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살리려면? 지역 기초단위 시군 간 무한경쟁 멈춰야 한다

남기범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2024. 9. 28.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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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수도권 대항할 수 있는 지역 대도시 키워야

수도권 집중은 산업·경제만이 아니라 상징성, 정체성의 집중

수도권의 양적, 질적 집중의 심화와 함께 공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수도권 지하철이 가는 곳까지가 수도권'이라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 경기 남부는 서울 북부보다 더 서울로서의 정체성과 산업·일자리·생활 연계를 가지고 있고, 수도권은 이미 충청, 강원권까지 실질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인구는 이미 서울·인천·경기만 합해도 우리나라 전체의 절반을 넘었고(면적은 17% 정도), 산업생산과 특히 신산업분야와 연구개발 분야는 거의 전부가 수도권, 특히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어느새 첨단 연구개발, 고차비즈니스 서비스, 금융·보험·부동산개발, 대학과 문화, 유행을 선도하는 소비와 장소개발 등 우리의 일상생활과 경제·산업기반이 서울과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되며 확대재생산 되고 있다. 그나마 대덕연구개발특구(와 대덕이노폴리스)와 몇몇 지역의 공학 중심대학과 거점 연구소마저 없다면, 수도권 밖의 연구개발과 혁신역량은 사막처럼 보일 것이다.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도의 역사도 일천하지만,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이후 지역자본 형성의 역사가 짧고, 발전주의 국가가 그랬듯이 경제 활동의 기반이 되는 거의 모든 제도와 자원이 서울을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고 위계화 되어있다.

따라서 단순한 수치적 균형과 형평만의 문제가 아니라, 수도권에 핵심 경제기능, 인재, 의사결정권한, 문화·여가활동 등의 상징자본이 집중된 상황이다. 이러한 상징성과 압축적 근대성을 가진 한국의 특수성으로 파악하고 정상으로의 회귀방안을 모색하여야 한다.

냉정히 말하면 수도권 집중은 산업과 문화의 경쟁력 향상과 어느 정도 효율성 강화에 기여한다. 다만 알게 모르게 수도권 집중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 개인의 비용만이 아니라 공공의 비용이 수도권의 기여분보다 커지고 있는 점은 예의주시해야 한다.

민간의 개발과 상업화는 탓할 수는 없지만, 공공이 주도하는 인프라사업과 신산업 중심의 재정투여는, 지방도시의 관점에서 보면 거의 천문학적 수준이다. 다시 말하면 수도권 유지의 정치적(선거), 경제적,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

지역 기초단위 시군 간 무한경쟁을 멈춰야

어느 지역이나 좋은 일자리, 투자 기회, 재정지원의 기회가 있으면 주민과 공공부문이 힘을 합하여 이를 유치하고 인재를 영입하고 살기 좋고 잘사는 곳으로 만들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산업정책, 특히 산업배분정책을 보면, 정부의 미래 전략적 정책이나 사업과 투자계획을 공고하고는 전국 지자체의 지원(bidding)을 받고, 프레젠테이션까지 하는 전문가의 심사를 거치고, 지역 간 배분이라는 조정을 거쳐서 전국의 기초지자체에 골고루 뿌린다. 이것이 지난 3~40년간 진행되어 온 전략산업정책 혹은 지역산업정책의 과정이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경험과 의지가 있는 기초 단체의 장은 지역의 예산을 미리미리 기회발전특구,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RISE), 수소에너지산업정책, 신성장산업정책 등에 대비하여 연구용역과 로비를 준비한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에서 전국적인 경쟁만이 아니라, 지역내 기초 단체간의 경쟁이 과열된다는 점이다.

특히 '지자체장의 의지'라는 선정기준까지 있어서 기초단체의 경쟁을 부추긴다. (기회는 약간 제한되지만) 수도권의 기초 단체들이 이러한 산업정책의 대상이 되고, 선정되어 새로운 산업이 들어서면 수도권 기존 산업의 전후방 연계와 인재풀의 효과로 인해 상당한 시너지를 누리면서 수도권 전체가 성장하고 혁신역량이 커지지만, 비수도권 기초지자체의 경우 산업연관이나 인재의 유인이 어려워, 특정 산업의 섬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지역 대도시와의 연계도 약하고 오히려 직접적으로 수도권이나 글로벌 연계를 강조하는 무리한 비전만을 가지고 시작하기 때문에 지역간 파급효과는 상당히 미미하다. 중요한 점은 지역의 제조업이 쇠퇴만 한다는 지적이 아니라, 기대하는 만큼의 성장과 혁신이 약하다는 점이다.

문화·예술·어메니티 관련 산업의 경우, 글로벌 문화콘텐츠산업을 제외하고는 가능한 한 여러 지역에 골고루 뿌리내리고 지역 주민의 일상적인 삶과 함께하면서 수요가 꺾이지 않도록, 공급이 유지되고 성장하도록 지원하여야 한다. 하지만 대규모 연구개발과 자원, 인재풀과 산업의 하부구조가 요구되는 소위 첨단산업의 경우 대도시라는 '집적-매칭-학습-혁신'의 공간과의 매개가 필요하다. 서울과 인천, 경기도의 관계가 그렇다.

