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외모 뒤에 숨은 풍요로움,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벨라 P400


수려한 얼굴로 5년째 시선을 끄는 SUV가 있다. 데뷔 1년 만에 월드 카 어워드 선정 ‘2018 세계 올해의 자동차 디자인’에 오른,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벨라다. 물론 잘생긴 외모가 전부는 아니다. 전동화 파워트레인과 새로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으로 끌어올린 완성도가 눈에 띄었다.

글|사진 서동현 기자

지난 2021년은 재규어 랜드로버 코리아에게 아주 중요한 해였다. 본사가 발표한 미래 글로벌 전략, ‘리이매진(Reimagine)’ 때문이다. 랜드로버는 2024년에 첫 순수 전기차를 출시하고, 5년에 걸쳐 여섯 대의 전기차 라인업을 선보인다. 2030년에는 랜드로버 차종 중 60%를 배출가스 없는 친환경 모델로 채울 예정이다. 2026년까진 디젤 엔진을 완전히 버린다.

이에 맞춰 국내 판매 라인업도 변화를 겪었다. 디젤 파워트레인은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과 짝지었다. 48V 전기 시스템과 소형 전기 모터로 엔진의 부담을 나눴다. 레인지로버 패밀리의 막내, 이보크는 연식 변경을 통해 빠르게 ‘탈 디젤’을 선언했다. 총 세 가지 트림의 보닛 속을 직렬 4기통 2.0L 가솔린 터보 엔진으로 채웠다.

지난해 연식 변경한 레인지로버 벨라는 전동화와 탈 디젤을 모두 선택했다. 직렬 6기통 3.0L 가솔린 터보 엔진에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얹었다. 직렬 4기통 2.0L 가솔린 터보 엔진을 단 P250 트림도 더했다. 시승차는 6기통 버전인 P400 R-다이내믹 HSE. 앞좌석 통풍 및 마사지 기능, 전용 21인치 휠 등을 챙긴 최상위 트림이다.

①익스테리어

거의 모든 자동차는 부분 변경을 치르며 화장을 고친다. 최신 트렌드를 따라 외모가 주는 신선함을 지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잘 ‘본판’이 좋은 차는 외모에 함부로 손을 대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도 질리지 않으니까. 벨라가 딱 그렇다. 한 판으로 찍어낸 클램 쉘 보닛과 매끈한 앞 범퍼, 슬림한 헤드램프 등으로 네 가지 레인지로버 중 가장 우아한 분위기를 풍긴다.

벨라의 핵심은 옆태. 보닛 높이에서 시작한 벨트라인은 조금의 굴곡도 없이 엉덩이로 뻗어나간다. 각 필러와 지붕은 피아노 블랙 패널로 마감했다. 이러한 ‘플로팅(Floating)’ 디자인은 차체가 낮고 안정적으로 보이는 시각적 효과를 준다. 가파른 뒷유리와 선을 바짝 치켜 올린 리어 범퍼로 은근한 속도감도 더했다. 도어 캐치는 문짝 속으로 깔끔하게 넣었다.

벨라의 차체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4,797×1,930×1,683㎜. 휠베이스는 2,874㎜다. 이보크와 레인지로버 스포츠 사이를 교묘히 파고든다. 덕분에 플랫폼 공유하는 재규어 F-페이스를 빼면, 비슷한 체격의 마땅한 경쟁상대가 없다. BMW X4와 비교하면 47㎜ 길고 10㎜ 넓다. 메르세데스-벤츠 GLC보단 각각 127㎜ 길고 40㎜ 넓다. 미들급과 라이트 헤비급 사이를 오가는 선수에 비유할 수 있다.

②인테리어

레인지로버 네 식구의 실내는 비슷한 스타일과 품질을 공유한다. 부분변경 전 모델과 비교하면 운전대 버튼 디자인을 바꿨다. 다이얼 형태의 기어 셀렉터는 전자식 레버로 바꿨다. 각종 정보는 12.3인치 디지털 계기판과 10인치 중앙 디스플레이에 띄운다. 공조장치 역시 고화질 디스플레이로 조작한다. 특히 송풍구 아래 모니터는 시동을 걸면 ‘스르륵’ 올라오는데, 화면 기울기를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다. 화창한 날에도 빛 반사 걱정이 없다.

