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커의 득세
싱커(sinker)는 약칭이다. 본명은 따로 있다. 싱킹 패스트볼(sinking fastball)이다. 그러니까 빠른 볼의 일종이다.
던지는 손 반대로 휜다. 슬라이더, 커브와는 대칭되는 방향성이다. 오른손 투수가 좌타자를 상대할 때 유리한 구조다. 여기에 가라앉는 성질을 가졌다. 땅볼 유도가 쉽다.
투심(tow-seam fastball)과는 친형제 사이다. 얼핏 닮아서 구별이 힘들다. 쌍둥이라고 취급하는 경우도 많다. 스탯캐스트는 둘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아예 같은 공으로 간주하는 셈이다.
구질, 구종도 시대를 탄다. 한 때는 대세를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플라이볼 혁명 때 가치가 급락했다. 위로 띄우는 스윙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이후로 사용 빈도가 급격히 낮아졌다. 10년 전에는 부고 기사라도 실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유행은 돌아오는 법이다. 최근 들어 다시 부흥기를 맞는다. 희소성 때문에 가치가 높아진 것이다.
전략적인 이유도 있다. 타자를 상대하는 폭을 넓혀준다. 공략할 빈 공간이 제공된다는 의미다. 중요성이 커진 하이 패스트볼의 보완재 역할도 해준다. 높고, 솟아오르는 직구에 비해 낮게 감기는 변화가 효과적이라는 필요성이 대두된다.
새로운 무기로 추가하는 투수들이 늘었다. 특히 A급 레벨에서 너도나도 아이템으로 장착한다. 폴 스킨스, 센가 코다이, 딜런 시즈, 잭 라이터, 칼로스 로돈, 닉 피베타 등등이 스프링 캠프 동안 갈고닦았다.
덕분에 올 시즌 구사율이 상당히 높아졌다. 전반적으로 15~20% 정도의 사용 빈도가 되는 것으로 집계된다. 그만큼 득세한다는 의미다.
물론 모든 타자에게 통하는 건 아니다. 예외도 있다. ‘바람의 손자’가 대표적인 경우다.

싱커 타율 0.476
이정후(26)의 올해 기록이다. 37게임에서 156타석을 소화했다.
짧지 않은 구간이다. 그동안 다양한 구질을 상대하기 마련이다. 9개나 되는 구종이 그에게 도전했다. 포심 (패스트볼),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커터, 스플리터, 스위퍼 같은 변화무쌍함이 스윙을 혼란하게 만든다.
제법 상대성이 뚜렷하다. 잘 치는 구질이 있는 반면, 대응이 어려운 것도 있다. 커브(상대 타율 0.200)나 체인지업(0.250) 같은 느린 속도에 약점이 드러난다.
유난히 눈에 띄는 점이 있다. 싱커에 대한 반응이 놀라울 정도다. 강한 타구(hard hit)를 만들어낸 경우가 40%나 된다. 당연히 결과도 좋다. 상대 타율이 무려 0.476이나 된다. 장타율은 0.714로 올라간다. 자신의 평균을 훨씬 상회한다. (타율 0.301, 장타율 0.490)
이런 데이터는 꽤 의미가 있다. 어쩌다 한 번씩, 가끔 오는 승부구가 아니다. 그러니까 싱커는 그가 많이 상대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구질이다. 좌타자인 그에게 우투수들이 자주 쓰는 구종인 탓이다.
실제로 그렇다. 가장 많은 타격 결과를 낸 것이 물론 포심(53회)이다. 그다음이 바로 싱커(23회)다. 이어 체인지업(21회), 슬라이더(17회)의 순서다.
전반적으로는 패스프볼 계열에 성적이 좋다. 포심, 싱커, 커터 같은 부류를 잘 공략했다는 뜻이다. 76번의 타격에서 26개의 안타를 만들어냈다. 타율로 따지면 0.342다. 홈런 2개, 2루타 4개, 3루타 1개가 포함됐다. (삼진 10개)
반면 브레이킹 볼이나 오프 스피드 피치에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67타수 17안타에 그쳤다. 타율 0.254다. 17개의 안타 중에는 홈런 2개와 2루타 4개가 섞였다. 삼진은 7번을 당했다.


