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년전 오늘] 모두에게 '비극'으로 끝난 8살 퓨마 '뽀롱이'의 첫 외출

유혜인 기자 2024. 9. 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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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살된 퓨마 사육장. 연합뉴스

"사람이 잘못했는데 왜 동물이 죽어야 하나요?"

2018년 9월 18일 오후 5시쯤, 대전은 발칵 뒤집혔다. 맹수로 알려진 퓨마가 동물원에서 탈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이날 오전 8시쯤 보조 사육사 한 명이 사육장에 있는 중형육식사 방사장에 들어가 40분간 청소를 하고 나오면서 내측문을 잠그지 않았다. 동물원 측은 그로부터 약 8시간 30분이 지난 오후 5시 15분쯤이 돼서야 퓨마 4마리 중 1마리가 사라진 사실을 인지했다. 관계자들은 동물원 관람객들과 보문산 일대 등산객을 긴급 대피시키고, 곧바로 119 신고했다. 사육사가 순찰하던 오후 4시쯤까지는 퓨마가 사육장 안에 있었고, 오후 5시쯤 퓨마가 탈출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과 소방 당국은 퓨마 수색에 나섰고, 같은 시간 대전시는 긴급재난문자를 보내 보문산 인근 주민의 외출 자제를 당부했다. 인근에 사는 주민들은 집 문단속을 하고, 퓨마가 포획되기를 기다렸다. '오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긴급재난문자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실시간 올라오는 글을 보며 하굣길과 퇴근길을 걱정했다.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는 순식간에 '퓨마', '호롱이'(사건 발생 초기 혼동됐던 이름), '뽀롱이' 등으로 가득 차며 국민적 관심이 커졌다.

◇퓨마 '뽀롱이'의 첫 외출
사라진 퓨마는 8살짜리 암컷으로, 몸무게 60㎏에 이름은 '뽀롱이'다. 2010년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나 2013년 2월 대전 중구 사정동에 위치한 테마파크 오월드로 이송됐다. 8년 평생 각진 철장에서 자라 '구경거리'였던 뽀롱이는 2018년 9월 18일 태어나 처음으로 철장을 벗어났다. 신고를 받은 경찰과 소방 당국은 곧바로 퓨마 수색에 나섰지만 찾지 못했고, 포획이 늦어지면서 경찰특공대와 119 특수구조단까지 수색에 참여했다. 수색에 투입된 인원만 476명에 이른다. 수색 시작 1시간 20분 만인 오후 6시 34분쯤, 수색대는 오월드 내 뒷산에서 뽀롱이를 발견하고 마취총을 겨눴다. 동물의 몸에 마취약이 퍼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5-10분 가량. 뽀롱이는 마취총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고 오월드 내부를 배회하다 이내 수색대 시야에서 사라졌다. 수색대와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던 뽀롱이는 오후 8시 20분쯤 인근에서 다시 발견됐다. 하지만 뽀롱이가 사람을 보고 재빨리 도망가면서 수색대는 또다시 포획에 실패했다. 뽀롱이는 마취에서 깨 공격성이 강해졌고, 오월드 울타리를 벗어날 경우 자칫 잘못하면 시민 안전을 위협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오월드 측은 날이 어두워지면서 퓨마를 포획하기 어렵다고 판단, 사살을 결정했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오후 8시 38분쯤 엽사와 사냥개를 투입했다. 뽀롱이는 탈출 신고 4시간 30분 만인 오후 9시 44분쯤 다시 발견돼 사살됐다. 시는 사살 직후인 9시 46분쯤 긴급재난문자를 통해 뽀롱이의 이 사실을 알렸고, 시민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뽀롱이의 첫 외출은 그렇게 죽음으로 끝났다.

2018년 9월 사살된 퓨마 '뽀롱이'를 추모하는 공간. 연합뉴스

◇잇단 동물원 폐지 국민 청원
뽀롱이 탈출 사건이 사살로 마무리되면서 여론은 들끓었다. 사살 조치가 적절했느냐는 의문이 제기됐고, 동물원에 전시된 동물들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더불어 뽀롱이를 죽게 만든 원인이 동물원에 있으니, 동물원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뽀롱이가 사살된 바로 다음 날인 9월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퓨마 탈출의 빌미를 제공한 관계자를 처벌해 달라거나 동물원 폐지를 요구하는 청원이 50여 건 올라오기도 했다. 청원인들은 퓨마를 사살할 수밖에 없었는지, 동물원과 구조팀의 대응이 적절했는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한 청원인은 "아무리 주민의 안전이 우선이었다고 하지만 정말 그게 최선이었냐"며 "마취총 한 번으로 한 됐다면 한 번 더 쏘고 생포할 수 있었던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반면 일각에선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수도 있었던 문제"라며 맞서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동물원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렸다. 여러 동물보호 전문가들은 "좁은 곳에 갇힌 동물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며 "퓨마 같은 야생동물의 동물원 전시는 야생의 감동도 느낄 수 없어 교육적인 측면도 없다"고 지적했다. 다수의 사람들은 뽀롱이가 사살되기 전까지 평생을 좁은 동물원 사육장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안타까워했고, 실수로 사육장 문을 열어둔 사람의 실수로 퓨마가 목숨을 잃었다는 것에 아파했다. 한 네티즌은 "멀리 가지도 못하고 결국 동물원에서 죽었구나"라며 "평생 처음 느끼는 자유였을텐데, 인간의 실수로 죄 없는 생명이 죽었다"며 뽀롱이를 추모했다.

◇ 동물원 관리에 '경종'을 울리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동물원 운영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높아졌다. 사건 이후 이뤄진 특별 감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 사건이 발생한 동물원은 근무명령·안전수칙 등을 위반한 채 운영해 왔다. 내부 규정상 하루 근무조는 3명으로 구성돼야 하나 사건 당일에는 직원 2명이 휴무를 갔다. 업무분장상 혼자서는 사육장에 들어갈 수 없었으나, 사건 당일에는 퓨마 사육장에 사육사 1명이 홀로 출입하게 됐다. 감사실 관계자는 "연중무휴로 동물원을 운영하는 와중에 직원들이 일주일에 2일 자율 휴무를 갖다 보니 사건 발생 당시처럼 1인이 방사장에 출입하는 근무조가 편성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사육장 이중잠금장치 출입문이 설치되지 않은 곳은 전체 22개소 중 6개소였으며, 퓨마 사육시설에 있던 2개의 폐쇄회로(CC)TV도 고장 난 채 방치돼 있었다. 이에 따라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동물원 원장과 동물관리팀장은 각각 중징계를, 실무 담당자는 경징계 처분을 받았다. 또 동물원 내 퓨마 사육시설은 환경 당국의 1개월 폐쇄 명령에 따라 운영이 잠시 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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