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죽음에 무감한 당신들의 사회에서
[이승우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수도권 최대 화물역인 오봉역에서 또 한명의 입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입환은 다수의 철도차량을 나뭇가지처럼 펼쳐진 선로 곳곳으로 이동시키며 분리, 연결해 재배열하는 일이다. 철도 본선으로 내보내기 위해 새로 열차를 편성하는 과정이 입환인 셈이다. 철도 본선과 달리 입환 구내는 위험이 가중되더라도 업무 효율을 위해 충돌 방지 및 신호 장치 상당수가 제외된다. 그렇다보니 기관사는 주로 신호가 아닌 입환 노동자의 무전 지시에 따라 운전한다.
입환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위험과 마주한다. 열차, 선로, 전철주, 선로전환기 등 죄다 쇠덩어리인 공간에서 바쁘게 이동하며 일하기 때문이다. 특히 오봉역은 촘촘한 선로 간격과 열악한 시설물 등 위험한 환경으로 악명 높다. 더구나 기관차가 열차 선두에서 끌지 않고, 후미에서 밀고 가는 ‘추진운전’ 입환 비율이 매우 높다. 이때 기관사는 연결된 차량 수에 따라 멀게는 수백미터 뒤에서 운전하기에, 앞 상황을 알 수 없다.
고인 역시 150미터가 넘는 열차를 추진 입환 중 참변을 당했다. 원인이 밝혀지진 않았는데, 다른 선로로 가야 할 열차가 고인이 있던 선로로 진입해 왔다. 2014년에도 유사 사고가 있었다. 두 사고 모두 3인조 작업을 2인이 하다 발생했다. 축구장 수십배에 이르는 입환장에서 동료 한명의 존재는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오봉역에서는 사망사고 외에도 낙상, 발목 절단과 같은 산재가 빈발했다. 이미 오래 전 철도공사 노사 간에 인력 확보, 추진운전 감축을 위한 선로 개량, 위험 시설물 교체 등 여러 개선안이 마련되었음에도, 국토교통부에서 예산 문제로 인해 거부당했다.
결국 별로 개선된 부분 없이 노동자들은 위험을 감내하며 일해왔다. 오봉역이 철도 물류 허브로 기능할 수 있었던 건, 노동자들의 땀, 그리고 말 그대로 ‘피’ 때문이었다. 비용 핑계로 인력 충원, 시설물 개량을 도외시한 것은 생산성을 위해 노동자들을 위험에 내몰았다는 의미다. 그래서 고인의 죽음은 잘못된 정부 정책에서 기인한 사회적 죽음이다.
이러한 사회적 죽음 앞에서 정부는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 오봉역에서 더 많은 사고가 안 난 이유는 노동자들이 안전에 신경쓰며 일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토교통부 차관은 “안전무시 작업 태도를 타파하라”며 고인을 모독했다. 원희룡 장관은 소관 책임은 언급도 없이 조사 후 코레일 관련자를 엄정 조치하겠다고 엄포 놓고, 사고는 노조 때문이라고 강변했다. 비용 때문에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 주무부처 장차관이 수치심은커녕 책임에 관한 체면치레조차 하지 않았다.
비단 오봉역 사고만이 아니다.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정부의 규제 실패와 법령 미비로 인해 발생한 무수한 사회적 죽음이 작업자 과실로 치부된다. 일하면서 한번도 죽을 위험에 처해 보지 못한 자들이 노동자를 탓하고 있다.
그 뿐인가. 숱한 생명이 하염없이 스러져간 이태원 참사가 정치적 책임 문제로 번질까봐 윤석열 정부는 참사의 탈정치화를 밀어붙였다. 대형 재난을 ‘사고’로 축소하고, 책임은 현장에 전가하며, 군사작전 하듯 사회적 애도를 신속히 종결시키려 했다. 유족은 안중에 없이 정부는 이태원 참사를 대중의 뇌리에서 빠르게 지우려 한다. 친정부 세력은 희생자들이 놀다 죽은 거라며 조롱했다.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로 폄훼하고, 근거 없이 희생자와 유족을 비난한 그들 말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의 안전 민감도는 대단히 높여졌다고 한다. 하지만 자기 안위만 소중할 뿐, 사회적 죽음을 깊이 애도하고, 성찰해 보지 않은 당신들은 정부나 기업이 아닌 노동자와 시민한테 책임을 돌리고 있다.
현대 안전이론에 따르면, 위험은 말단 현장이 아닌 관료와 경영자의 책상에서 시작된다. 사회적 죽음의 책임은 정책을 결정하고, 사회 자원을 분배하는 정치인과 관료, 경영진에게 일차적으로 물어야 한다. 그러나 책임의 사슬 정점에 있는 자들에 대한 사회적 처벌과 감시는 취약하다. 되려 그들은 사회적 죽음을 입맛대로 가공한다.
사회적 죽음을 하찮게 여기는 당신들이 타인의 생명을 중시할 리 만무하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생명을 대하는 태도와 정확히 일치한다. 타인의 죽음과 생존에 무감한 당신들이 통치하는 시대. 그런 정부를 옹호하는 당신들의 사회.
이런 시대라 할지라도 희생자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사회적 죽음은 더 오래, 깊이 추모되고, 반면교사의 사회적 상흔으로 남아 승화되어야 한다. 여기 그러한 차원에서 나선 이들이 있다. 철도, 지하철, 도로 등 공공 안전과 직결되는 일터의 노동조합들이 노동자와 시민의 사회적 죽음을 막기 위해 단체행동을 시작한 것이다. 건투를 빈다!
[이승우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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