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찐리뷰] 수천억 재력가 청부살인…배후는 현직 시의원

강선애 2024. 9. 20.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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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9일 방송된 '위험한 커넥션-서울 강서구 재력가 청부살인'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슈퍼주니어 신동, 뮤지컬 배우 김호영, 그룹 위클리 멤버 조아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수천억 재력가 살인사건

때는 2014년 3월 4일 오전 7시. 여기는 '꼬꼬무'가 녹화되는 서울 SBS 방송국의 4층 보도국이야. 당시 SBS 사회부 기자였던 류란 기자는, 그날 밤샘 근무를 마치고 퇴근을 준비하고 있었어. 천근만근 몸을 이끌고 짐을 싸던 그때, 류 기자의 휴대전화가 울렸어. 전화를 건 사람은, 평소 알고 지내던 취재원이야.

"이제 퇴근해야겠다고, 조금은 긴장을 풀고 있던 차에 평소에 좀 알고 있었던 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강서구에 살인사건이 났는데 피해자가 노인이고 크게 다친 후에 사망했다, 근데 벌써 발생한 지 24시간이 지났는데 전혀 단서라고 할 만한 것을 찾지 못해서 경찰이 굉장히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 류란, 당시 SBS 사회부 기자

제보 전화는 받았는데, 정보가 너무 없어. 게다가 24시간째 한숨도 못 자서 너무 피곤한 상태야. 취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끝에, 류 기자는 취재를 하기로 결정했어. 비몽사몽인 몸을 이끌고, 후배 기자와 함께 현장으로 갔어.

도착한 곳은 강서구 한 대로변에 있는 건물이었어. 양옆으로 3개의 동이 연결돼 있는 꽤 큰 상가야. 이런 데서 살인사건이 났으면 엄청 시끄러워야 하는데, 이상하게, 너무 조용해.

"'이런 데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고?' 싶었어요. 경찰들이 몸으로 막고 이런 상황을 주로 봐왔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냥 아무 일도 없겠거니 하고 지나칠 수 있는 정도의…"

- 류란, 당시 SBS 사회부 기자

이거 잘못 온 건가? 싶은 그때, 후배 기자가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선배, 여기서 진짜 살인사건이 있었대요. 근데 피해자가 여기 건물주라는데요?"라고 말했어. 순간 류란 기자, 귀를 의심했어.

"(후배가) '피해자는 건물주라고 합니다' 라고 말하는데, 제가 처음에 잘못 들었나 싶었어요. 왜냐하면 건물이 굉장히 컸거든요. 이거 보통 사건은 아니겠구나…"

- 류란, 당시 SBS 사회부 기자

류란 기자가 제보를 받기 하루 전으로 돌아가볼게. 3월 3일 새벽 2시, 강서경찰서에 '사람이 죽었다'는 신고가 들어왔어. 신고를 받은 강력2팀 형사들이 곧바로 현장으로 갔어. 그리고 도착한 곳이 아까 그 건물의 3층, 건물주가 사무실로 쓰던 층이야. 형사들이 목격한 현장은 처참했어. 피해자는 67세 양 모 씨. 사람들은 그 사람을 '양 회장'이라 불렀어. 근데 형사들이 확인해 보니까 이 양 회장, 그냥 건물주가 아니야. 당시 사건을 수사한 형사한테 직접 이야기를 들어볼게.

"그때 당시에 그 건물 발산역 옆에 그 건물 현장이 3층짜리 건물인데, (규모가) 엄청났고요. 그 앞에 주차장 건물도 다 양 회장 거였고요. 강서구에 호텔도 가지고 있고, 또 그 외에 다른 데에 건물도 많고. 그래서 100억대냐 200억대냐 재력가면 어느 정도냐. 그 금액을 산출할 수가 없었어요."

-윤경희, 당시 사건 담당 강력팀장

양 회장의 재산은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래. 강서구에서 대한항공 다음으로 세금을 많이 낼만큼 부자라는 소문도 있었어. 그런 사람이 살해당한 거야.

형사들이 가장 먼저 확인한 건 CCTV였어. 그 큰 건물 안에 있던 CCTV들 중, 놀랍게도 범행 현장이 전부 찍혀 있는 게 있었어. 김명신 형사는 당시 그 영상을 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대.

"다행히도 사무실 내부에 CCTV가 있었어요. 그래서 CCTV를 돌려보니까 범행 장면이 다 녹화되어 있었어요. 범인이 뒤따라 들어와요, 피해자를. 뒤따라 들어오는데, 도끼를 뒤에서 숨겨서 뒤따라 들어와서 갑자기 피해자를 덮치거든요. 둘이 몸싸움이 벌어지는데, 격차가 벌어지는 거예요. (범인이) 점점 밀려요. 그러니까 미리 이제 준비한 전기 충격기를 꺼내 가지고 쓰러뜨린 다음에 살해를 한 거죠."

-김명신, 당시 사건 담당 형사

그렇게 남자는 양 회장을 살해하고 도주했어.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CCTV에 찍혔어. CCTV에 범인의 얼굴은 나오지 않았어. 점퍼 후드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거든. 수천 억대의 자산가를 전기충격기와 도끼로 살해한 범인. 누구일까?

이 사건은 뉴스를 통해 전국에 알려졌어. 인천에 사는 기훈(가명)이와 준석(가명)이도 이 소식을 들었어. 둘은 친구이자, 같이 동업을 하는 사이야. 두 사람이 하는 일은, 짝퉁 팔이. 가짜 명품을 파는 거야. 같이 일하는 형님이 중국에 가서 물건을 가져오면, 그걸 국내에 유통시키는 거야. 마침 내일, 그 형님이 오랜만에 중국에 가서 물건을 가져오기로 했어. 두 사람은 간만에 돈맛 볼 생각에 신이 났어.

