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연구원이 폐암으로 어머니 잃은 후 사표내고 개발한 것

브레싱스 이인표 대표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으 이야기. ‘스타트업 취중잡담’을 연재합니다.
브레싱스 이인표 대표. /더비비드

살아있다는 대표적인 증거는 ‘호흡’이다. 위급한 상황에 놓였을 때 숨부터 확인할 정도로 호흡은 중요하다. 그러나 폐는 ‘침묵의 장기라 불릴 정도로 질병이 있어도 증상이 잘 발현되지 않는다. 폐 질환을 파악하기 위해선 평소 폐 관리를 잘하고 질병을 조기에 발견해야 한다.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브레싱스는 폐 건강관리 기기 ‘불로(BULO)’를 만들었다. 불로로 폐활량, 폐 근력, 폐 지구력, 폐의 나이 총 4가지를 측정할 수 있다. 호흡 장애와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천식, 폐기종, 폐 섬유증 등 폐 질환 징후도 알 수 있다. 기기를 전용 앱에 연동하면 측정 결과에 따른 호흡 운동법을 추천받을 수 있다.

국내 온라인몰에서 판매를 시작해 미국, 일본 등으로 진출했고 국내외의 권위 있는 기관에서 수상까지 했다. 브레싱스의 이인표(37) 대표를 만나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에 뛰어든 계기에 대해 들었다.

◇삼성전자 사내벤처 선정 후 퇴사

불로 제품 /브레싱스

2013년 2월 중앙대 컴퓨터비전학과 졸업 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무선사업부 카메라 개발 부문의 연구원으로 일하며 안정적으로 직장 생활을 했다. 인생의 반전은 2017년 3월, 삼성전자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해커톤에 참가한 뒤 찾아왔다. 해커톤이란 팀을 이뤄 시제품 단계의 결과물을 만드는 대회로, 일종의 창업경진대회다.

-해커톤에 참가한 계기는요.

“2016년 어머니가 폐암으로 돌아가셨어요. 폐가 정말 취약한 장기임을 처음 알았어요. 한번 나빠지면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더라고요. 심하면 단기간에 목숨까지 잃을 정도였죠. 문제는 통증이 없는 기관이라 악화되기 전까지는 발병한 줄도 모르고 방치한다는 거에요. 집에서 호흡기를 관리할 수 있는 기기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이 가득하던 시기, 회사에서 해커톤을 열길래 바로 참가했습니다.”

삼성전자 C-lab 시절 이 대표와 팀원들. /본인 제공

-결과는 어땠나요.

“해커톤을 하면서 삼성서울병원 의사와 삼성메디슨에서 의료기기 개발을 담당하던 연구원을 만났어요. 두 분도 가정용 호흡기 관리 기기를 구상했더라고요. 뜻이 맞아 함께 하기로 했어요. 4개월 뒤 삼성전자의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 씨랩에 선정됐어요. 그때부터 1년 동안 자금, 기획, 마케팅 등 전 과정에서 도움을 받는 벤처 인큐베이팅 기간을 거치면서 사업 기획을 구체화했죠.”

◇1년 반 걸친 실험, 제품 오차 3% 이하 달성

불로로 흡입하면 폐 건강 상태가 앱에 표시된다 /브레싱스

2018년 11월 ‘브레싱스’ 법인을 설립해, 이듬해 1월부터 기술 개발에 들어갔다. 호흡 측정기와 여기에 연동하는 앱 동시 개발에 착수했다. 호흡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1년 반 동안 수많은 실험을 거쳐 2020년 하반기, 호흡 측정기 ‘불로’(BULO)와 앱 불로 웰니스’(BULO wellness)를 완성했다. 온라인몰 메타샵(https://metashop.co.kr/)에서 한정 최저가 공동구매 행사를 하고 있다.

-불로의 작동 원리가 궁금합니다.

“입으로 바람을 세게 불면 기기 내부에 있는 센서가 호흡의 양과 압력을 측정합니다. 호흡 세기나 길이에 따라 폐활량, 폐 근력, 폐 지구력, 폐 나이 등을 진단해주죠. 미국 흉부학회와 유럽 호흡기 학회에서 인정하는 ‘표준 파형(신호를 전달할 때 사용하는 파동의 생김새) 테스터’를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호흡의 양이나 떨림 같은 것들의 표준을 알 수 있는 기기예요. 기기에 등록된 평균 파형과 불로의 파형이 같을수록 제품의 정확도가 높아지는 거죠.”

불로를 개발할 때 모습. /본인 제공

-개발 과정에서 힘든 점은 없었나요.

“제품의 정확도를 높이는 과정이 어려웠어요. 처음에는 다른 연구소를 빌려서 실험했는데, 공간적 제약이 많더라고요. 결국 미국흉부학회에서 인증한 고가의 표준 파형 생성기를 구매해 사무실 내 연구실을 만들었어요. 그때부터 밤낮으로 실험을 진행했어요.