그러나 지역의 경우 대도시의 성장 잠재력이 계속 쇠퇴하면서 구심점이 없이 기초 단체간의 소모적인 경쟁만이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는 인기 영합적인 중앙정부의 자원배분방식과 단기간의 성과에 집착하는 지자체의 욕구가 있다.

이제는 중앙정부의 산업정책에 기초지자체의 무한경쟁과 정무적 배분을 멈추어야 하고 중앙정부의 산업전략, 공간전략과 정책에 기초단위 지자체의 경쟁을 완화하여야 한다. 중앙정부는 현재보다 더욱 산업기능의 지방분산에 노력해야 한다. 규모의 경제, 경쟁력, 효율성, 주민의 수요, 자유로운 선택 등의 20세기 용어에 머무르지 말고, 현명하고 합리적인 공간분업이 필요하다.

서울과 수도권이 가지고 있는 기능 중에서 중추기능 외에 일반기능을 지역에 이양하고, 서울을 슬림화하여 쾌적하고 효율적이고 포용적인 도시가 되도록 기획하여야 한다. 서울은 글로벌 엘리트, 고차서비스, 네트워크 기업 등 글로벌 기능을 담지하고, 지역의 대도시는 인재의 순환 사이클에 핵심 노드가 되기에 필요한 교통, 환경, 주거, 문화예술기능과 함께 지역산업의 두뇌와 허브가 될 수 있도록 기획하여야 한다.

지역 대도시권 중심으로 제2, 제3의 수도권 형성해야

우리나라의 규모는 물론 미국의 캘리포니아보다 작지만, 산업의 규모와 글로벌 연계, 분화는 세계 10위권 정도의 경제력이 말해주듯이 상당히 크고, 복잡하고, 중층적이다. 이처럼 거대한 산업의 대다수 기능이 수도권에 집중하는 것은 서울과 수도권의 장기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하나의 중심만으로 작동하는 것보다, 여러 개의 상호보완적이고 경쟁하는 다중심이 병렬적, 중층적으로 연계되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

문제는 지방 중심도시(부산-대구-광주. 세종-대전은 수도권에 포함)들의 경쟁력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는 점이다. 서울-수도권처럼 공간분업이나 허브-스포크 형태가 아니라, 지역의 중심도시에서 주요한 기능들이 하나둘씩 주변의 기초지자체나 산업단지, 신도시로 이전해 나가 파편적인 형태로 진행되어, 지역의 중심도시와 연계는 약하다. 이러한 진행과정은 그나마 어느 정도 유지되던 지역의 산업기능마저 형해화되고 용량은 증가했으나, 역량과 경쟁력은 약해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지역산업권·지역혁신권이 서울-수도권처럼 지역 중심도시-주변도시의 틀을 갖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역 중심 대도시의 부활, 역할 강화와 중심지로서의 정체성 부여가 중요하다. 중앙정부는 지역산업정책, 신전략산업정책, 첨단산업정책 등의 시행에서 기초지자체를 무한경쟁의 루프에 몰아넣는 기존 방식을 폐기하고, 광역단위의 지역, 지역의 대도시권 중심의 정책으로 변경해야 한다.

▲ 초광역권 발전 구상도. ⓒ부산시

어느 사이에 형해화되어버린 수도권정비계획법의 원래 취지에 맞게 수도권의 산업집중, 인재집중, 일자리집중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여 지금보다 더 강한 산업의 지역 분산에 힘써야 한다. 이로써 지역의 중심도시에 산업과 경제의 구상기능이 집적하여 서울대도시권에 대항할 수 있는(counter magnet) 경제·산업연계와 문화예술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단위에서 당장의 공장이나 연구시설 하나만 가지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단위의 대도시권을 형성하고 도시연합, 도시통합을 통해 지역경제권의 확대재생산을 지향해야 한다.

예전에는 지역 소도시에서의 이주수요와 일자리 수요를 지역 대도시가 어느 정도 감당해주는, 소위 필터링(filtering)효과가 있었지만, 지금은 농촌이나 소도시에서 서울로 직행 이주가 대세이기 때문에 지방 대도시의 역할과 기능이 갈수록 약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들어섰다.

물론 쉽지는 않지만, 지역 대도시가 성장하여야 지역 소도시와 농촌이 살 수 있다는 데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나아가 지역의 대도시는 연합·통합·연계를 통해 광역권내에서 주변 도시와 협력하여야 한다.

인재의 지역 거주 선호도가 낮은 것은, 부동산 학습효과, 자녀교육, 문화·여가 어메니티, 성공을 위한 조직 본부와의 근접성 수요, 정체성과 자부심 등 어느 한 가지만이 아니라 복합적인 영향일 것이다. 이러한 자본주의적인 일상생활의 편익이 서울에만 집중되지 않고 지역 대도시로 확산할 수 있도록 지역 대도시의 물리적, 상징적 자본확충과 지역의 광역교통인프라와 생활인프라 확충에 중앙정부의 노력이 집중되어야 한다.

[남기범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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