그때 휴대전화를 하던 준석이가, 바로 그 뉴스를 봤어. "돈이 그렇게 많은데 보디가드도 안 데리고 다녔대?" 둘은 그런 대화를 나누며,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 그때까지만 해도 둘은 전혀 몰랐던 거야. 이 사건이 둘의 일상은 물론,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들게 될 줄 말이야.

▲ 쫓는 자와 쫓기는 자

그 시각, 형사들은 양 회장을 살해한 뒤 도주한 살인마를 쫓고 있었어. 우선 건물 주변에 있는 CCTV를 싹 다 뒤졌어. 그리고 범인의 도주 장면을 발견했어. 범인은 범행 후 택시를 타고 도주했어. 근데, 형사들이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어.

그때 CCTV에 찍힌, 범인이 택시를 타는 장면이야. 화질이 너무 안 좋아서, 택시 번호가 안 보여. 형사들은, 이 택시가 어떤 택시인지 특징을 찾아보기로 했어.

먼저 택시를 자세히 본 형사들은 택시 문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발견했어. 해치 문양이야. 해치는 서울시의 마스코트야. 2014년은 서울시에서 해치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하던 때야. 그럼 이 택시, 서울 택시라는 거야. 그리고 눈에 띄는 게 택시의 색깔. 그때 주황색 택시는, 서울시 법인 택시였어. 그러니까 개인택시가 아니라, 택시 회사에서 운행하는 택시라는 거야.

형사들은 가까운 강서구의 법인택시부터 조사하기 시작해. 그럼, 그런 택시가 몇 대나 있을 것 같아? 수백 대가 넘겠지. 근데, 찾았어. 수백 대가 넘는 택시를 일일이 탐문한 끝에 동일 택시를 발견했어. 다행히 택시 기사는 그때 태운 손님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어.

"아 그 손님, 기억나요! 시커먼 옷에 마스크까지 쓰고. 숨을 막 헐떡거리던데…그 손님, 영등포역 쪽에 내렸어요!"

-범인을 태운 택시 기사

범인이 내린 곳, 영등포역이야. 그때부터 형사들이 영등포역 근처에 있는 CCTV를 또 싹 다 뒤진 거야. 거기 CCTV가 얼마나 많겠어? 근데 이번에도, 찾았어. 영등포역에서 내린 범인은, 다시 다른 택시로 갈아탔어.

이번에도 택시 번호가 안 보여. 한 번 더, 택시의 특징을 찾아보자. 문짝에 붙어있는 배너. '부평 ㅇㅇ 병원'이라 적혀있어. 그럼 이건 인천 택시야. 형사들은 영등포역에서 장거리 뛰는 인천 택시들을 싹 다 뒤졌어. 그리고 이번에도 찾았어. 택시 기사는 또 그때 태운 손님을 기억했어.

"딱 타니까 '인천 차죠?' 그러는데 장거리 손님인데 얼마나 반가워. 나로서는 아주 그냥 반가워 환장하지."

-범인을 태운 택시 기사

영등포역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한 남자가 급하게 택시를 타더래. 그리고 그 손님이 인천으로 가자고 했다가 부천으로 목적지를 바꾸더라는 거야. 택시 기사는 그 손님을 부천 송내역에 내려줬어. 그리고 다른 손님을 태우기 위해 송내역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어. 한 5분 지났나? 문이 턱 열리는데,

"어? 아까 그 손님이네요?"

아까 그 손님, 양 회장을 죽인 그 범인이 같은 택시를 또 탄 거야.

"아주 우연의 일치도 그런 우연의 일치가 없어. 이리 와서 딱 타고서 '어? 아까 그 기사구먼'…"

-범인을 태운 택시 기사

범인은 왜 자꾸 택시를 갈아타는 걸까? 경찰이 쉽게 추적하지 못하게 하려는 거야. 하지만 형사들은 포기하지 않았어. 택시 기사의 증언을 토대로, 범인의 마지막 하차 지점을 알아냈어. 그런데, 이상해. CCTV가 있는데, 범인의 모습은 찍히지 않았어. 분명히 여기 내린 게 맞는데. 아무래도 CCTV 사각지대를 이용해서, 어디론가 들어간 거 같아. 범인이 사라진 이 골목엔 고깃집, 성당, 그리고 사우나가 있었어. 형사들은, 직감적으로 범인이 사우나로 갔을 거라 생각했어. 사우나 CCTV를 보니까, 그 시각, 그곳에 들어오는 수상한 남성 한 명이 있었어.

"아, 이 분이요? 이 사람 우리 사우나 단골인데..."

-사우나 직원

범인이 그 사우나의 단골임을 확인한 형사들은 바로 신원 확인을 했어. CCTV 2천 대, 택시 수 천대를 추적한 끝에, 드디어 용의자를 특정했어. 이름은 장영범(가명), 나이 44세. 수천억 재력가 살인사건의 범인이 드러난 순간이야.

"정말 머리끝이 쫙~ 이렇게 전기가 오는. 뭐라 그럴까 좀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전기 같은 게 오죠. 전율이 느껴지고."

-윤경희, 당시 사건 담당 팀장

"전 범인을 검거할 때보다, 누군지 알았을 때 가장 희열이 오더라고요.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삼면이 바다인데 어디 가겠어요. 누군지 알았으면 이제 뭐 게임 끝이죠."

- 김명신, 당시 사건 담당 형사

이 장영범이라는 사람, 과연 정체가 뭘까? 양 회장과 어떤 사이길래, 잔인하게 살해한 걸까?

▲ 형님과 검은 그림자

형사들이 사우나를 다녀가고 얼마 후, 인천 사는 기훈이와 준석이도 그 사우나를 찾았어. 두 친구도, 그 사우나 단골이었거든. 그리고 우연히, 형사들이 '장영범이라는 사람을 찾는다'는 얘길 들었어. 근데 그 얘길 듣고, 둘의 표정이 싹 굳었어. 기훈이와 준석이에게 짝퉁 물건을 떼어주던 그 형님이, 바로 장영범이야.