주목할 점은 ‘Pivi pro(피비 프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다. LG전자와 공동 개발해 화면을 태블릿PC처럼 직관적으로 구성했다. 기능 대부분을 터치 두 번 만에 찾을 수 있으며, 원하는 페이지를 메인 화면에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다. 해상도와 반응속도 역시 훌륭하다. 대기업 노하우를 전수받은 효과가 톡톡하다. 국민 내비게이션, T맵도 기본이다.

시승차의 누적 주행거리는 약 1만㎞. 지금까지 제법 많은 기자들의 손을 거쳤다. 덕분에 시간에 따른 베이지·블랙 투톤 가죽의 컨디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염에는 강하다. 대시보드와 도어트림은 물론, 시트 쿠션 모두 눈에 거슬리는 때가 없다. 단, 내구성은 부위마다 편차가 있다. 가장 마찰이 잦은 운전석 허벅지 지지대는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반면 무릎 받침대는 여전히 탱탱하다. 다리를 은근히 압박할 정도로 유독 가죽이 단단하다.

뒷좌석 환경은 어떨까? 무릎 공간은 평균 신장의 성인 남성이 앉았을 때 주먹 2개 정도. 헤드룸도 주먹 1개 이상으로 넉넉하다. 시승차에는 약 40만 원 옵션이 들어가, 뒷좌석 등받이 각도를 전동식으로 기울일 수 있다. 덤으로 열선 기능이 따라온다. 광활한 파노라마 선루프를 얹어 시야도 쾌적하다. 다만 센터 터널은 구동력을 나눌 프로펠러 샤프트 탓에 우뚝 솟았다.

VDA 기준 트렁크 용량은 기본 735L. 4:2:4로 쪼갠 2열 시트를 접으면 최대 1,798L로 늘어난다. 볼보 XC60(483~1,410L), BMW X3(550~1,600L), 메르세데스-벤츠 GLC(550~1,600L)보다 훨씬 넉넉하다. 12V 소켓과 플라스틱 고리 4개, 금속 고리 4개도 알뜰하게 담았다. 단, 트렁크에 뒷좌석을 접기 위한 레버나 버튼이 없어 아쉽다.

③파워트레인 및 섀시

랜드로버의 트림별 작명법은 솔직하다. ‘P400’은 최고출력 ‘400마력’을 내는 직렬 6기통 3.0L 가솔린 터보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를 쓴다. 최대토크는 56.1㎏·m며, 0→시속 100㎞ 가속을 5.5초에 마친다. 여기에 ‘전기 수퍼차저’도 달았다.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으로 작동해, 초기 반응 속도가 느린 터보차저의 단점을 보완한다. 최고속도는 시속 250㎞.

‘벨트 통합형 스타터 제너레이터(BiSG)’가 틈틈이 에너지를 회수한 덕분에, 4기통 엔진보다 높은 효율도 달성했다. P250의 4기통 가솔린 터보 엔진은 1㎞ 당 197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복합연비는 1L당 8.6㎞. 반면 P400은 1㎞ 당 CO₂ 배출량이 190g이며, 복합연비는 8.9㎞/L다. 도심연비는 모두 8.0㎞/L인데, 고속연비가 각각 9.5㎞/L, 10.4㎞/L로 차이를 보였다.

강력한 파워트레인만큼 뼈대도 옹골차다. 전체 골격의 81%를 ‘6000시리즈 알루미늄’으로 채웠다. 망간과 마그네슘, 실리콘을 소량 첨가해 강성과 내식성을 키웠다. 자동화 기계에 주로 쓰는 알루미늄 합금이다. 패널 두께는 1.5→1.1㎜로 줄여 경량화도 실현했다.

④주행성능

시동을 걸자 차체가 두둥실 떠오른다. ‘4코너 에어 서스펜션’의 역할 중 하나로, 편안한 승하차를 위해 시동을 끄면 지상고를 40㎜ 내린다. 기본 지상고는 205㎜. 시속 105㎞ 이상으로 달릴 땐 10㎜ 낮춰 공기 저항을 줄이고, 오프로드에선 지상고를 최대 251㎜까지 높인다. 즉, 바퀴의 전체 트래블 범위가 무려 86㎜다.

유연한 서스펜션은 ‘상황 판단 능력’도 뛰어나다. 비결은 ‘어댑티브 다이내믹스(Adaptive Dynamics)’. 각 바퀴 움직임을 초당 500회, 차체 움직임을 초당 100회씩 모니터링 해 실시간으로 감쇠력을 조절한다. 효과는 확실하다. 속도를 올릴수록 한 치의 흔들림 없는 안정감을 뽐낸다. 운전대를 이리저리 휘둘러도 앞 더블 위시본, 뒤 멀티링크 서스펜션이 든든하게 버텨 믿음직하다.

