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눌렀을 뿐인데…SVB 뱅크런에 국내 '예금보호' 한도 상향될까
스마트폰 뱅크런 시대 현실화
SVB파산으로 예금자보호한도 주목
은행 부실 사전 예방이 더 현실적이라는 시각도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36시간 만에 초고속으로 파산한 배경에는 스마트폰에 깔린 은행 앱 터치 한 번으로 예금이 인출되는 '디지털 금융'이 있었다. 은행 계좌의 절반 이상이 비대면으로 개설되고, 온라인에서의 정보 파급력이 막강한 우리나라도 '스마트폰 뱅크런'에 매우 취약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금융 당국이 유사시 예금 전액을 보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예금보호 한도를 상향하기보다는 은행의 부실을 사전에 막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예금보험공사 등은 예금자 보호 한도 개선 방안을 논의 중이다. 예금자 보호 한도는 금융회사가 파산 등으로 예금을 돌려줄 수 없게 됐을 때 예보가 금융회사 대신 지급해주는 최대한도 금액으로, 대부분의 금융사 원금 보장형 상품에 적용된다.
예금보호 한도를 상향하자는 논의는 그간 꾸준히 진행됐으나 최근 SVB 파산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앞서 파산한 SVB의 경우 유동성 위기가 알려지자마자 하루 만에 55조 원의 예금이 빠져나갔다. 스마트폰에 깔린 은행 앱 터치 만으로 예금인출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스마트폰 뱅크런' 시대가 현실화됐으며 스마트폰 사용률 세계 1위인 우리나라도 이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SVB 사태 여파가 국내 시중은행으로 번질 가능성은 작은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국내 모바일 뱅킹 이체 한도가 1일 최대 5억 원을 넘고 스마트폰을 이용한 비대면 거래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금융권에 따르면 전자금융감독규정에 따라 개인고객 기준 국내은행의 인터넷·모바일 뱅킹 1회 이체 한도는 최대 1억 원, 1일 이체 한도는 최대 5억 원이다. 이는 대면 채널이 없는 카카오·케이·토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과 더불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에도 적용되고 있다.
미국은 최근 SVB에 대해 예금자 보호 한도를 넘는 전액 지급 보증 조치를 했다. 미국의 1인당 예금자 보호 한도는 25만 달러(약 3억2700만 원)다. 우리나라의 경우 외환위기 당시 정부가 1997년 11월부터 2000년 말까지 은행 등의 모든 예금에 대해 원금과 이자 전액 지급을 보장하기로 했으나, 도덕적 해이 문제 등이 불거지며 해당 대책은 1998년 7월 조기 종료됐다.
현재 국내 예금보호 한도는 지난 2001년 1인당 GDP를 고려해 5000만 원으로 오른 이후 제자리다. 이에 1인당 GDP가 과거보다 2배 이상 증가했으므로 한도를 2배 이상(1억 원)으로 올리자는 의견이 나온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이 20년 전보다 5배 가까이 늘었는데 예금자 보호는 금액이 너무 작다"며 "세계적 추세를 봤을 때 1억 5000만 원까지는 예금자 보호 한도를 올려야 미국과 같은 수준이 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를 통해 집에 보관돼 있는 현금을 은행에 예금해서 기업의 투자 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은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미국 SVB의 초고속 뱅크런은 한국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며 "예금자들이 불안하게 되면 은행 경영 또한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소비자의 불안을 해소하고 그간의 물가 인상도 반영하기 위해 예금자 보호 금액을 5000만 원에서 1억 원 정도로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예금자 보호 한도 5000만 원을 넘어서는 은행과 저축은행 예금 비율이 상승하면서 한도 확대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예금보험공사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희곤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예금자보호법상 보호 한도 5000만 원을 넘어서는 은행 예금의 비율은 2017년 61.8%(724조3000억 원)에서 지난해 6월 기준 65.7%(1152조7000억 원)로 상승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섣불리 예금보호 한도를 상향하기보다는 은행의 부실을 사전에 막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일괄 적용됐던 예금보호한도를 업권별로 다르게 적용할 경우 상호금융 등 제2금융권에서 은행 등 제1금융권 예금으로 대거 자금이 이동할 수 있는 위험 등이 남아 있다는 시각도 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상황에서 보호 한도를 올리면 부실한 금융기관 등으로 자금이 몰릴 가능성이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건전성 관리와 함께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seonyeo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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