그 시각, 형사들은 비상이 걸렸어. 장영범이 중국에 있잖아. 물건을 받으러 간 게 아니라, 해외로 도피를 간 거야. 그것도 범행 사흘 만에.

"청도로 출국을 한 게 확인이 됐죠. 그럼 우리 형사들 어떻습니까. 기운 완전히 빠져버린 거죠. 정말 그때는 실망감.."

-윤경희, 당시 사건 담당 팀장

"너무 답답한 일이죠. 잡아야 하는데. 어렵거든요. 송환하는 절차가. 거기서 검거되기도 힘들고, 워낙 넓기도 하고 공안 자기들 사건도 바쁜데 한국 사건까지 협조해서 잘 안 하거든요. 큰일 난 거죠. 나갔는데…"

- 김명신, 당시 사건 담당 형사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순 없잖아. 중국의 연락을 기다리면서, 형사들은 장영범이 양 회장을 살해한 이유를 파헤치기 시작했어.

장영범은 중국에서 가품을 떼어오는 일을 하는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강서구에 사는 수천억 재력가를 죽였다? 이유가 뭘 것 같아?

먼저, 사건 현장을 다시 보면, 현장에는 뭔가 뒤진 흔적은 있었지만, 돈이나 금품 등 사라진 건 없었어. 이건 범행 목적이, 강도는 아니라는 거야.

"만약에 강도라면 제압을 해서 금고에 있는 돈을 가져간다든지, 그래야 강도잖아요. 돈을 가져간 게 없어요. 그 금고를 열려고 시도도 안 하고."

-윤경희, 당시 사건 담당 팀장

양 회장은 평소에 시곗바늘처럼 움직이는 사람이었어. 밖에서 일을 본 뒤, 정확하게 밤 12시 반에 항상 사무실로 돌아왔어. 그리고 범인은 정확히 그 시간에 나타나서 양 회장을 살해했어. 이건, 양 회장의 스케줄을 미리 파악했다는 거지. 게다가 살해 도구도 미리 준비했고, 단 3일 만에 중국으로 도망갔어. 준비를 다 한 거야. 철저하게 계획된 범죄야.

강도가 아니라면 살해 동기는, 원한에 의한 살인 가능성이 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수사가 막혔어.

"관계를 알아야 범행 동기가 나올 거 아니에요. 살인사건은 범행 동기가 가장 중요하니까. 근데 통화내역을 피의자 통화 내역을 봐도, 피해자하고 전혀 연락하거나 연결고리가 전혀 없었어요."

- 김명신, 당시 사건 담당 형사

"전혀 모르는 사이예요. 가족들도 모르고 전혀. 우리가 피해자 사무실에서 모든 서류나 이런 걸 다 압수한 거예요. 거기에 뭐 하나 나온 게 하나도 없어요."

-윤경희, 당시 사건 담당 팀장

양 회장과 장영범. 둘의 접점이 전혀 없는 거야. 통화 한번 한 적 없는 사이야. 그럼 남은 가능성은 하나, 바로 '청부살해'야. 장영범에게 양 회장을 살해하라고 시킨, 제3자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지. 형사들은 이때부터 제3자의 존재에 주목했어. 먼저 장영범의 통화기록을 샅샅이 살폈어.

"범행 날 새벽에 문자를 주고받은 게 몇 개 있어요. 그날 새벽에 범행 전후로. 그 전화번호 명의자는 대포폰이었고. 그러니까 대포폰을 쓰는 사람하고 피의자하고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거잖아요. 범행 전하고 후하고. 그럼 어떻게든 관계가 있겠다…"

- 김명신, 당시 사건 담당 형사

이 대포폰을 쓰는 사람. 장영범에게 살인을 청구할 가능성이 있지. 이렇게 장영범을 조사하고, 그다음엔, 사망한 양 회장을 조사해야 해. 이제 양 회장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면서, 사건 뒤에 몰래 숨어있는 배후를 찾아볼 거야.

▲ 부동산 거물 양 회장

이 사망한 양 회장, 어떻게 수천 억을 벌었을까? 재력가가 되기 전, 그의 직업은 버스 기사였어. 그리고 최종 학력은, 초졸. 부동산 부자가 되기까지, 고작 10년밖에 안 걸렸어.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사건이 일어난 강서구 땅과 건물의 주인은 원래 따로 있었어. 원래 주인은 재일동포였어. 근데 1995년, 재일동포였던 원주인이, 자신의 8촌 손녀에게 그 땅과 건물 관리를 맡겼어. 그 8촌 손녀가 바로, 양 회장의 부인이야. 그때부터 양 회장 부부는 재일동포 친척의 부동산을 직접 관리했어.

세입자들에게 이 양 회장은 공포의 대상이었대. 보증금 5천만 원, 월세 500만 원이던 세를, 4년 만에 보증금 1억 원에 월세 1300만 원까지 올린 거야. 그래서 세입자들이 월세가 너무 높다고 사정하면, 뇌물을 내라 했대.

"현금을 요구한 거죠. 얼마 주면 되겠느냐, 2천만 원을 달라는 거예요."

"월세 1년마다 올리는 거 뭐 그것도 차등, 자기가 좀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10%까지도 올리고. 좀 말 잘 듣는 사람은 그냥도 해주고. 막 이런 식으로요."

-세입자들

그러니 양 회장과 세입자들의 관계, 어땠겠어? 혹시, 이 중에 원한을 품은 사람이 있었던 걸까? 그래서 경찰은 양 회장 건물의 세입자들을 탐문했어. 그러다 묘한 사건 하나를 알게 돼. 2004년, 세입자들이 양 회장에게 소송을 걸었어. 왜? 양 회장이 불법으로 이 부동산을 취득했다는 이유야. 양 회장이 갑자기 그 강서구 땅과 건물의 주인이 됐다는 거야. 양 회장은 재일동포 친척으로부터 구입했다고 주장했어. 그때 그 땅의 공시지가가 300억, 매매가는 1천억이었어. 근데 양 회장이 이 땅을 20억에 샀대.

