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파' 작품 가득한 모리스 드니 미술관!

[정연복과 손잡고, 세계의 미술관으로]

아방가르드 예술 시대의 모리스 드니

축구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파리 생제르맹 FC라는 팀을 아실 텐데요. 1970년 파리 FC와 스타드 생제르맹이 합병하면서 결성된 프랑스 축구클럽이죠. 스타드 생제르맹이 연고를 두었던 곳이 바로 파리에서 자동차로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생제르맹앙레입니다. 이 곳은 112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긴 역사를 품은 생제르맹앙레 성( 城)으로 유명합니다. 지금과 같은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은 프랑수아 1세 때 지어졌고, 루이 13세와 루이 14세가 바로 이 성에서 태어났죠. 베르사유 궁전이 완공될 때까지 이 성은 프랑스 왕들이 주로 머물며 정사를 펼쳤던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이 고즈넉한 도시에서 성장하고 활동한 화가가 있습니다. 바로 모리스 드니(Maurice Denis, 1870-1943)입니다. 그는 마네, 모네, 르누아르가 한창 새로운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던 때인 1870년에 태어나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중반 아방가르드 예술이 꽃을 피우던 시대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드니는 어린 시절을 보낸 이곳에서 작업하며 사망하던 무렵까지 살았는데요. 그가 살았던 집이 유족의 기증을 바탕으로 1980년 미술관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개관 당시 1,500여 점이던 소장품은 각계각층의 기증과 구입으로 현재 5천여 점에 이릅니다. 함께 미술관으로 가볼까요?

미술관은 두 거리가 만나는 삼각형의 부지에 있습니다. 17세기 후반에 지어진 건물의 원래 용도는 왕립병원이었습니다. 이후 병원은 구제원, 자선병원, 화가의 아틀리에 등 여러 용도로 쓰이다가 1914년 모리스 드니의 아틀리에 겸 자택이 됩니다.

생제르맹앙레에 있는 모리스 드니 미술관 입구. 사진=정연복

작은 수도원 같은 미술관

정문으로 들어가면 정원이 우선 보이고, 이를 거쳐 미술관으로 들어갑니다. 미술관 로비는 왕립 병원의 부엌이었던 곳으로 층고가 낮고 소박합니다. 전시실로 가기 위해서는 복도를 지나고 계단을 오르게 되는데요. 드니가 살았던 시절의 집 정경과 가족 사진들 덕분에 이곳이 화가의 창작의 산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로비도 그렇지만 층고가 높지 않은 교차궁륭의 천장과 시간의 흐름을 간직한 낡은 벽이 방문객에게 성스러운 예술의 전당으로 들어선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모리스 드니는 이곳을 ‘작은 수도원’(르 프리외르 Le Prieuré)이라는 애칭으로 불렀습니다.

전시실은 2층과 3층에 있습니다. 먼저 3층으로 가면 폴 고갱과 '나비파' 화가들을 주로 만나게 되는데요. '나비파'의 탄생에는 1888년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퐁타벤에서 이루어진 폴 고갱과 폴 세뤼지에의 만남이 결정적인 작용을 했습니다. 인상주의자들에 합류해 여러 차례 전시회에 참가했던 고갱은 뭔가 다른 것을 모색하기 시작했는데, 시시각각 변하는 것을 순간적으로 포착해 두세 시간만에 그리는 인상주의에서 벗어나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것을 담고자 합니다. 고갱은 말합니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너무 모방하려고 하지 마라. 예술은 추상이다. 자연 앞에서 꿈꿈으로써 추상을 끄집어내라. 결과보다는 창조를 생각하는 것이 창조주인 신께로 올라가는 유일한 길이다."

폴 세뤼지에, 부적(1888, 오르세 미술관). 퐁타벤의 ‘사랑의 숲’을 그린 그림이다. 폴 고갱의 지도를 받으며 자신의 생각과 감각에 충실하게 그린 결과 추상에 가까운 그림이 되었다. '나비파'가 탄생하게 되는 계기가 된 작품. 사진=위키페디아

폴 고갱, 폴 세뤼지에 그리고 '나비파'

고갱의 가르침을 받으며 세뤼지에가 그린 그림이 <부적>(1888, 오르세 미술관)입니다. 그림을 그린 다음 파리로 돌아온 세뤼지에가 뜻을 같이 하는 친구들(모리스 드니, 에두아르 뷔야르, 펠릭스 발로통, 피에르 보나르, 폴 랑송)을 모아 결성한 것이 '나비파'이고요.

