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의 한국 문학 입문자를 위한 책 5

안녕하세요, 하루입니다. 책 이야기를 나누고 기록하는 걸 좋아해서 4년째 북튜브와 북스타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2024년 10월 10일은 문학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너무나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로 한강 작가가 선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선정위원회에 따르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한 강렬한 시적 산문을 남긴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해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전 세계 많은 독자들이 한국소설에 관심을 가지고 작품을 찾아볼 거라 예상됩니다. 어떤 작가와 작품들이 있을까요? 이번 기회에 한국문학 읽기를 시작해 보고 싶은 분들을 위해 책을 골라봤습니다.


[1]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리브 어 리틀. 난 좀 살아볼 거야.”

정세랑 작가는 2010년 단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로 <이만큼 가까이>, <지구에서 한아뿐>, <피프티 피플>, <시선으로부터,> 등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를 선보였습니다. 그중에서도 <보건교사 안은영>은 정유미, 남주혁 주연의 드라마로 넷플릭스에서 제작되기도 했어요. 그만큼 재미도 보장되지만, 무엇보다 정세랑 작가의 소설은 특유의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뜻한 발랄함, 경쾌한 다정함 같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을 수 있고, 진지한 메시지를 너무 어둡지 않게, 그러나 너무 가볍지도 않게 표현해냅니다.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는 ‘심시선’이라는 인물의 제사를 지내는 가족들의 이야기입니다. 시선은 20세기 한국의 비극적인 역사를 통과하며 미술가이자 작가로 살아남은 인물이에요. 시선이 죽고 21세기에 남은 가족들은 특별한 방식으로 제사를 치르기로 합의합니다. 모두 함께 하와이로 떠나 엄마 또는 할머니였던 시선에게 가장 뜻깊은 선물을 하는 것으로 대신하기로요. 소설은 뜨개질을 하듯이 시선이 살아있는 동안 남긴 말의 조각들과 21세기를 살아가는 가족들의 저마다 다른 이야기들을 엮어나갑니다.

정세랑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은 무엇보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다”라고 밝혔는데요, 독자로서는 시선이 남긴 조각들이 ‘20세기를 살아낸 여성이 다음 세대에게 건네는 응원이자 위로’ 같이 느껴졌어요. 사랑스러운 인물들의 일대기를 통해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2]
천선란, <천 개의 파랑>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

<천 개의 파랑>은 2019년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으로, 2020년에 단행본으로 출간된 이후 온라인상에서 꾸준히 호평을 받아왔어요. 중심이 되는 캐릭터는 ‘C-27’이라는 인공지능 로봇과 고등학생 ‘연재’입니다. C-27은 경마 기수를 대신하기 위해 대량 생산된 제품이지만 제작 과정에서 우연히 인간의 실수가 더해져 일반적인 AI 로봇이라면 하지 않을 질문을 던지고 생각에 빠집니다. 그러다 경마 경기에서 낙마해 망가진 채 방치되고 말아요. 그런 C-27을 과학을 좋아하는 고등학생 연재가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가 조금씩 고쳐주면서 ‘콜리’라는 새 이름을 붙입니다. 콜리는 연재를 만나 다시 예전의 모습을 찾았지만, 콜리와 짝을 이뤄 경마 경기에 참여하던 말 ‘투데이’는 부상을 입고 안락사당할 위기에 놓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연재와 콜리, 그리고 모든 등장인물들이 투데이를 살릴 방법을 찾아나가며 이야기는 결말을 향해 달려갑니다.

<천 개의 파랑>은 SF소설 혹은 과학소설이라고 하면 왠지 어려울 것 같은 고정관념을 깨는 작품이에요. 복잡한 원리나 현상, 과학적 사고가 끼어들 틈 없이 다양한 인물들의 탄탄한 서사로 꽉 채워져 있어요. 확률의 의미와 기능, 장애와 정상성뿐만 아니라 동물권, 발전과 도태의 문제까지, 다양한 주제로 생각할 거리를 남깁니다. 천선란 작가는 <천 개의 파랑>이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놓은 한 줄의 메모,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느리게 달리기를 연습하는 경주마의 이름이 투데이, ‘오늘’이라는 것도 의미심장하죠? 조금 두껍지만 일단 읽기 시작하면 멈추기 힘든, 따뜻한 SF소설의 매력을 느껴보세요.


[3]
성해나, <빛을 걷으면 빛>

“나는 결코 내 마음을 속이지 않을 거예요. 속 편히 웃고 울고 싸우고. 견디지 않을 거예요.”