세입자들은 아무래도 양 회장이 그 땅을 사게 된 경위가 이상하다는 거야. 게다가 알고 보니 원주인인 재일동포 친척은 부동산이 양 회장에 넘어간 걸 모르고 있었대. 그래서 세입자들이 양 회장을 고발했던 거야.

양 회장은 1심에서 사문서위조죄, 위조문서행사죄 등으로 징역 8년을 받았어. 징역살이는 물론, 거액의 부동산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거야. 양 회장이 가만히 있었을까? 당연히 항소했고, 소송은 10년 가까이 진행됐어. 최종 결론은 무죄. 그렇게 강서구의 수천 억이 넘는 재산이 양 회장의 것으로 인정이 된 거야. 부동산의 원주인 입장에선, 하루아침에 재산이 넘어간 거잖아.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 양 회장에게 원한이 생긴 건 아닐까?

▲ 촉망받는 정치인의 등장

경찰들은 수사를 계속 이어갔어. 그러다가 통화기록에서, 장영범과 전화를 한 누군가를 발견했어. 장영범이 중국으로 출국한 뒤에, '02'로 시작하는 번호와 여러 번 전화한 거야. 확인해 보니까, 웬 공중전화 번호야. 형사들은 이 공중전화 부스 위치부터 확인했어. 그런데 완전 소름이었어.

"공중전화 위치를 확인해 보니까, 우리 경찰서 맞은편에 있는 공중전화 부스. '뭐지? 왜 여기서 걔한테 전화를 했을까?' CCTV를 확인해 보니까 어떤 남성이 전화를 하고 나오는 게 있었어요. 깜짝 놀랐어요. 평상시에 자주 보던 사람, 강서구에서 웬만하면 다 아는 사람..."

- 김명신, 당시 사건 담당 형사

경찰서 바로 맞은편에 있는 공중전화를 사용한 사람. 중국으로 도피한 장영범에게 전화를 한 사람. 강서구에서 웬만하면 다 아는 사람. 바로 이 사람이야.

김형식. 서울시 시의원이야. 지역구는 강서구. 김형식 의원은 촉망받는 젊은 시의원이었어. 대학 총학생회장이자 운동권 출신으로, 국회의원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발을 디뎠어. 2006년, 처음 지방선거에 도전했지만, 낙선했어. 두 번의 도전 끝에 2010년, 그토록 꿈꿨던 시의원에 당선됐어. 김형식 의원은 당선되고 두 달 만에 법 개정안을 발의했어. 의정활동을 하는 동안 발의한 조례만 100건이 넘어. 이 정도면 성실하고 일 잘하는 시의원이라 할 수 있겠지? 당시 지역신문사의 기자로 일했던 박윤미 기자도 그를 잘 알고 있었어.

"굉장히 반듯하게 생기고 되게 스마트한 이미지예요. 그리고 사람을 대할 때 겸손한 자세라고 해야 하나. 인사를 할 때도 그냥 90도가 아니라 90도보다 더. 전국 동시 지방선거보다 더 큰 선거가 있으면, 모든 구의원 시의원들 그 지역에 관련된 후보자들이 다 모여서 선거를 돕거든요. 총동원이 되는데. 제가 발 뒤축이 약간 오픈되는 끈이 있는 신발을 신었다가 뒤에 까진 거예요. 발 뒤축이. 그래서 약간 발을 절뚝이면서 취재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발 밑에서 이상한 느낌이 나서 보니까, 김형식 시의원이 밴드를 사 와서 손수 붙여주고 계시는 거예요. 많은 사람 앞에서 자기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잘 아는 사람이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었죠."

-박윤미, 당시 지역 신문사 기자

이런 현직 시의원이 중국에 도피 중인 살인범과 왜 통화를 한 걸까? 그럼 김형식 의원과 양 회장은 무슨 관계일까?

▲ 사업가와 정치인의 검은 커넥션

이건 양 회장에게 5억 2천만 원을 빌렸다는 차용증이야. 빌린 사람의 이름은 김형식. 근데 이렇게 큰 금액을 빌려주는데 담보도 이자도 없어. 천하의 양 회장이 왜 이렇게 큰돈을 빌려줬을까.

양 회장은, 강서구 땅의 소송이 마무리될 쯤,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어. 바로 호텔 사업. 강서구 건물을 증축해 호텔로 만들 구상을 한 거야. 근데 문제가 있었어. 일단 층수를 높이는 게 쉽지 않아. 강서구에 김포공항이 있잖아. 비행기가 이륙해야 하니까, 건물을 높게 지을 수 없는 거야. 더 큰 난관은 따로 있어. 이 지역이 제3종 일반주거지역이야. 건축법상 상업시설인 호텔을 지을 수 없어.

양 회장은 포기하지 않고 호텔을 지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 그 지역을 일반주거지역에서, 상업지역으로 용도를 변경하는 거야. 그러면 호텔도 지을 수 있고, 땅값도 무려 4배나 올라. 상업지역으로 바뀌기만 하면, 양 회장은 더 큰 부자가 되는 거야.

근데, 땅이 용도 변경되는 게 쉬운 일이 아냐. 구청에서 안건을 내면, 서울시의 허가도 있어야 하고, 시의회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도 거쳐야 하거든. 복잡한 일들이 쭈르룩 있어. 그럼 양 회장, 어떻게 했을까? 이걸 한 번 봐봐.