승차감은 레인지로버 라인업 소비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핵심 가치 중 하나. 다만 벨라의 승차감은 ‘맏형’ 레인지로버와 성향이 살짝 다르다. 플래그십 모델인 레인지로버는 S-클래스 등 프리미엄 세단과 견주는 극한의 안락함을 자랑한다. 벨라의 하체는 그보다 탄탄하다. 세련된 주행 감각을 지키면서, 직관적인 피드백으로 비교적 낮은 연령층의 취향을 노린다.

엔진 회전 질감도 매력 포인트. 주행 상황에 따라 성향을 확 바꾼다. 엔진이 깨어날 때 사운드는 칼칼하다. 이내 숨소리가 잦아들고, 실내엔 정적만 맴돈다. 정차 중 스티어링 휠과 시트 진동도 잘 억제했다. 가속을 시작하면 부드럽게 회전수를 올린다. 특히 1,000~3,000rpm 사이를 유지하며 도심을 지날 땐 6기통 가솔린 엔진 특유의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오른발에 힘을 주면 숨은 야성미가 드러난다. 전기 수퍼차저의 작동음과 함께, 두둑한 토크로 2t(톤)이 조금 넘는 덩치를 밀어붙인다. 최대토크 구간(2,000~5,000rpm)을 지나도 지칠 기색이 없다. 바통을 넘겨받듯 400마력(5,500~6,500rpm)을 레드존까지 쏟아낸다. 잔뜩 화가 난 엔진은 제법 자극적인 목소리를 내며, 그 외의 불쾌한 노면 소음 등은 ‘액티브 로드 노이즈 캔슬레이션’ 기능으로 차단한다.

단, 엔진과 맞물린 8단 자동변속기의 성격은 약간 다르다. 재빠른 변속보단 느긋함에 초점을 맞췄다. 급가속 시 전기 수퍼차저는 빠르게 회전하나, 기어 내리는 시점은 반 박자 느리다. 운전대 뒤 시프트 패들 반응속도도 마찬가지. 분명 화끈한 파워트레인을 품었지만, 고성능 부서 ‘SVR’의 영역까지 건드리진 않았다.

인상적인 온로드 실력을 지닌 벨라.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특징이 있다. 랜드로버는 태생이 오프로더로, 어지간한 험로는 두려워하지 않을 스펙을 지녔다. 노면에 따라 네 바퀴 구동력을 섬세하게 조절하는 ‘전자동 지형 반응 시스템(Terrain Response)’은 모든 랜드로버에 차별 없이 들어간다. 또한, 저속 크루즈 컨트롤 개념의 ‘전지형 프로그레스 컨트롤(ATPC)’은 시속 2~30㎞에서 페달 조작 없이도 젖은 노면과 풀, 눈, 흙길을 헤쳐 나간다. 접근각과 이탈각은 각각 27.5°, 29.5°.

주행 성능을 떠나서, 벨라의 안전 보조 시스템도 칭찬하고 싶다. 정체길 운전 중 앞 차와 거리가 확 줄었는데, 긴급 제동 시스템이 개입해 차를 멈춰 세웠다. 사실 내가 직접 브레이크를 밟아 제동할 수 있는 수준의 거리였다. 그만큼 안전 보조 시스템의 기준이 보수적이란 뜻이다. 깜짝 놀라긴 했지만, 늘 주변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웠다.

⑤총평

벨라의 가격표는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시승한 P400 R-다이내믹 HSE 트림은 1억1,380만 원. X3M 컴페티션이나 AMG GLC 63 S 등, 쟁쟁한 고성능 SUV 몸값의 턱밑에 있다. 벨라는 그들과 다른 노선을 걷는다. 펄펄 끓는 엔진과 광폭 타이어로 아스팔트를 정복하기보다, 거친 땅에도 주저 없이 뛰어들 줄 아는 다재다능함을 택했다. 아울러 질 좋은 소재로 감싼 실내의 고급스러움은 라이벌을 분명히 앞선다.

장점
1) 여전히 잘생긴 얼굴과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2) 안정적인 고속 크루징 능력
3) 다루기 쉬운 Pivi 프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단점
1) 다소 왼쪽으로 치우친 브레이크 페달
2) 지문과 스크래치에 약한 스티어링 휠 버튼
3) 화창한 날 빛 반사가 심한 계기판 커버

<제원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