿠팡이츠는 별도의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는 “음식배달업계에서 가장 먼저 무료배달을 도입하면서 공격적인 물량 공세로 배민을 위협하는” 쿠팡이츠가 아직 상생안을 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배민이 중개수수료를 9.8%로 올린 것은 지난 7월이었지만, 쿠팡이츠는 지난 2022년부터 이미 9.8%의 중개수수료를 받고 있었다. 입점업체들이 앱별로 음식 가격을 다르게 설정하지 못하게 하는 최혜대우 요구도 쿠팡이츠가 먼저 했다.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쿠팡 와우회원 10% 할인에 이어 무료배달을 도입한 것도 쿠팡이츠가 먼저였다.
충격적인 폭로도 나왔다. 쿠팡이츠가 입점업체와의 상생협력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법 위반 행위에 대한 제재를 감경하고 행정기관의 조사를 실태조사와 직권조사를 면제해 달라고 요구했다는 것. 지난 8일 산자위 국감에서 강승규 국민의힘 의원이 밝힌 사실이다. 한국의 법과 행정을 뛰어넘는 존재가 되고 싶은 쿠팡의 욕망이 드러난다.
상생협의체가 지지부진한 것에 대해 <서울경제>는 “문제는 상생협의체가 강제성이 없는 자율 기구라 진행 속도가 더뎌질 수 있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또 이대로라면 뚜렷한 결과물 없이 논의가 연말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면서, “변화는 배달 앱 운영사들의 행동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당연한 이야기다. 지금처럼 가면 상생협의체는 합의 없이 공익위원의 '권고안'으로 끝날 판이다. 윤석열 정부는 정말 몰랐을까? 배달앱은 시장을 지배하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자영업자는 작은 권한도 위협당하고 있는 가운데 '중재'만 해서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7차례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배달앱은 시간을 벌면서 수수료 수입을 챙겼다.
정부의 답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던 것 같다. 지난 7월 발표된 소상공인 대책에 담긴 영세 자영업자 배달비(연 30만원) 지원, 그리고 배달앱의 '자율'적이고 '단계'적인 수수료 인하. 배달앱 입장에서는 나쁠 것이 별로 없다. 세금으로 지원하는 배달비는 그대로 배달앱으로 흘러갈 것이다. 수수료는 최대한 버티다가 차등 적용 같은 방식으로 소폭 인하하면 된다.
정부가 정말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면 수수료 상한제를 신속하게 시행했어야 한다. 그리고 수수료와 별개로 음식배달 업계의 불공정 거래를 바로잡아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 공정위 조사 사안인 배달앱의 최혜대우 요구는 수수료 인상과 동전의 앞뒷면 같은 관계다. 생각해 보자. 시장 점유율 1위인 A배달앱이 수수료를 갑자기 44% 올렸다면 음식점주도 A배달앱에서만 음식 가격을 올려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A배달앱은 자사 앱에 올리는 음식 가격이 B, C배달앱에 올리는 가격보다 비싸면 안 된다고 점주를 압박한다. 매장 가격과 배달 가격을 동일하게 책정하는 음식점에 표식을 달아주기도 한다. 정부가 하지 않는 가격 통제를 배달앱이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것은 업체가 영세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독과점 플랫폼의 횡포에 공정한 거래 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 핵심이다.
대부분의 언론이 말하지 않은 것 하나. 배달앱들은 무료배달로 소비자에게 현금을 살포하는 대신 배달 라이더에게 지급하는 운임(배달비)은 낮은 수준에 묶어놓거나 심지어 삭감하고 있다. <뉴스후플러스>는 "배달의민족이 소비자와 소상공인 모두에게 과도한 배달비를 부과하면서도 정작 라이더에게는 최소한의 배달비만 지급"하는 방식으로 차액을 착복하고 있다는 의혹을 소개했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는 라이더에게 묶음배달의 경우 건당 2000원대 운임을 제시하고 있다. 고물가 시대에 믿어지지 않는 금액이다. 묶음배달이라 2200원+2200원=4400원이 아니냐는 셈법일 텐데, 묶음배달이라도 음식점 두 곳에 들러야 하고 두 집에 배달해야 한다. 참고로 라이더 운임을 2000원대로 떨어뜨린 것도 쿠팡이츠가 먼저 했다. 배민도 나중에 똑같이 따라했으니 어디가 더 낫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상생협의체가 3개월째 돌아가는 동안 자영업자들은 팔아도 남는 게 없다고 억울해하다 가게 문을 닫고 있다. 소비자들 역시 배달앱의 독과점 횡포와 꼼수에 질려서 대안을 원한다. 라이더들은 원래도 고용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었는데 배달비마저 삭감되는 어이없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이제 독과점 상태의 배달앱 3사가 사회 구성원 누구에게 어떤 가치를 창출하는지 알 수 없다.
그뿐 아니다. 어떤 언론도 말하지 않았지만, 배달앱은 주문과 배달을 중개하면서 데이터를 공짜로 가져간다. 자영업자와 소비자의 데이터, 나아가 배달 라이더의 운행 데이터까지 거의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고 수집해서 축적하고 있다. 이 데이터 수집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며 데이터 이용료는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는 아직 공론화조차 되지 않는다. 지금처럼 공공의 역할이 실종된 상태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배달앱이 스스로 상생 방안을 내놓기를 기다리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수수료 인하는 기본이다.
[안진이 더불어삶 대표(livewitha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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