양 회장이 매일 썼던 장부야. 누구를 만나 뭘 했는지, 뭘 먹었는지 적혀 있어. 그 안에서 눈에 띄는 이름, 김형식 의원. 장부에는 김형식 의원에게 접대를 한 내용이 적혀 있었어. 그럼, 왜 하필 김형식 의원이었을까?

김형식 의원은 여러 상임위원회에서 위원직을 맡고 있었어. 운영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그리고 도시계획관리위원회. 도시계획관리위원회는 토지 용도 변경 건에 대해 심의하는 곳이야. 그럼 양 회장에게 김형식은 어떤 존재였겠어? 자신의 땅을 상업지역으로 용도를 바꿔줄 수 있는 사람. 호텔 사업이라는 꿈을 이루게 해 줄 수 있는 사람. 딱 필요한 사람이었던 거지. 그래서 접대를 한 거야.

그럼 아까 봤던 차용증,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 양 회장이 김형식 의원에게 준 로비자금이자, 정치자금이야. 김형식 의원과 양 회장이 보통 사이가 아니란 건 확실해. 그럼, 양 회장의 죽음과 관련이 있을까?

상대는 현직 시의원이야. 어설프게 건드렸다가는 경찰이 후폭풍을 맞을 수도 있어. 좀 더 확실한 증거를 확보해야 해. 장영범이 범행 전후에 통화했던 대포폰, 그 대포폰의 주인을 찾아야 해. 만약 대포폰의 주인이 김형식 의원이라면, 의심은 확신에 가까워져.

그럼, 대포폰의 주인은 어떻게 확인할까? 보통 휴대전화를 사용하면, 사용한 기지국 위치가 떠. 그러니까, 대포폰의 기지국 위치와, 김형식 의원의 휴대전화 위치를 비교하면 되는 거야. 확인해 보니, 두 휴대전화의 기지국 위치가 똑같아. 이게 무슨 뜻이야? 그 대포폰, 김형식 의원이 가지고 다닌다는 거야.

양 회장과 범인의 연결고리, 살인 교사의 유력 용의자. 현직 시의원 김형식이었어. 드디어 장영범의 배후가 드러났어. 그럼, 김형식이 양 회장을 죽여야 하는 이유가 대체 뭘까?

사건이 일어난 강서구 내발산동 일반주거지역 일대를 상업지역으로 변경하는 계획서야. 용도지역 변경, 양 회장의 꿈인 호텔 사업을 위한 김형식과의 커넥션이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거지. 양 회장은 거침이 없어. 호텔 설계도도 이미 작성했고, 건물 지하에 콜라텍 공사까지 하고 있었어.

"공사비가 4억이 들어가고 보증금 1억 원 나가는데 현재 공사 들어가는 것이 1억 1천인가 들어갔다고 하더라고요. 그 개업이 2012년 12월 14일인가 16일로 잡혀 있었어요."

-양 회장의 지인

용도가 바뀌지도 않았는데 공사부터 시작한 거야. 주변에도 '용도 변경은 걱정하지 말라'며 돈을 끌어 모았어. 이뿐만이 아니야. 양 회장은 자신의 또 다른 건물도 호텔로 만들 계획을 짜. 근데 거기도 준공업지역이라 생활숙박업을 할 수 없는 거야. 그런데 때마침, 이런 조례안이 나왔어.

준공업지역 안에, 일부 숙박시설 건축을 할 수 있게 하자는 내용의 법 개정 조례안이야. 발의자는 이번에도 김형식 의원.

양 회장과 김 의원은 아주 끈끈하게 연결돼 있었어. 2013년, 예상치 못한 큰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서울시가 내발산동 땅의 용도변경을 반대한 거야. 그리고 또 다른 땅에 대한 조례안도, 서울시의 반대로 보류됐어. 계획이 무산돼 버리고 만 거야.

"피해자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동안에 투자한 게 있는데. 당연히 김형식을 괴롭힐 수밖에 없는 거죠. 실질적으로 피해자 사무실 전화번호 통화내역을 보면, 사건 전에 집중적으로 김형식이한테 전화한 게 나와요."

-윤경희, 당시 사건 담당 팀장

용도 변경의 대가로 돈까지 받았어. 그 증거로 차용증도 남겼어. 이런 상황에서 심사가 뒤틀린 양 회장이 그 차용증을 공개해 버린다면? 김형식은 끝이지. 게다가 1년 뒤, 김형식은 큰일을 앞두고 있었어. 바로 전국지방선거. 재선을 준비하고 있었던 거야. 그런 상황에서, 이 커넥션이 드러나면 어떻게 되겠어? 그의 정치 인생이 끝날 수도 있는 거야. 김형식 입장에서 양 회장은 사라져야 하는 거지.

▲ 친구의 부탁

여기서, 여전히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어. 이 정치인과 재력가의 커넥션 사이에, 어떻게 장영범이 등장하게 된 걸까? 알고 보니 장영범과 김형식, 둘은 12년 지기 친구였어. 둘의 첫 만남은 2002년, 한 술자리였어. 장영범의 형이 한 국회의원의 선거 운동을 도와준 적 있는데, 그때 그 국회의원의 보좌관이 바로 김형식이었어.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은 연배가 비슷해 금세 절친이 됐어. 인천과 서울을 매일같이 넘나들며 만났대.

장영범의 후배, 기훈이와 준석이도 둘의 관계를 아주 잘 알고 있었어. 그때만 해도 김형식은 잘 나갈 때도 아니었어. 시의원이 아니었으니까. 반면 장영범은, 인천에서 물류업을 하는 성공한 사업가였어.

