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학 시조시인, 새 시조집 ‘세종의 처방전’ 출간…한글 소리로 빚은 언어 치유
언어·감성·철학 어우러진 삼중 구조…한국 현대시조의 새 지평 열어

한글을 시의 재료로 삼아온 문무학 시조시인이 열한 번째 시조집 '세종의 처방전'(책만드는집 시인선 268)을 펴냈다. '낱말'(2009)을 시작으로 '홑', '가나다라마바사', '뜻밖의 낱말' 등 한글 연작 시조를 통해 독자적인 시세계를 구축해온 그는 이번 신작에서 초성·중성·종성 68개의 소리를 시어로 풀어내며 언어의 본디 결을 다듬는 시적 실험을 이어간다.
문무학 시조시인은 훈민정음 서문체로 쓴 '시인의 말'에서 이번 시집의 문제의식을 분명히 밝혔다. '나랏말씀에 이 나라 저 나라 말이 섞이고, 지나치게 줄여 쓰며, 듣기 거북하게 거칠어져 서로 잘 통하지 않게 된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바르고 고운 한글 쓰기를 회복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초성·중성·종성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언어 단위로 시를 짓는 일은 단순한 언어 유희가 아니라, 훼손된 말의 결을 어루만지고 언어의 품격을 다시 세우려는 시인의 윤리이자 실천이다.
대표작 '세종의 처방전 – 첫소리 'ㄲ''에서 그는 소리의 반복이 지닌 힘을 재치 있게 포착한다.
'깔끔 깨끗 한글에 쌍기역이 많은 것은 / 기역 한 번 써서는 모자라기 때문이다 / 깔끔과 깨끗에 어찌 한 번 만에 될 일이야.'
쌍기역이라는 음소가 가진 물리적 힘과 말맛을 '깔끔', '깨끗'이라는 낱말과 결합시켜 단어·소리·의미의 삼각 구조를 시조 안에서 조화롭게 엮는다.
'세종의 처방전 – 가운뎃소리 'ㅏ''에서는 여는 소리의 활력을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아'는 여는 소리 닫힌 것들 열어준다 / 아침이 하루 열고 아지랑이 봄을 열 듯 / 사람의 아름다움은 고운 말로 열린다.'
음운론적 성격을 시의 세계로 끌어온 그의 솜씨는 단순한 언어학적 설명을 넘어, 말과 삶, 소리와 세계가 연결되는 지점을 시적으로 사유하게 만든다.
또 다른 작품 '세종의 처방전 – 끝소리 'ㄶ''에서는 종성의 역할을 시적 이미지로 풀어낸다.
'ㄶ 겹받침은 끊을 것 뚝 끊어내고 / 많아야 할 것은 떠받쳐 많게 하니 / '괜찮다' 말에 안겨 안겨도 밉지도 않으니라.'
언어 구조를 해부하듯 다루면서도 '괜찮다'라는 말이 품은 정서적 온기를 길어 올리는 대목에서 문무학 시조의 특징인 언어·감성·철학의 삼중 구조가 드러난다.
이번 시집은 전편이 단수 형식으로 구성돼 있으며, 말미에는 '처방 외전 12첩'을 실어 작품에 내재한 언어학적 배경과 시인의 이력을 덧붙였다. 시집 전체가 하나의 언어학 교본이자 시적 사유의 기록처럼 읽히는 이유다.
문학평론가 박진임은 '시인 옥타비오 파스가 말했듯이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언어를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며 '시인의 임무 중에는 그 훼손된 말의 결을 어루만지고 가다듬어 원래의 고운 모습을 유지하게 하는 일이 포함된다. 문무학 시인은 누구보다 앞서서 그 일을 실천하고 있다'고 평했다. 이어 '대들보는 튼튼히 지키면서 회벽은 새롭게 발라가는 믿음직한 목수처럼, 문무학 시인은 한국 현대시조의 중심을 든든히 지켜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무학 시조시인은 대구문인협회장, 전 대구문화재단 대표 등을 역임하며 한국 시조문학의 저변 확대에 기여해왔다. 이번 시집에서 그는 시조를 언어 예술의 차원을 넘어 '언어 치유의 장'으로 확장시키며, 한글의 소리와 의미, 말의 품격을 동시에 사유하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다.
'세종의 처방전'은 한글의 근원적 아름다움을 되살리려는 시인의 언어학적 상상력과 시적 성찰이 만난 성과다. 단순한 시집을 넘어 언어의 질서가 흔들리는 시대에 말글의 품격을 지켜내려는 처방전으로 읽힌다. 한글의 소리 하나하나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이 책은 우리 시조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을 보여주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이 책은 서울문화재단 지원으로 발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