조르주 라콩브, 빛나는 수염을 가진 나비(1894). 라콩브가 그린 폴 세뤼지에의 초상이다. 긴 머리와 긴 수염, 손모양 등이 예술가라기보다는 종교지도자에 가깝다. 사진=정연복

나비(Nabi)는 히브리어로 ‘율법학자’, ‘선생님’, ‘예언자’를 뜻합니다. 바깥 세상을 그리고자 했던 인상주의와 달리 내면의 목소리와 주관적인 표현에 더 관심을 기울이며 새로운 미술을 이끄는 스승이 되고자 했던 화가들의 염원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3층 전시실에서 볼 수 있는 <빛나는 수염을 가진 나비>(1894년경)는 라콩브가 그린 폴 세뤼지에의 초상인데요. 구약에 나오는 선지자와 같은 모습의 세뤼지에가 배에 타고 있습니다. 뒤로 보이는 하천의 물살은 금방이라도 배를 뒤집을 듯 세찹니다. 화가의 찌푸린 눈에는 근심이 가득하지만 위로와 축복을 내리는 제스쳐를 취하고 있습니다. 라콩브가 그린 이 초상은 나비파 화가들이 생각한 예술가가 어떤 존재인지를 잘 드러냅니다. 이외에도 3층에서는 폴 세뤼지에, 에두아르 뷔야르, 폴 랑송, 피에르 보나르 등 나비파 화가들의 작품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모리스 드니 미술관에 있는 예배당. 1914년에 옛 병원을 매입하자마자 드니는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예배당의 복원에 공을 들인다. 건축가 오귀스트 페레가 내장재와 트리뷴을, 그 이외의 스테인드 글라스, 천장화와 벽화는 모리스 드니가 작업했다. 1930년경 완성되었으니 15년 정도가 걸린 셈이다. 사진=정연복

모리스 드니의 작품 세계...고전적 절제미

3층에서 내려오면 우선 예배당을 들릅니다. 마티스, 샤갈 등 많은 예술가들이 스테인드 글라스 작업을 했지만 자신의 집 예배당에 그림을 그린 드니의 작업은 더욱 특별해 보입니다. 드니는 열다섯 살 때 “종교와 예술”이 자신의 평생의 열정이라고 고백하는데요. 예배당은 그 열정이 종합적으로 드러난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그리스도의 생애, 십자가의 길, 최후의 만찬, 십자가책형, 성인들의 모습 등이 그림과 스테인드 글라스, 조각으로 표현되어 있는데요.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면서도 모노톤의 그림과 여백을 활용한 뛰어난 공간구성으로 우아함과 절제미가 돋보입니다.

예배당을 나와 2층 전시실로 들어서면 간결하면서도 고전적인, 모리스 드니의 매력적인 예술 세계가 펼쳐집니다. 모리스 드니는 자신의 예술관을 글로 많이 남겼을 뿐 아니라 회화, 조각, 타피스트리, 벽화, 스테인드 글라스, 도자기, 가구 등 분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작업을 이어갔는데요.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일상생활 속에서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평소 생각을 실현하려고 노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리스 드니, 가톨릭적 신비(1889). 환한 빛과 고요로 '수태고지의 신비'를 나타낸 드니의 초기 걸작. 사진=정연복

모리스 드니는 나비파의 일원이기도 하면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특히 프라 안젤리코, 라파엘로, 보티첼리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의 그림이 유독 고전적이고 정적으로 보이는 이유입니다. 2층 전시실에서 볼 수 있는 <가톨릭적 신비>(1889)가 좋은 예인데요. ‘수태고지’를 다룬 이 그림은 열여덟 살에 그렸다는 것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완성도가 뛰어납니다. 같은 주제를 자주 다뤘던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처럼 절제된 간결미와 신비로움이 인상적입니다.