"굉장히 한 달에 한 5천만 원씩 벌 정도로, 인천항 부두 포딩(무역업) 그러니까 컨테이너 박스 오면 하는 거 그 작업도 했었고. 그리고 달러 환전소 했었고. 그때 김형식은 정치를 꿈꾸는 사람이고 그리고 (장영범 형님은) 밖에 사회 친구인데 사회 친구는 돈이 좀 있고. 그러면 둘이 잘 어울리잖아요. 매일 와서 같이 술도 먹고…"

-박기훈(가명), 장영범 후배

정계 진출을 꿈꾸고 있던 김형식이 처음 지방선거에 도전했을 때, 장영범은 김형식을 물심양면으로 도왔어. 장영범이 몰고 다니던 외제차도 빌려주고, 선거 유세차량도 장영범이 지원했어. 김형식도 장영범을 친구로서 굉장히 좋아했대.

그런데 4년 후인 2010년, 둘 사이에 큰 변화가 생겨. 김형식이 시의원에 당선됐는데, 장영범은 사업이 쫄딱 망해버린 거야. 둘의 상황이 180도 역전됐어. 전엔 도움을 받았던 김형식이, 반대로 장영범을 도와주는 친구가 된 거지. 장영범에게 사업 자금으로 7천만 원을 빌려주기도 했대. 정신적, 물질적으로 힘든 장영범에게 김형식은 유일한 버팀목이자 든든한 빽이었던 거지.

그런데 2013년부터, 기훈이와 준석이가 뭔가 이상함을 느꼈어. 형님이 연락도 잘 안 되고, 가끔 만나면 얼굴도 너무 안 좋더라는 거야. 그때 둘은, '김형식과 무슨 일이 있구나' 싶었대.

"제가 운전을 하고 형님이 옆에 타는데 항상 '00아, 여기다 차 좀 세워라' 해서 '왜요?' 그러면, 공중전화가 저 앞에 있어요. 거기까지 한참 걸어가셔서 공중전화 통화하고 오시는 거예요. 한 번은 차를 갑자기 세우라고 해서 세웠더니 김형식이 골목길 어두운 데서 실루엣만 보이는데 있고."

-김준석(가명), 장영범 후배

"이(옆에 앉은)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아니 무슨 첩보 작전을 찍어 둘이?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닌데 왜 이 왜 이러고 다니는 거야?'"

-박기훈(가명), 장영범 후배

둘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걸 아는 사람은, 김형식과 장영범 둘 뿐이지. 지금 제일 중요한 건, 장영범의 신병 확보야. 지금까지 파악한 모든 것들은, 장영범을 못 잡으면 아무것도 아닌 게 돼.

"본범을 검거하지 못하면, 이 청부라는 건 어떻게 증거가 없고. 이 사람을 잡을 방법이 없어요. 본범이 잡혀야 되거든요."

- 김명신, 당시 사건 담당 형사

중국 공안의 연락을 기다리던 형사들은 속으로 '제발 살아만 있어라'고 했대. 혹시 모르니까. 살아있어야 검거가 되고, 송환이 되어야, 자백을 들을 수 있잖아. 그리고 사건 발생 두 달 반이 지난 5월 22일. 중국의 주재관으로부터 연락이 왔어. 장영범이, 중국 심양에서 검거됐다는 거야.

이제 송환 절차가 남아있어. 근데 이게 시간이 걸려.

"잡았다고 했을 때 우리는 더 걱정인 거죠. 이 '형식'이라는 게 있잖아요. 불법체류 기간 동안에 어떤 범죄가 있었는지 확인해야 되기 때문에 엄청 시간이 오래 걸리거든요."

-윤경희, 당시 사건 담당 팀장

혹시 중국에서 그 사이에 범죄라도 저질렀으면, 그걸 다 처벌받고 와야 해. 그러니 송환 결정이 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거야. 그런데, 운명의 장난도 이런 장난이 없어. 이때가 5월인데, 6월 4일 지방선거까지 한 달도 남지 않은 거야. 김형식이 본격적으로 재선을 준비하기 시작한 거지. 김형식이 선거사무소를 차릴 때부터, 형사들은 매일 김형식을 봤어. 마주치고 싶지 않아도, 계속 볼 수밖에 없었어. 왜? 그때 김형식의 선거사무소가 강서경찰서 바로 맞은편에 있었거든. 경찰서에서, 건너편에 있는 김형식의 사무실이 바로 보이는 거야. 형사들이 심정이 어땠겠어?

"경찰서 바로 앞에서 선거사무실 개소를 하고. 우리가 또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거기서 선거사무소 개소 축하 밥을 먹고 있는 거예요. 정말 속에서 불이 나더라고요."

-윤경희, 당시 사건 담당 팀장

형사들이 부글부글 끓는 심정으로, 모든 상황을 예의주시 하고 있었어. 그런데 그때, 공안에 잡혀 있던 장영범이 가족들에게 연락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 그런데 장영범은 가족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어.

'나, 여기서 끝내야 할 것 같아. 식구들 다 책임져 줄 테니까, 나보고 다 안고 가래.'

교사범이 장영범에게 죽으라고 했다는 거야. 혹시라도 정말 장영범이 죽을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의 형사들 앞에서, 김형식은 유세 활동을 시작했어.

"범인을 앞에 두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이게 너무 답답한 일이죠. 이거는 당해보지 않으면 모르거든요. 점심 때도 보고, 저녁 때도 보고, 식당에서도 보고, 지나다가 악수도 하고. 눈빛으로 레이저 쏘는 거죠. 말은 못 하고…"

- 김명신, 당시 사건 담당 형사

▲ 현직 시의원을 잡아라

그리고 2014년 6월 4일. 지방선거날이 다가왔어. 결과는? 김형식은 재선에 성공했어. 김형식 선거 사무소는 완전 축제야. 그런데 중국으로부터 소식은 아직 없어. 그렇게 20일이 흐르고…

드디어 장영범의 송환이 결정됐어. 형사들은 떨리는 마음으로 중국행 비행기를 탔어. 형사들은 가는 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장영범의 자백을 받는 거야. 그의 입에서 '김형식'이라는 이름이 나와야 해.

