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피가 아니라 생존이었다
배우 조승우의 아버지 조경수.


1970년대, ‘YMCA’와 ‘행복이란’으로 이름을 알린다. 하지만 화려한 무대 뒤에는 음반사업 실패와 어음 보증으로 인한 빚더미가 있었다.

이때 조경수는 아메리칸드림을 꿈꾼다.
위장이혼을 하고 미국 먼저 가서 영주권 따서 한번 잘 살아보자 했어요.
어찌 보면 아메리칸 드림이었죠.
영주권을 따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을 버린 게 아니라, 잘 살아보자는 아메리칸 드림이었다”고 말한다.
착잡한 마음을 가진 채 미국으로 떠난 조경수.

애석하게도 한 여자가 눈에 들어온다.
미국에서 방송사 동기로 알던 여성과 사랑에 빠진 조경수는 새로운 삶을 도모한다.

새 가정에 충실하려 애썼지만, 마음 한 켠에는 늘 조서연과 조승우가 있었다.
누군가 한국에서 아이들 사진을 가져오면 조심스럽게 받아보고, 공연 소식이라도 들리면 귀를 기울였다.

조승우가 중3, 조서연이 고3 때 같이 살기 위해 한국으로 귀국한 적 있지만 이미 너무 늦었음을 깨닫는다.
“애들하고 합쳐야겠다는 생각에 1994년 미국에서 나와 승우네 집에서 일주일간 살았어요. 아이들이 사춘기였죠.
하지만 아버지로서 얘기를 하다 보니까 여태 잘 해준 것도 없으면서 간섭하는 것처럼 보인 것 같아요.
아이들이 많이 불편해하는 것 같아 일주일 만에 보따리를 싸들고 다시 나왔죠.”
충격먹고 미국으로 돌아간 조경수는 현재 생활에 집중하리라 다짐했지만, 조승우와 조서연을 잊을 수 없었고 결국 영주권을 포기하고 한국행을 택한다.

심적인 고통으로 인해 대장암 3기 판정을 받았지만 조승우와 조서연은 아버지를 끝내 찾지 않았으며 조경수에겐 아직도 가슴이 아리는 일이다.

조승우는 인터뷰에서 아버지에 대해 언급하길 극도로 꺼린다.
딱 한 번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시길 원치 않았다”고 밝히며, 어머니의 긴 외로움은 자신이 채워줄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결혼식장, 잡지 못한 손
딸 조서연이 결혼을 준비할 무렵, 조경수는 또 한 번의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손을 잡고 함께 입장하는 자리에도 설 수 없었다.

조서연은 “아버지는 손 못 잡고 들어가시니까, 외삼촌이 잡고 들어갈게요”라고 조심스레 말했고, 그는 “그러라고 했다”고 담담히 전했다.

결국 조경수는 딸의 결혼식 사진을 나중에 전달받았다.
“그래도 시집가는 딸 손 한 번 잡아봤으면 좋았을 텐데…”
그 말을 끝내 삼켰다. 정황상 결혼식도 참석하지 못한 것으로 추측된다.

"어쨌거나 자식을 버린 건 잘못한 것", "지금 한창 잘나가는 조승우인데 그냥 두세요", "이런 인터뷰 안 하는 게 서로한테 좋을 듯싶다" 등 다양한 의견이 쏟아진다.
모든 사진 출처: 이미지 내 표기
Copyright © by 뷰티패션따라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컨텐츠 도용 발각시 저작권 즉시 신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