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해체론'까지 나온 선관위 '잘' 개혁하려면... 전직 위원장들이 말했다
전현직 관계자 10인에 '선관위 개혁' 물어보니
"선관위 내실화·견제 장치 등 세심히 접근해야"

6·3 지방선거 당시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계기로 여야가 앞다퉈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대수술을 벼르고 있다. 선관위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더 이상 무능과 안일을 덮어주는 명분이 될 수 없다는 비판도 거세다.
초점은 선관위를 어떻게 고칠 것인지에 모아지고 있다. 제대로 된 개혁을 하려면 내부를 경험한 인사들의 조언도 필요하다. 이들도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일부 책임이 있지만, 선관위가 해체 수준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이에 전·현직 선관위 고위인사 10인을 인터뷰해 해법을 들어봤다. 이인복(18대)·권순일(20대) 전 중앙선관위원장, 김창보·김태현 전 중앙선관위원, 김용빈 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 김규범 국가공무원노조 선거관리위원회지부 위원장을 비롯해, 익명을 요구한 현 중앙선관위원(1명)과 전 상임위원(1명), 지역 선관위원장(2명)이다.
이들은 위원회 의결·보고 대상 기준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선관위원장 상근 전환, 불합리한 각종 관행 철폐, 선관위에 대한 외부 견제 장치 마련 등 개혁안을 도입할 때는 득실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① 절차적 완벽성 필요
인터뷰에 응한 10인 모두 "선관위 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관위의 존재 이유인 '참정권 보장'을 스스로 흔들었기 때문에 이참에 누적된 문제를 바로잡자는 것이다. 김규범 위원장은 "투표용지 인쇄 기준 하향(60%→50%), 현장 인력 부족, 매뉴얼 부재 등을 통해 방만 운영, 안일주의 등 선관위 문제가 한꺼번에 드러났다"고 꼬집었다.
특히 절차적 완벽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구글 트렌드와 네이버 데이터랩 검색량 추이를 살펴보면, 관리 부실 등 선관위의 과오가 크게 불거질 때마다 '부정선거' 검색량이 급증했다. 권순일 전 위원장은 "선관위 개혁 논의에서 뒤처지면 (선관위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일각에서 불거진) 부정선거 공범처럼 몰릴까 봐 여야 모두 개혁에 앞장서고 있다"며 "그 빌미를 준 건 선관위"라고 말했다.

② 시시콜콜 사무 없도록
국민 주권과 연관된 선관위 업무를 '단순 실무'로 보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도 공통적으로 언급됐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 출발점으로 지목된 용지 인쇄 비율 하한 변경 과정이 단적인 예다. 해당 결정은 중앙선관위 전체회의 없이 사무총장 전결로 처리됐다. 중앙선관위 전 상임위원은 "투표용지 비율은 유권자의 참정권 행사와 직접 연관되는 일이기에 위원회에 반드시 보고됐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선관위 내부에서 위원회가 다뤄야 할 '주요 업무'의 기준과 범위를 다시 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그간 선관위원 참석 회의에서는 선거법 해석 등 법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이 주로 논의됐는데, 투표용지 인쇄 및 배분 기준 등 선거권 행사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안도 위원회 보고 및 의결 대상으로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권 전 위원장은 "무엇을 위원회 의결 사안으로 정할지, 어떤 규정과 법을 정비할지 두루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③ 상임화 딜레마 살펴야
'중앙선관위원장 상임화'는 정치권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개혁안이다. 중앙선관위원장은 대통령·국회의장·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과 함께 '5부 요인'으로 꼽히는 헌법기관장이지만, 비상임으로 운영돼왔다. 수장이 비상근 상태라면 조직 장악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조직에 대한 책임 의식도 흐려질 수 있다는 비판은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김태현 전 위원은 "선관위원장을 상임으로 두고 조직을 이끌어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창보 전 위원은 9명의 중앙선관위원 중 상임위원은 1명뿐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상임위원 3인 체제가 되면 사무처가 정해놓은 결정을 사후 보고받는 형식적 회의체에서 벗어나 실질적 의사결정 주체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3인'은 대통령 임명 3명, 국회 선출 3명, 대법원장 지명 3명으로 위원회가 구성되는 점을 감안한 제안이다.
다만 조직 장악력과 책임성을 높이려는 시도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인복 전 위원장은 "위원장 권한 강화 시 해당 자리를 둔 정치적 다툼이 커질 위험이 있고, 상임위원 3인 체제는 불필요한 상호 견제 구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짚었다. 합의제 기관의 성격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선관위 외부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사무총장을 맡았던 김용빈 전 총장은 "누군가에게 권한과 책임을 더하다 보면, 합의제라는 의사결정의 민주성이 훼손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④ 각종 관행 다시 뜯어봐야
선관위의 인적 구성 및 운영을 각종 관행에 기대어온 문제도 개혁 대상으로 거론된다. 헌법에선 '중앙선관위원장을 위원 중 호선한다'고 규정하는데, 그간 대법원장이 지명한 현직 대법관이 위원장을 맡는 게 관행이었다. 현직 대법관은 재판 업무만으로도 과중한 부담을 지는데, 여기에 선관위원장까지 겸직하면 선거관리기관 수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김태현 전 위원은 "선거 관련 소송이 생기면 재판을 받아야 할 기관의 장이 재판을 주재하는 자리에 있게 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법관 겸직 구조를 고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관행을 없애는 것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김창보 전 위원은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이 중앙선관위원장을 맡을 경우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초래될 가능성도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⑤ 중립성 훼손 경계도
선관위를 감시할 외부 견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데도 공감대가 있었다. 독립 헌법기관이라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거나 최소한의 간섭조차 거부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다만 외부 견제가 선관위의 독립적 업무수행 권한까지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도 함께 나온다. 권순일 전 위원장은 "선관위는 부정선거 등 아픈 헌정사 속에서 탄생한 기관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국민 눈에 '싱거운 개혁'이 될 것을 우려해 과격한 시도를 하다가 자칫 개악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이용경 기자 yklee@hankookilbo.com
이유진 기자 iyz@hankookilbo.com
김희서 인턴기자 hskim0305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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