긴장되는 마음으로, 드디어 형사들이 중국에 도착했어. 공항 VIP룸에서 형사들과 중국의 수사 관계자들이 모였어. 중국 공안의 추방 절차에 설명이 끝나고, VIP실 안에 있던 문이 열렸어. 그 문에서, 장영범이 중국 공안에게 양팔이 붙들린 채 나왔어. 근데 장영범을 보자마자, 형사들이 깜짝 놀랐어.

"정말 그 조선시대에나 쓰는 그 족쇄 있잖아요. 발목에 차는 거. 이만하게 두꺼운 그 족쇄. 족쇄를 양쪽 발에 쇠사슬로 해가지고 이렇게 잘 걷지도 못해. 어기적 어기적 해가지고 이렇게 꽁꽁 묶여 있었는데."

-윤경희, 당시 사건 담당 팀장

"가까이 왔는데, 다리에 쇳독이 올라서. 다리도 막 말도 아니고…"

-김명신, 당시 사건 담당 형사

발목엔 족쇄까지 차고, 행색이 말이 아닌 거야. 알고 보니 장영범이 유치장에서 극단적인 시도를 한 거야. 그것도 두 번이나. 교사범이 죽으라고 시켰는데, 정말로 시도를 했던 거야. 그래서 족쇄로 묶어놨던 거지. 장영범을 만난 형사. 첫마디를 뭐라고 내뱉었을까?

"고생했다는 말이 먼저 나오더라고. 나도 모르게. 장영범이 눈물을 그냥 거기서 팍 눈물을 쏟으면서 이렇게 막 우는데… '그래 고생했다, 한국 가자' 하니까 울면서 '네' 그러더라고요."

-윤경희, 당시 사건 담당 팀장

그렇게 중국으로부터 신병을 인도받고, 장영범과 형사들이 한국행 비행기에 탔어. 그제야 형사들이, 장영범에게 너무나도 묻고 싶었던 질문을 할 수 있었어. "누가 시켰어?"라고. 장영범은 이렇게 대답했어.

"형식이요. 형식이가 다 시켰어요"

드디어, 김형식이 교사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어.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이야. 형사들은 곧바로 한국으로 연락해. 그 시각, 김형식의 집 앞에서 잠복 중이던 다른 형사들이 김형식을 긴급체포했어. 그런데 김형식 반응, 덤덤해. 마치 기다려왔다는 듯이.

선거가 끝나고 20일밖에 지나지 않았던 시점에, 현직 시의원이 살인교사 혐의로 체포되자, 전국이 발칵 뒤집혔어. 그것도 평소에 이미지가 좋았던 시의원이 체포됐으니, 반응이 어땠겠어? 오히려 김형식이 억울하게 뒤집어 쓴 거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어.

하지만 이미 모든 증거는 확보해 둔 상태야. 그리고 범인 장영범 입에서도, 김형식의 이름이 나왔어. 그의 집에서, 그가 쓰던 대포폰도 5개나 발견됐어. 김형식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재벌 척결 필요성을 강조하며 삼성의 제품을 하나도 쓰지 않는다고 말해 왔어. 그런데 그가 사용하는 휴대폰 중에는 삼성 폰이 두 대나 있었대. 앞과 뒤가 다른 사람이야.

한국에 온 장영범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술술 불었어. 현장검증에서도 순순히 범행을 재연했어.

"회장님, 죄송합니다 그러고 이 상태였죠 처음에는… 지갑이 볼록하게 보이길래 지갑을 빼냈습니다. 차용증을 찾고 있었습니다."

-장영범, 현장검증에서

장영범은 김형식이 쓴, 바로 그 차용증을 찾았다고 했어. 김형식이 양 회장을 살해하고 차용증을 가져오라고 시켰다는 주장이야. 모든 범행의 시나리오는 김형식이 짰다는 거야. 장영범은 범행이 있기까지,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털어놨어.

약 1년 전, 여느 때와 같이 둘이 술을 마시고 있었어. 근데 평소와 다르게 표정이 안 좋던 김형식이 갑자기 이러더라는 거야.

"야 영범아, 나 요즘 힘들어 죽겠다. 그 영감이 자꾸 나를 협박하고 괴롭혀."

들어보니까, 양 회장이라는 사람한테 돈을 받았대. 그 대가로 땅을 용도변경 해야 하는데, 그 땅이 절대 안 풀리는 땅이라는 거야. 이 땅, 어딘지 알겠지? 그리고 며칠 뒤, 다시 만난 김형식이 이번엔 이렇게 말했어.

"그 영감을 없애지 않으면 내 정치생명과 모든 게 끝난다. 친구야 부탁한다… 네가 좀 없애주라. 너는 그 사람과 관련이 없으니, 너는 걸릴 일이 없을 거야."

장영범의 사업이 망했을 때, 김형식이 7천만 원을 빌려주면서 도와줬다고 했잖아? 그 돈을 갚지 않아도 되니, 살해를 부탁했다는 거야. 그때만 해도 장영범은 그냥 '알았다' 하고 말았어. 그냥 술 먹고 하는 얘긴 줄 알았던 거지. 근데 며칠 뒤에도, 또 며칠 뒤에도 계속 부탁을 하는 거야. 밤마다 불러서 가면, 김형식은 장영범을 양 회장의 건물에 데려갔어. 왜? 건물 근처에 있는 CCTV를 확인하고, 범행부터 도주로까지 동선을 알려준 거지.

"감시카메라가 없다는 얘기를 들어서 형식이가 알려줬어요. 형식이는 매일 여기를 왔다갔다하고 아마 자기가 먼저 동선을 파악해 놓은 것 같습니다."

-장영범, 현장검증에서

김형식은 장영범에게 양 회장이 사무실에 들어가는 시간, 나오는 시간까지 다 알려줬다고 해. 그리고 김형식의 부탁은, 2013년 9월이 되면서 점점 닦달로 바뀌었다고 해. 왜 하필 그때였을까? 서울시에서 용도변경 건을 최종적으로 무산시킨 직후였거든. 김형식이 왜 그때쯤 장영범을 닦달했는지 알겠어?

