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걱정 없을 줄 알았는데...” 70대 일본 퇴직 공무원의 오산

이경은 기자 2024. 10. 17.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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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한 배우자 연금 수급자 8만명
연금 반쪽나면 노후에 재앙 될 수도
[왕개미연구소]

“공무원으로 오래 일하다 정년 퇴직했으니 (연금이 넉넉해) 돈 걱정은 없겠어요.”

일본 오사카에 살고 있는 77세 카키모토(柿本)씨는 주변에서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 여유로운 노후 생활을 보내기는커녕, 본인 장례 비용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는 적자 상황이기 때문이다.

30년 넘게 일만 하다가 공직에서 물러난 그는 은퇴 후에 받을 연금 수령액이 월 28만엔(약 256만원)에 달했다. 부부가 연금만 갖고 생활하기에 충분하진 않아도, 적은 액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생기면서 그의 인생 말년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카키모토씨는 “10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말과 거동이 불편해져서 고정 의료비 지출이 커졌고 타인의 돌봄을 받으며 지내야 한다”면서 “아내의 갑작스런 통보로 황혼이혼하는 바람에 연금도 절반(28만엔→14만엔)으로 줄어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중됐다”고 말했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이혼한 배우자 연금 수령, 벌써 8만명

카키모토씨처럼 황혼이혼 때문에 연금이 반토막나는 사례는 비단 일본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한국도 황혼이혼이 늘어나면서 이혼한 배우자와 국민연금을 나눠 갖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17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이혼한 배우자와 연금을 나눠서 받는 ‘분할연금’ 수급자는 지난 6월 기준 8만2283명으로 집계됐다. 4년 전인 2020년만 해도 4만명 정도였는데 두 배로 늘어났다.

분할연금은 아이 키우고 집안일 하느라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한 전업주부의 노후 소득을 보장해 주기 위해 지난 1999년 도입됐다. 지난 6월 기준 20년 이상 국민연금을 납입한 사람의 월 평균 연금 수령액은 100만원이다. 만약 황혼이혼으로 남편 연금을 5대5로 나눈다면, 아내는 본인 명의로 1년에 600만원(50만원*12개월)을 받을 수 있다.

분할연금은 헤어진 배우자와 혼인을 5년 이상 유지하고, 전 배우자와 본인 모두 노령연금 수급 연령(61~65세)을 갖추는 등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신청할 수 있다. 부부는 경제 공동체이기 때문에 혼인 기간에 해당하는 연금액은 균등하게 나누는 것이다.

남편이 국민연금에 20년간 불입했고 부부가 함께 산 기간도 20년인 사례를 살펴 보자. 남편의 예상 연금액이 100만원이라면, 아내는 100만원의 절반인 50만원을 연금공단에 청구해서 받을 수 있다. 재혼한 경우엔 남편과 같이 산 기간만큼 전·현 부인이 연금을 나눠 가진다.

분할연금 최고 수령액은 지난 6월 기준 월 213만원이었다.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부부가 서로 협의하거나 혹은 법원 재판 등을 통해 연금 분할 비율을 따로 정할 수 있다”면서 “맞벌이 부부는 서로 청구하지 않겠다고 합의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황혼이혼은 노후의 재앙

노후 준비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재정적인 자금 마련에만 초점을 맞추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화목한 부부 관계다. 아내가 ‘아이들이 클 때까지 기다렸는데, 더 늦기 전에 새 인생을 시작하고 싶다’면서 이혼장을 내밀면, 장밋빛으로 기대했던 노후는 잿빛이 된다. 노년기에 배우자와의 관계가 틀어지면, 재정적인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정이 두 가정으로 쪼개지면 비용이 중복되고, 생활 수준도 자연스럽게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노년기에 건강이 악화되면 배우자의 도움이 절실한데, 이혼 후에는 혼자서 간병이나 돌봄을 해결해야 하므로 비용 부담이 늘어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부부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할 수 있을까. 시라사와다쿠지(白澤卓二) 의학박사는 부부가 따로 시간을 보내며 서로의 개인적 공간과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아무리 사이가 좋은 잉꼬 부부라도 항상 함께 있으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각자 따로 취미나 관심사를 즐기며 휴식을 취해야 다시 만났을 때 긍정적인 에너지를 교환할 수 있다.

노년기 부부 갈등은 배우자의 성격 및 사고방식, 생활방식, 가사분담 등과 관련한 문제가 대다수(82.1%)였다./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영재

시라사와 박사는 이어 “말에는 힘(言霊)이 있어서 말한 대로 현실이 이루어지는 만큼, 부부 사이가 가까울수록 ‘고마워’나 ‘수고했어’ 같은 긍정적인 단어를 자주 써야 한다”면서 “아내가 ‘당신은 칠칠치 못해’라고 말하면 남편은 실제로 그렇게 변하고 ‘당신은 정말 꼼꼼해’라고 계속 말하면 남편이 꼼꼼한 성향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긍정 강화’의 일종으로, 칭찬과 격려를 통해 부부 관계를 더 건강하게 만들어 보라는 조언이다.

배우자와 대화하기 전에 미소를 짓는 노력을 해보는 것도 부부 관계를 개선하는 좋은 방법이다. 시라사와 박사는 “뇌는 본 것을 모방하는 특성이 있어서, 아내가 웃으면 남편도 따라 웃게 되어 적대감이 사라진다”고 설명한다.

“작은 행동이 부부 간의 대화를 더 즐겁게 만들 수 있습니다. 부부가 서로 관심을 공유할 수 있는 즐거운 화제를 고르는 것도 중요합니다. 퇴직 후 부부 간에 대화가 없으면, 노후 생활이 외롭고 힘들어지거든요. 대화가 단절되어 부부가 서로 얼굴만 찡그리고 침묵이 지속된다면, 치매에 걸릴 위험도 높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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