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훔친 1,000대의 볼보”… 美 자동차 매체가 재조명한 ‘역대급 차량 미수금 사건’
1974년, 스웨덴 자동차 브랜드 볼보가 북한에 보낸 1,000대의 신차. 그리고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계속해서 발송되는 ‘미수금 고지서’. 믿기 어려운 이 이야기가, 최근 미국의 자동차 전문매체를 통해 다시 한 번 조명되며 전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단순한 수출 실패 사례를 넘어, 이 사건은 외교·경제·역사·자동차 산업까지 얽힌 복잡한 배경을 지닌 사건이다. 카버즈는 이를 “역사상 가장 기묘한 자동차 도난 사건이자, 북한이라는 국가가 벌인 최대 규모의 ‘자동차 사기극’”이라 평가했다.

“1,000대 수출, 그런데 입금은 0원” …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사건의 시작은 1974년. 당시 스웨덴 정부는 북한과의 외교적·경제적 관계를 본격적으로 강화하던 시기였다. 한국전쟁 당시 스웨덴은 적십자사를 통해 한국에 의료 지원을 제공했고, 이를 계기로 북한과도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 결과, 1973년에는 북한과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양국 간 무역 협정을 추진하게 된다.
이 무역 협정의 일환으로, 볼보는 자사의 인기 중형 세단이었던 ‘볼보 144’ 1,000대를 북한에 수출하기로 결정한다. 볼보 144는 당시 기준으로는 꽤 고급 차량에 속했고, 스웨덴 입장에서는 북한에 진출할 수 있는 상징적인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차량이 평양항에 도착한 이후, 스웨덴 정부와 볼보가 예상치 못한 상황이 펼쳐진다. 북한이 차량 대금 지급을 거부한 것이다.
당시 기준으로 약 6천만 달러(현재 가치로 약 7,500만 달러), 이자 포함 현재까지 누적된 금액은 무려 4억 3천만 달러(한화 약 5,7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차들, 지금도 북한 도로 위에 있다”
북한은 이 차량들을 단순 전시용으로 쓰지 않았다. 볼보 144는 평양 시내의 관용차 혹은 택시로 활용되며 실제 도로 위를 달렸다. 일반 시민들이 차량을 소유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북한 체제 특성상, 이 차량들은 오직 국가의 승인을 받은 일부 간부들에게만 배정되었다. 만약 해당 간부가 정치적으로 실각하면, 차량은 즉시 다른 고위 간부에게 재배정되었다는 후문도 있다.
이들 차량 중 일부는 현재까지도 평양 거리에서 운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놀랍게도 50년이 지난 지금도 볼보 144가 달리고 있는 이유에 대해, 미국 매체는 “당시 볼보가 얼마나 내구성 있고 정밀하게 차량을 설계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며, 볼보의 기술력에 대해 높게 평가했다.


“그래도 볼보는 망하지 않았다”… 보험 덕분에 피해 면해
수출 대금을 받지 못한 볼보는 과연 어떻게 대응했을까? 예상과 달리, 볼보는 이 사태로 인한 직접적인 재정 손실은 거의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스웨덴 수출신용청(EKN)**이라는 국가기관이 이 계약을 보험으로 보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가 보험금을 지급했고, 볼보는 손실을 피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스웨덴 정부는 매년 2회, 북한에 미수금 고지서를 발송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북한은 그 어떤 반응도 하지 않으며, ‘무응답’으로 일관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은 이 ‘채무 이행 요청서’를 보내는 것을 멈추지 않는데, 이는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니라 역사적 기록과 외교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 당시 볼보 144는 어떤 차였을까?
북한이 ‘훔친’ 차, 볼보 144는 과연 어떤 차량이었을까? 1966년부터 1974년까지 생산된 볼보 144는 볼보 최초의 100만 대 판매 모델이었다. 당시 CEO였던 군나르 엥겔라우는 “볼보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투자로 개발된 차량”이라며 야심차게 소개한 바 있다.
이 모델은 전 세계적으로 안전성과 내구성으로 유명했으며, 세계 최초로 4륜 디스크 브레이크와 이중 회로 브레이크 시스템, 충돌 시 충격 흡수 스티어링 칼럼 등을 적용한 모델이었다. 정통 후륜구동 방식으로, 1.8리터 또는 2.0리터 직렬 4기통 엔진을 탑재했고, 최고속도는 약 160km/h 수준이었다.
실제로 볼보 144는 세단, 쿠페, 왜건, 밴(145 익스프레스) 등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존재했고, 고급감과 실용성을 모두 갖춘 차량으로 평가받았다.

美 자동차 매체가 본 북한-스웨덴 무역의 ‘기묘한 이면’
미국 매체는 이번 기획 기사에서 이 사건을 단순히 ‘자동차 미수금 사건’으로 보지 않는다. 스웨덴이 북한과 수교한 유일한 서방 국가라는 사실에 주목하며, 이 사건이 외교적 관계 형성의 일환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즉, 북한에 1,000대의 차량을 보낸 것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출이 아니라, 스웨덴이 북한과의 외교 채널을 확보하기 위한 일종의 외교적 투자 혹은 상징적 제스처였다는 해석이다. 그 결과, 스웨덴은 오늘날까지도 북한에 상주 대사관을 유지하고 있으며, 북미 대화 등 국제 외교에서 중요한 중재자 역할을 맡고 있다.

결론: “사라진 볼보는 외교 채널이 되었다”
결국 북한은 볼보 144를 통해 실질적인 ‘자동차 절도극’을 벌였고, 이 사건은 여전히 미해결 상태다. 하지만 미국 매체는 이번 기사를 통해 “볼보 144는 단지 사라진 수출품이 아니라, 스웨덴이 국제외교에서 입지를 다지는 데 기여한 상징물”이라고 정리한다.
자동차 한 대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한 나라의 외교적 전략과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자동차 역사에서 보기 드문, 매우 독특하고 중요한 사례로 남는다.
그리고 50년이 지난 지금도, 볼보는 여전히 묵묵히 평양 거리에서 달리고 있다. 어쩌면 그 오래된 엔진 소리 속에, 스웨덴과 북한이 서로에게 건넨 무언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는지도 모른다.

Copyright © Auto Trending New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 학습 이용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