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지난해 무산된 계열 3사(셀트리온·셀트리온헬스케어·셀트리온제약) 합병의 청사진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합병 추진이 단순한 경영 시너지를 넘어 오너2세 서진석 대표의 승계작업을 위한 전략적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셀트리온홀딩스를 통해 핵심 자회사들을 간접 지배하는 서 회장의 셀트리온 지분율은 상대적으로 낮다. 이에 향후 경영권 위협 요소가 있는 만큼 합병은 오너가의 지배력을 보강할 수 있는 대표적인 방안으로 꼽힌다. 이를 이용해 지배구조를 단순화하는 것은 물론 승계기반을 다지는 효과까지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3사 합병, 그룹 승계 차원으로 이어지는 이유
1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서 회장은 이날 기준 지분 98.13%를 보유한 셀트리온홀딩스를 통해 셀트리온(21.99%)을 간접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다만 핵심 자회사인 셀트리온의 지분율이 경영권 방어벽인 51%에도 한참 못 미치는 30% 미만에 불과한 등 최대주주의 몫이 작은 것은 극복해야 할 잠재적 리스크로 지적된다. 향후 경영권 상실에 대한 우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서 회장이 이를 방지하기 위해 지난해 셀트리온·셀트리온헬스케어·셀트리온제약 3사 합병 과정에서 셀트리온의 가치를 의도적으로 낮게 책정했다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시 다수의 셀트리온 개인주주들은 셀트리온제약 주가가 너무 고평가돼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 회장이 간접 지배하는 셀트리온의 셀트리온제약 지분율은 54.8%로 절반을 넘어선 상태다.
실제로 이러한 방식으로 3사가 합병되면 셀트리온 지분율이 낮은 서 회장의 지배력이 강화되는 동시에 지배구조를 단순화하는 효과까지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룹 승계 차원으로도 여겨질 수 있다.
서 회장의 합병추진 전략은 과거 삼성그룹의 승계 플랜과도 유사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삼성은 2015년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미래전략실 주도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추진하면서, 이 부회장의 지분율이 낮은 삼성물산의 가치를 고의로 낮게 정했다는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당시 검찰은 이 부회장의 지배력을 키우기 위해 삼성물산에 불리한 합병비율을 산정해 주주에게 피해를 줬다고 봤다.
셀트리온 자사주 활용…지배력 강화 만능키로
서 회장은 셀트리온 주주들의 반대로 셀트리온과 셀트리온제약의 합병이 무산된 만큼 주주가치를 제고해 이들을 다시 설득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셀트리온은 올해 들어 수차례 자사주 매입과 소각을 반복했다. 서 회장은 최근 약 500억원 규모의 셀트리온 자사주를 매수한다고 발표했다. 매수일은 7월8일부터다. 지주사인 셀트리온홀딩스와 계열사인 셀트리온스킨큐어도 각각 960억원, 451억원 규모로 셀트리온 주식을 사들이기로 했다.
셀트리온은 지난달 28일 기준 979만3503주(4.39%)에 해당하는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서 이달 12일 소각한 물량(58만9276주)을 빼면 현재 가진 자사주는 920만4227주(4.12%)다. 올해 들어 셀트리온의 자사주 소각 규모는 약 9000억원에 달한다.
다만 일각에서는 셀트리온이 자사주 매입이나 소각 등으로 주주환원을 강화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분석한다. 셀트리온의 ‘자사주 활용’이 주주가치 제고보다는 서 회장의 지배력를 다지는 데 만능키로 쓰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3사 합병을 성사시켜 복잡한 지배구조를 단순하게 만든 뒤 장남인 서 대표를 중심으로 지주사 경영권을 물려주는 승계구도를 완성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서 회장은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자사주의 경우 주가만 방어하려고 사는 것은 아니다”라며 “제 입장에서는 어차피 내야 하는 상속세를 가지고 오너2세들에게 안정적으로 경영하게 하는 것이 제 지분율을 키우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저의 지분율을 늘리는 방법 중 가장 좋은 것은 자사주 매입, 소각“이라고 덧붙였다.
주샛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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