그러던 2014년 1월, 김형식이 장영범을 불러내. 그러더니 "야, 네가 하도 못하니까 내가 해야겠다"며 김형식이 양 회장을 직접 죽이겠다고 나선 거야.

"'오늘 꼭 자기가 죽여야 되겠다' 그러면서. 열어보니까 거기에 도끼하고 칼하고 충격기하고 밧줄하고 그렇게 있었습니다."

-장영범, 현장검증에서

범행 도구인 손도끼와 전기 충격기도 김형식이 직접 준비했던 거야. 그리고 장영범은 여기서 잘못된 선택을 해. 장영범은 김형식의 시나리오를 잘 수행했어. 그리고 살해 후 중국으로 도망을 간 것도 김형식의 시나리오였어. 그런데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김형식이 시키는 대로 했던 장영범이, 지금 모든 걸 다 털어놓는 이유가 뭘까?

장영범이 중국에서 검거됐을 때, 극단적 선택을 권했던 김형식. 그리고 장영범은 진짜 목숨을 끊으려고 하다가 실패했어. 다행히 목숨을 건진 장영범이, 김형식에게 전화로 '못 죽었다'고 얘기했대. 그 얘길 들은 김형식, 뭐라고 했을 것 같아?

"못 죽었다고? 장난해? 너 진짜 나랑 네 가족들까지 죽는 꼴 보고 싶은 거야?"

불같이 화를 냈다는 거야. 그때 장영범 심정이 어땠겠어? 친구를 위해 목숨까지 끊으려고 했지만, 친구는 자길 오로지 도구로 생각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된 거야.

그럼 김형식은 경찰에서 뭐라고 했을 것 같아? 체포됐을 땐 덤덤했던 김형식은, 경찰 조사에서 모든 혐의를 부인했어.

"조사할 때 제가 한 10시간씩 3일을 조사했거든요. 같이 밥도 먹으면서. 대포폰 자기가 쓴 거 맞대요. 근데 이것도 비밀스럽게 국정원에서 다 우리 정치인들은 다 해킹을 해가지고 보기 때문에, 비밀로 하기 위해서 대포폰을 쓴 거다. 그리고 전기 충격기는 뭐 '당신이 사줬다고 그러는데, 왜 그래?' 그러면 내가 정치인이다 보니까 민원인들한테 압박을 많이 받는다는 거예요. 살해 압박을 많이 받는데요.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청계천에서 샀다는 거예요. 그런데 피의자랑 같이 차에 타 있을 때 걔가 가져간 거다..."

- 김명신, 당시 사건 담당 형사

김형식은, 양 회장에게 청탁을 받은 건 맞지만 평소 양 회장과 사이가 좋아 살해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어. 차용증은, 양 회장이 세금 때문에 가짜로 써달라고 해서 그냥 써줬다는 거야.

엄밀히 말하면, 이 살인 교사를 증명할 증거는 없어. 김형식의 살인 청부를 뒷받침하는 건, 장영범의 자백뿐이야. 기소는 가능하나, 재판까지 가면 어떻게 될지 몰라.

▲ 뒤틀린 우정

그런데 그때! 유치장에서 윤경희 팀장에게 다급한 전화가 왔어. 장영범이 찾는다는 거야. 윤경희 팀장이 급히 달려갔어. 유치장에서 만난 장영범, 윤경희 팀장에게 이걸 전해줬어.

칫솔. 뚜껑을 여니 돌돌 종이가 감겨 있어.

"지금 갖고 있는 증거는 네 진술과 네가 얘기해 준 ㅇㅇ씨 진술뿐이야. 절대로 쫄지 마라. 그리고 지금은 무조건 묵비권! 묵비권 해도 불리한 건 반성이 부족하다는 건데, 반성여부보다 형량에 훨씬 더 큰 건, 의도성 유무다. 기억해! 지금 저들이 가진 증거는 네 진술(바뀔 수도 있는) 뿐이야."

-칫솔에서 발견된 쪽지

이건 김형식이, 장영범에게 보낸 쪽지야. 유치장 화장실에 걸려있는 장영범의 칫솔에, 이 쪽지를 넣어둔 거야. 수사받는 가이드라인을 정해준 셈이야. 영범이가 자기 친구고, 자기를 위해 입 다물어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 이 쪽지를 본 윤 형사는 쾌재를 불렀어. 이건 김형식의 자백과 마찬가지인 거야. 만약 진짜 죄가 없다면, 이런 걸 보낼 리가 없잖아. 친구를 믿고 쪽지를 보냈는데, 그 친구는 경찰에 협조적이었던 거지.

결국 김형식은 모든 혐의가 인정되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어. 끝까지 억울하다며 항소했지만, 판결은 달라지지 않았어. 유치장에서 장영범에게 보낸 그 쪽지가, 오히려 결정적 증거 역할을 했어. 김형식은 법원을 나가는 순간까지 억울하다면서, 퇴정을 거부하다가 끌려나갔대. 권력을 이용해 사익을 채우고, 친구까지 도구로 이용하려 했던 정치인은, 결국 그렇게 사회에서 제명됐어. 그리고 친구를 믿고 살인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던 장영범은 징역 20년을 받았어.

만약 형사들의 끈질긴 수사가 없었다면, 우리는 김형식을 여전히 좋은 정치인으로 여기며 살고 있을지도 몰라.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검은 욕망을 채우기 위해 어딘가에서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 사람이 있을 거야. 하지만 아무리 어둡고 깊은 곳에 숨어있어도, 그 추악한 실체는 언젠가 수면 위로 드러나게 돼 있어. 그게 오늘 우리가 이 어두운 이야기를 다시금 되새겨본 이유야.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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