사라진 싱커
그런데 달라졌다. 최근 들어 변화가 생겼다. 좋아하는 밥상이 잘 차려지지 않는다.
우선 기회가 중요하다. 모두가 싱커볼러(sinker baller)는 아닌 탓이다. 그 공을 잘 쓰는 투수를 만나야 한다. 그래야 상대해서 결과를 얻는다.
하지만 요즘 몇 경기는 대진운이 별로였다. 상대 투수와 상성이 안 맞았다. 최근 5경기에서 만난 선발 투수와 그들이 잘 쓰는 공은 다음과 같다. (괄호 안은 주요 구종)
8일 벤 브라운 (체인지업, 커브)
7일 콜린 레아 (커터, 커브)
6일 매튜 보이드 (체인지업, 슬라이더)
5일 헤르만 마르케스 (싱커, 포심)
4일 브래들리 블레이락 (스플리터, 커브)
5게임 동안 23타수였다. 여기서 건진 안타는 5개다. 타율로 따지면 0.217이다. 그나마 7일 경기가 있어 다행이다. 콜린 레아의 포심(94마일)을 받아쳐 4호 홈런을 쳐냈다. 3안타 게임으로 3할 유지가 가능했다.
닷새 동안 상대한 투구가 78개다. 이중 싱커는 4개밖에 없었다. 비율로 따지면 5.1%에 불과하다. 리그 평균인 15~20%에 비하면 1/3 수준이다.
받은 것도 좋은 공이 아니다. 스트라이크 존 밖으로 빠지는 유인구, 내지는 그냥 보여주는 공이었다. 애초에 승부할 의도가 없는 투구였다. ‘(배트가) 따라 나오면 좋고, 아니면 그만이고.’ 그런 뜻이다.
유일하게 존 안으로 들어온 싱커가 있었다. 4일 경기였다. 불펜 투수 제이크 버드의 공이었다. 피치 클락을 위반한 뒤 던진 초구다. 낮은 코스의 94마일짜리를 영락없이 중전 안타로 연결시켰다. 3루 주자를 불러들인 적시타였다.

달달한 싱커의 추억
달달한 마키아토 같다. 올해는 싱커가 그런 구종이다. 유난히 좋은 기억이 많다.
지난달 12일이다. 양키 스타디움 첫날이다. 상대 선발은 마커스 스트로먼이다. 1회 첫 타석에 일을 냈다. 3구째 89.4마일(약 144km) 짜리 싱커를 우측 담장 너머로 날려 보냈다. 일찌감치 승부를 결정짓는 3점포였다. 시즌 1호 홈런이다.
예습의 결과였다. 경기 후 이런 소감을 남겼다.
“스트로먼이 컷패스트볼과 싱커를 많이 던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초구가 몸 쪽 컷패스트볼이었고, 그다음 공은 바깥쪽으로 빠지는 싱커일 것이라는 예상을 했다. 마침 공이 생각한 곳으로 들어왔고, 준비한 대로 대응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열흘 뒤(4월 22일)다. 홈에서 브루어즈를 맞았다. 3-2로 팽팽하던 7회 말이다. 2사 2루에서 좌완 제러드 케이닉을 상대했다.
이번에도 93마일짜리 싱커다. 우중간으로 아름답고, 날렵한 빨랫줄 하나를 걸었다. 깔끔하게 빠지는 3루타였다.
맞는 순간 피해자(투수)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양팔을 벌리며, 어깨를 으쓱한다. ‘그걸 어떻게 쳤지?’ 하는 미국식 반응이다.
그도 그럴 법하다. 그의 싱커는 자랑거리다. 당시까지 시즌 피안타율이 0.095였다. 그야말로 난공불락이 요새였다. 그런데 그걸 완벽한 타격으로 쳐낸 것이다.
메이저리그 아닌가. 이쯤 되니 소문이 난다. ‘싱커를 주면 절대 안 된다.’ ‘던지더라도 존 안으로는 피해야 한다.’ 그런 경각심이 파다할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당할 수는 없다. 이제는 그의 차례다. 숙제를 풀어야 한다. 그래야 진도가 나간다.
본래 변신에 능하다. 그리고 잡식성이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는다. 아무 거나 잘 치는 (배드 볼 히터) 것으로 유명하다. 이제 그런 유연함을 발휘할 때다. 그래야 3할을 지켜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