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없는 시신에서 단서를 찾다”…제주 부검실에 가다

"부검의 공백으로 변사사건 처리가 늦어지고, 장례까지 지연되면 어쩌죠."
지난해 8월까지만 해도 제주사회에서 심심찮게 제기되던 우려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직접 운영하는 부검시설이 없고, 시신을 해부할 법의관도 상주하지 않아 수사와 장례 절차가 동시에 늦어질 수 있다는 걱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제주에 상주하며 부검을 담당하는 법의관과 법의감정관이 배치되고, 부검실까지 마련되면서 부검 공백에 대한 불안은 상당 부분 해소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부검실이 들어선 곳은 제주경찰청 산하 옛 제주경찰교육센터로, 부검실의 정식 명칭은 '법과학분석실'. 제주경찰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제주분원이 함께 마련한 공간이다.
지난 11일 이곳에서 만난 김성희 제주경찰청 과학수사계장과 안지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제주분원 법의관, 최승우 법의감정관은 이 공간에서 변사사건의 사망 원인을 규명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성희 계장은 "112 신고가 접수되면 형사와 과학수사 요원이 현장에 출동하고, 범죄 혐의가 있거나 사인이 명확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한다"며 "현장에서 수집한 증거만으로는 판단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 부검은 수사에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실제 제주에서는 해마다 적지 않은 부검이 이뤄지고 있다. 2024년 4월부터 12월까지 제주에서 진행된 부검은 112건이었다. 2025년에도 113건의 부검이 진행됐으며, 이 가운데 법과학분석실이 마련된 이후인 8월부터 12월까지가 44건을 차지한다. 임시로 조성된 공간이지만, 현재 이곳은 제주 변사사건 수사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부검은 시신이 이곳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시신의 무게와 신원을 확인한 뒤 형사와 법의관, 감정관이 사전 인터뷰를 통해 발견 당시 상황과 현장 정보, 진료 기록 등을 공유한다. 이후 외표 검사를 통해 외상이나 외력 흔적을 확인한 뒤 본격적인 해부가 진행된다.

안지연 법의관은 부검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영아 사망사건을 언급했다. "처음에는 자다 숨진 돌연사로 알고 왔는데, 부검을 해보니 머리 골절과 뇌출혈이 있었다"며 "이후 경찰이 추가 조사를 진행했고, 부모가 아이를 떨어뜨린 사실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안 법의관은 "겉으로 보기에는 자연사처럼 보여도 내인사인지 외인사인지는 열어봐야 알 수 있다"며 "그래서 부검 의뢰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마약이나 정신성 의약품이 사인으로 의심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부검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최 감정관은 "짧게는 2시간, 길면 4~5시간이 걸리고, 이후 조직 검사와 약독물 분석 결과까지 취합해 감정서를 작성한다"며 "인원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긴급 사건까지 모두 처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주 법의관 체계가 갖춰지면서 현장의 부담도 줄었다. 김성희 계장은 "과거에는 법의관이 일주일에 한 번 내려오는 구조라 부검이 지연되는 경우가 있었고, 그로 인한 민원도 많았다"며 "지금은 주 2회 부검이 가능해지면서 부담이 줄었다"고 말했다.
부검 결과는 수사뿐 아니라 유족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범죄 가능성 판단은 물론, 고인의 명예 회복이나 보험 문제 등에서도 실마리가 되기 때문이다.
안 법의관은 "사인이 불분명해 유족들이 보험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부검을 통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사인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감정관 역시 "현장에서 작성된 사망진단서의 오류가 부검을 통해 바로잡히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최승우 감정관은 부검의 역할을 이렇게 정리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단서를 얻는다면, 국과수는 시신에서 단서를 얻습니다."
경찰과 국과수의 이런 역할 분담과 긴밀한 공조가 이뤄질 때 비로소 사건의 실마리에 다가갈 수 있다는 의미다.
김성희 계장은 "사인을 정확히 밝히는 것도 범죄 예방의 일환"이라며 "수사를 잘하고 부검까지 제대로 이뤄질 때 사회에 대한 신뢰도도 높아진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