<빛을 걷으면 빛>은 성해나 작가가 2019년에 등단한 이후 3년 만에 나온 단편소설집입니다. 여덟 편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등단작이기도 한 「오즈」였어요. 비극적으로 가족을 잃고 혼자 남은 20대 초반의 ‘하라’는 독거노인 하우스 쉐어링 사업을 통해 할머니 ‘오즈’와 함께 살게 됩니다.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라를 받았다는 오즈는 불친절하고 예민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라가 문신을 새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안 오즈가 먼저 다가와 부탁합니다. 내 몸에도 문신을 해달라고요. 알고 보니 오즈의 몸에는 일제 강점기의 아픔을 짐작할 수 있는 문신들이 남아있어요. 하라는 자신의 주저흔을 커버하기 위해 시작했던 기술로 오즈의 아픈 과거를 짐작할 수 있는 문신 위에 새로운 그림으로 커버 문신을 새기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오즈’ 외에도 이 책에 실린 작품들에는 다양한 위치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농인 할머니와 둘이 살고 있는 도호, 임용고시에서 수차례 낙방하고 도망치듯 고향에 내려온 경과 젊은 시절 스턴트맨으로 활동했던 할머니 이목, 전교조 지부장이었던 아버지와 자유분방한 아들, 농촌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유튜브 영상 편집 기술을 가르치게 된 20대 취준생 등 비슷한 컨셉이 반복되지 않고 나이와 지역, 계급이 다른 인물들이 만나는 지점을 디테일하게 그려냅니다.

게다가 대부분 낯설고 어색한 관계를 다루고 있어요. 주요 인물들이 자신의 익숙한 활동 반경 밖에 있는 인물을 만나서 새로운 자극을 받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결정하는 데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가장 안전하다고 느껴야 할 관계에서 상처받고 버려진 인물이 어떻게 대안을 발견하고 나아가는지, 당연하게 여겨지는 관계를 비틀어서 어떤 대안이 가능할지 함께 고민할 수 있어요.


[4]
최은영, <밝은 밤>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밝은 밤>은 간단하게 말하면 증조모-할머니-엄마-딸, 이렇게 4대에 걸친 여성들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전개되는 소설입니다. 그중에서도 중심이 되는 인물인 지연(딸)은 전남편의 외도로 이혼한 후 주변을 정리하고 ‘희령’이라는 낯선 도시로 내려옵니다. 경상북도와 강원도 사이, 동해 근처 작은 도시로 짐작되는 새로운 도시, 희령에서 지연은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과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져요.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할머니 ‘영옥’입니다.

할머니와 엄마가 수십 년간 연락을 끊고 살았기 때문에 지연은 할머니의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지만, 할머니는 오래전부터 희령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지연이 내려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우연히 마주치고, 곧 어색하지만 따뜻한 관계를 형성해요. 오랫동안 서로를 모르고 지냈기 때문에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 할머니와 손녀라는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애보다는 동지애가 느껴지기도 해요. 조금씩 더 가까워지면서 지연은 영옥에게 지난 이야기를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렇게 증조모와 할머니, 그리고 엄마의 이야기를 전해 듣게 돼요.

단편소설집 <쇼코의 미소>와 <내게 무해한 사람>에서도 보여주었던 것처럼, 최은영 작가는 막연하고 무어라 설명하기 힘든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밝은 밤>에서는 세상에 혼자 남은 듯한 깊은 외로움이 찾아올 때 ‘너는 혼자가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누군가가 곁에 있고,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사실인지 알려줘요. ‘밝은 밤’이라는 제목을 떠올리면 어두운 밤에 밝게 빛나는 달이 떠오르는데, 달이 빛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의 빛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가장 어둡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나를 비추는 빛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소설입니다.


[5]
박솔뫼, <미래 산책 연습>

“원하는 미래를 그리고 손으로 만져보기 위해 어떤 시간을 반복해야 할까.
나는 그것을 우선 어딘가에 써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미래 산책 연습>은 부산을 배경으로 일인칭 화자인 ‘나’와 ‘수미’, 두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나’의 목소리는 중얼거림을 닮았어요. 일기인지 소설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쓰고 있는 작가 ‘나’는 부산의 오래된 거리를 배회하다 우연히 들어간 목욕탕에서 60대 여성 최명환을 만납니다. 최 선생에게 옛날이야기들을 들으며 가까워지고, 충동적으로 월세 아파트도 계약해 버려요.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자꾸만 걷고 또 걷는 ‘나’의 발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부원아파트, 용두산아파트, 미국문화원 같은 장소들이 머릿속에 들어옵니다. 다른 주인공인 수미는 교도소에서 막 출소한 ‘윤미’ 언니와 갑자기 함께 살게 돼요. 윤미 언니가 교도소에 가게 된 이유가 밝혀지면서 이 이야기의 배경에는 1982년 부산 지역 대학생들의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알려지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소설이 바로 <미래 산책 연습>이었어요. 한강 작가의 소설들이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제주 4·3 사건 등을 다루고 있다면 박솔뫼 작가의 <미래 산책 연습>은 82년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너무 빨리 잊혀지거나 제대로 이야기되지 않은 것들을 조명합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시간과 기억에 관한 문장을 반복하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되물으면서요. 노벨문학상 선정위원회에서는 한강 작가의 작품을 두고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미래 산책 연습>의 문장들 역시 독특한 매력을 지녔어요. 시작과 끝이 분명하지 않은, 흐르는 생각을 그대로 담아내는 것 같은 문장들 덕분에 책을 읽는 동안 책 속의 인물들과 같이 산책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현재란 단순히 지금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누군가가 줄기차게 계속하고 있는 연습의 시간인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 속으로 함께 걸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