모리스 드니, 황혼녘의 마르트와 모리스 드니(1897). 사진=정연복

2층 전시실에는 드니와 부인인 마르트, 아이들이 등장하는 그림들도 많은데요. 특히 <해질녘의 드니와 마르트의 초상>(1897)이 눈길을 끕니다. 식탁 옆에 부부가 앉거나 서 있습니다. 부부의 얼굴은 황혼으로 홍조를 띄고요. 드니는 분홍 장미를 마르트쪽으로 내밀면서 그녀에 대한 마음을 드러냅니다. 뒤에서 과일을 따는 아이들은 부부의 사랑의 결실을 나타내는 걸까요? 해질녘의 아스라함과 멀리 떨어져 있는 숲의 아득함은 현실이 아닌 파라다이스 혹은 신화 속의 한 장면인 듯한 느낌도 들게 합니다. 식탁과 부부의 초상, 원경의 숲을 중첩적으로 배치한 노련한 화면구성 덕에 부부의 사랑은 어느새 신화의 세계로 접어듭니다.

회화, 사진, 조각, 캡션이 적절히 배치되어 관람의 여정은 모리스 드니의 삶과 작품세계, 예술관을 물흐르듯 따라가게 만들어준다. 특히 어린이들의 관심을 유발할 다양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아래쪽의 어린이를 위한 캡션은 첫번째 사진에서 보이는 마이욜의 조각, 마르트(1904)에 관한 것. 청동조각이 구리와 주석의 혼합물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미술관은 관심사와 연령에 따라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사진=정연복

미술관은 전체 면적이 7천㎡(2천 백여 평)로 아담한 크기인데다 전시 방식이 다채로워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다른 예술가들이나 작가들과 주고받은 편지, 글, 사진, 가구, 실내장식그림(재현), 조각 작품들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어 관람자들은 드니의 예술관과 작품세계, 삶을 흥미롭게 따라갈 수 있습니다. 게다가 어린이 관람객을 위한 눈높이 설명이 따로 있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다만 일부 캡션 이외에는 불어표기만 있는 것이 아쉬운데요. 지방의 작은 미술관이라도 전세계에서 오는 다양한 언어권의 관람자를 염두에 둔다면 보완해야 할 점으로 보입니다.

모리스 드니 미술관 정원. 큰 나무그늘이 있어 산책과 피크닉을 즐기기 좋다. 사진=정연복

미술관 관람을 마치면 정원이 기다리고 있는데요. 넓이가 1만㎡(3천여 평)에 이릅니다. 미술관이 있는 언덕에서 얕은 경사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수령이 몇백 년은 되었을 법한 키크고 울창한 나무들이 시원한 그늘과 휴식을 선사합니다. 부르델과 마이욜의 조각을 감상하며 피크닉도 즐길 수 있고요. 예술과 삶을 통합하고 삶 속에 예술을 구현하고자 했던 나비파와 모리스 드니를 다시 한번 더 느낄 수 있는 공간입니다.

입체파의 길 열어준 '나비파'

19세기 후반 10여년 간 활동한 '나비파'는 미술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까요? 모리스 드니는 말합니다. “전쟁터의 말이나 옷을 벗은 여인, 이런저런 에피소드이기 이전에 그림은 무엇보다 일정한 순서로 배합된 평평한 색면이다.”

이렇게 색면을 층층이 겹침으로써 그림은 ‘현실의 재현’이기를 그치고 하나의 ‘그림’이 되고 그림 주변의 가구와 벽과 어우러지는 ‘장식’이 됩니다. 이는 나비파 공통의 특징인데요. 객관적인 재현에서 벗어나 캔버스에서 입체감을 몰아낸 나비파는 20세기 초 입체파의 길을 열게 됩니다. 또한 평평한 색면의 총합을 통해 장식성을 고유한 특성으로 부각시킴으로써 예술과 공예의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건축과 공예, 실내 인테리어,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아르 누보(Art Nouveau)'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거죠. 폴 고갱과 나비파 화가들의 이야기는 앞으로 이어질 브르타뉴 미술관 기행에서 좀 더 자세히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정연복 미술평론가는 서울에서 불문학 학위를 받았으며, 프랑스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현재 중앙대에서 예술사 강의를 한다. 사조의 이해나 단순지식보다는 직관적인 경험으로서의 예술이해에 관심이 많다. 삶에서 예술이 나오고 예술이 곧 삶이 된다는 것,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는 만큼 느끼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림과 미술관에 관한 글을 쓰고 강연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