실험의 핵심은 표준 파형 생성기가 만들어 내는 파형과 저희 제품에서 출력된 파형이 거의 동일하도록 하는 것이었어요. 처음에는 두 파형이 하나도 맞지 않았어요. 연구실에서 밤을 꼬박 새우며 수천 번의 실험을 반복한 끝에 오차율 3% 이내라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폐 근력 등 혈압처럼 일상 관리, 맞는 운동 추천

폐 건강 상태를 수시로 확인하고, 맞는 운동법을 추천받을 수 있다. /브레싱스

-기기로 측정한 결과는 어떻게 활용하나요.

“호흡량을 기반으로 폐활량, 폐 근력, 폐 지구력, 폐 나이 등의 건강 상태를 추정합니다. 기기와 연동된 앱을 통해 사용자의 상태에 맞는 호흡 운동법을 추천해줘요. 폐 질환자들의 재활을 위한 인스피로미터라는 재활운동 기구와 같은 기능이죠. 앱에 표시되는 시간 동안 호흡을 이어가야 한다거나 두 번 내쉬고 한번 들이마시는 등 호흡 가이드라인을 따라 하면 호흡에 필요한 호흡근을 튼튼하게 만들 수 있어요. 호흡근이 강화되면 폐활량이 늘어납니다.”

불로는 한국 KC, 유럽 CE, 미국 FCC 인증을 통과했다. 국내에서 7건의 특허를 등록했고, 유럽과 중국에서 2건의 해외 특허도 등록했다. /브레싱스

-다른 면에서 신경쓴 부분이 있다면요.

“제품 개발을 어느정도 끝낸 시점부터는 디자인에 힘썼습니다. 작고 휴대하기 좋게 한 손에 딱 잡히는 크기여야 했어요. 한국인의 표준 손 사이즈를 참고해서 제품 굵기를 조절했어요. 일반인 84명 대상으로 사이즈 테스트까지 거쳤습니다. 집에 둬도 외관을 해치지 않도록 외양은 깔끔하게 디자인했어요.

무엇보다 위생이 중요한 제품이라 세척이 쉽게 설계했어요. 입을 대는 부분과 손으로 쥐는 부분이 분리되는데요. 입에 대는 부분을 인체에 무해하고 물로 쉽게 헹굴 수 있는 플라스틱 소재로 만들었습니다.”

◇CES 2022 등 국내외 상 휩쓸고 아마존 입점

불로를 들고 있는 이 대표. /더비비드

작년 4월 미국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에서 불로를 처음 선보였다. 하루 만에 약 1억5000만원의 자금이 모였다. 지난 8월에는 미국 최대 온라인 상거래 플랫폼 아마존에도 입점했다. 국내에선 온라인몰 메타샵(https://metashop.co.kr/)에서 한정 최저가 공동구매 행사를 하고 있다.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인 CES 2021에서 혁신상을 받았다. 이어 지난 4월 국내에서 열린 월드아이티쇼(World IT show)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을, KES 2021(한국전자전)에서 혁신상을 거머쥐었다.

/더비비드

-연이어 수상한 비결은 무엇인가요.

“기술 개발에서 가장 신경 쓴 정확도 덕분입니다. 호흡 운동을 추천해서 소비자 스스로 관리까지 할 수 있도록 선순환을 만든 것도 유효했다고 생각합니다. 호흡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호흡 운동만으로도 건강을 지킬 수 있어요.”

-소비자 반응은 어떤가요.

“가정에서 쉽게 폐 상태를 확인할 수 있어 좋다는 반응이 많으세요. 나이가 들수록 폐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지다 보니 부모님 선물로 사는 분도 많아요. 집에서 간편하게 폐 건강을 지킬 수 있으니까요. 젊은 분 중에선 필라테스나 수영 등의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요. 운동을 하면서 폐활량이 늘었는지 확인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거죠.”

삼성 출신의 브레싱스 경영진 3인방 /브레싱스

-앞으로 목표는 무엇인가요.

“현재 ‘불로’는 비의료기기입니다. 폐 건강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만 제공할 뿐 질병에 대한 진단은 해주지 않아요. 올해 최소한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기기를 출시할 계획이에요. 이를 위해 의료기기 인증을 받은 버전을 개발 중입니다. 의료기기 인증은 행정 절차가 까다롭고 안정성 테스트를 더 꼼꼼히 해서 최소 1년 이상 소요돼요. 궁극적인 목표는 ‘호흡’하면 브레싱스가 떠오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에요.”

-예비 창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요.

“창업하기로 결심했다면 자기 사업에 확신을 했으면 좋겠어요. 스타트업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자 하는 목표가 있잖아요. 그것을 실현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이 생각보다 커요. 그 감정을 느낄 때까지 끝까지 밀고 나갔으면 합니다. 도전할 가치가 있는 일이에요. 누구든 응원하고 싶어요.”

/진은혜 에디터, 윤채영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