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유허재 선율의 정원
대학에서 오랫동안 잡아온 교편을 내려놓은 교수 부부는 주말마다 평창에서 가드너가 된다. 연구실이 아닌 자연이 주는 변화에 매일이 새롭다는 부부의 정원 일기를 펼쳐본다.




“이 정원을 누리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꼽는다면, 새벽 다섯 시에 거실 너머로 우리 집 정원과 풍경을 바라볼 때지요.”
허성기, 유상렬 씨 부부는 은퇴를 앞두고 오랜 전원생활의 꿈을 이루기 위해 평창에 주말주택을 마련했다. 평생 연구실과 강의실을 오가는 교수였던 부부는 전원생활도 처음이었지만, 하루가 다르게 점차 풍성해지는 정원을 보면서 고됨도 잊곤 한다.
지금의 정원을 있게 한 데에는 울림가든디자인 이명 대표의 역할이 컸다. 전원생활의 꽃은 정원이라 생각한 부부는 평소 마음에 담아두던 정원 디자이너였던 이 대표를 찾았지만, 그 만남은 쉽게 성사되지 않았다. 유비가 공명을 찾듯, 삼고초려 끝에 의기투합하게 된 부부와 이 대표는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친구처럼, 때론 스승과 제자처럼 정원을 매개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약 200평 규모의 대지에 주택 ‘유허재’와 함께 조성된 정원은 단순히 감상하는 정원이 아니라, 직접 나무와 화초 사이를 거닐며 그 속에 녹아드는 정원이다. 나무 사이 야자매트 오솔길을 걸으면 바닥에서 올라오는 백리향 향기와 함께 시각적으로도, 후각적으로도 즐거운 정원을 만끽한다.
한편, 일주일에 사흘을 살펴볼 수 있는 주말주택의 정원이기에, 그리고 부부가 은퇴 후 황혼기에 접어든 상황이기에 관리 소요와 강도가 높은 정원을 꾸리는 데에는 무리가 있었다. 저관리형 정원을 만들기 위해 이 대표가 제안한 것은 멀칭. 코코칩을 일정 두께로 깔아두면 흙이 습기를 오래 머금어 지나친 건조 상황을 예방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잡초가 멀칭 사이를 뚫고 나오지 못해 잡초 뽑는 노동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잔디정원 형태를 둥글게 해 체감 대비 실제 잔디 면적을 줄여 잔디 관리에 드는 노력을 줄인 것도 살펴볼 만하다.
물론, 가드닝을 즐기기 위해 정원을 만드는 만큼 손수 흙을 만지는 재미도 놓치지는 않았다. 산책길 곳곳에는 부부가 꺾꽂이한 짤막한 가지들이 싹을 틔우며 정원의 한편을 채울 준비를 하고 있고, 3년 전과 비교했을 때 이 땅을 배우며 여기에 맞는 식생을 찾고 시험해보는 것도 부부가 정원을 즐기는 법 중 하나다.
초대한 손님이 정원을 보고 감탄할 때마다 함께 감동하고 보람을 느낀다는 부부. 연구실의 표본이 아니라, 정원의 생화를 보는 게 이렇게 신비하고 즐거울 줄 몰랐다는 두 사람은 이번 주말에도 정원을 향해 즐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SCENES

GARDEN PROCESS

PLANTS POSITION

B. 데크 앞 화단 | 이른 봄에 개화하는 서양분꽃, 여름의 수국 5종, 향백합 2종, 초화류 4종, 그라스, 자엽병꽃 등 사계절 관목으로 구성했다.
C. 뒷담 정원 | 자작나무와 그라스, 수국으로 구성. 주차장 바닥은 와인크라비 크로버 같은 지피식물로 잡초를 예방하고자 했다.
D. 도로변 돌담 정원 | 상단은 시선 차폐용 관목을 활용하고, 바위 틈 사이는 추위에 강한 지피식물과 가을 초화류로 색상을 연출했다.
E. 계수나무 옆 나무조각품 | 고목 밤나무를 이용한 조각품은 부부의 동심동행을 의미한다.
취재협조_ 울림가든디자인 이명 디자이너 / www.instagram.com/mleegardendesign
취재_ 신기영 | 사진_ 변종석
ⓒ월간 전원속의 내집 2025년 7월호 / Vol. 317 www.uuj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