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따고 김치 담그고 감빛 물들이고… 손맛 보러 땅끝으로![농촌愛올래]
(7) 전남 해남 체험프로그램 ‘땅끝마실’
비닐하우스에 바나나 주렁주렁
직접 칼로 베어내는 재미 쏠쏠
감농원에선 쪽색으로 면포 염색
텃밭 채소로 김밥 만들어 먹기도
속 꽉 찬 배추에 양념 버무리고
한옥 뜨끈한 온돌방서 꿀잠까지
해남=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
“해남 면적의 70%는 논밭, 경작지입니다. 그래서 ‘섬’의 정체성으로 수산업이 활발한 주변의 완도, 진도와 달리 해남의 정서적 특징은 ‘육지’와 농사라는 측면이 더 강합니다.”
지난달 20일 전남 해남군에서 만난 해남관광문화재단 관계자는 농촌 체험지로서 해남이 제격인 이유 중 하나를 이같이 설명했다. 해남에는 임진왜란 당시 ‘명량대첩’의 배경이 된 우수영, 한반도 육지의 가장 끝인 갈두산에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땅끝전망대와 같이 바다 관련 명소도 많다. 그러나 이날 가장 먼저 발길이 향한 곳은 국내에서 ‘바나나 재배’를 체험할 수 있는 북평면의 ‘땅끝농부’ 농장이었다.
약 0.2㏊, 60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 농장에서 아열대 작물을 재배하는 이곳은 이미 지역 어린이들, 전국의 체험 관광객들의 명소였다. 비닐하우스에서 바나나, 파파야를 키우며 제주도 특산품으로만 알려진 밀감 재배도 병행된다. 지난 2019년 바나나 묘목을 처음 심은 이후 이듬해 처음 바나나를 수확하기 시작해 이제는 체험형 농장으로까지 변모한 곳이다.
여름의 끝물에 농장을 찾았지만, 사실 정해진 수확철이 따로 없는 바나나 나무는 봄·가을이 체험 제철이다. 여름에는 비닐하우스 내부가 너무 덮고 모기 같은 벌레도 성가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날 찾은 농장은 가을 체험 ‘성수기’를 맞기 위한 정비가 한창이었다. 벌써 바나나 나무에는 후숙에 들어가기 전 ‘날것’ 그대로의 푸른색 바나나 과실이 바나나꽃 뒤로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체험객들은 바나나를 나무에서 직접 칼로 베어내 수확하는 체험을 할 수 있으며, 농장 내에 마련된 교육장에서 바나나 재배에 관한 강연도 들을 수 있다. 해남관광문화재단 관계자는 “농장 대표의 딸이 체험 일정 등을 조율하고 농장에서 부모님이 체험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며 “땅끝농부는 부모세대만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는 ‘1세대 체험농가’에서 부모·자녀 세대가 같이 운영에 참여하는 ‘2세대 체험농가’로 변화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땅끝농부에서 다시 15분 정도 차를 달려 도착한 곳은 현산면의 ‘초호영농조합법인’(초호)이었다. 체험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마을 주민들이 쪽색으로 면포를 염색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때마침 마을 주민들이 초호 대표와 함께 염색 활동 모임을 가지는 날이었다. 부부인 김이남(54)·강귀순(49) 대표는 지난 2011년 귀농해 이곳에 감농원을 열었다. 이후 감 같은 천연재료로 염색을 하는 체험프로그램까지 만들어 운영 중이다. 염색 체험과 인근에 위치한 해남 윤철하 고택 방문까지 거치면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체험을 위해 선생님과 단체로 초호를 방문한 어린이들은 예쁜 염색 무늬로 꾸민 학급티를 만들기도 한다. 염색 체험 후에는 텃밭의 채소로 김밥이나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 식(食)체험도 있다. 이 때문에 초호는 2022년 12월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식생활 우수 체험공간’으로 선정됐다.
초호가 위치한 마을은 ‘바다 조망권’을 끼고 있다. 김 대표는 “일몰 때가 되면 들판이 예쁘게 물든다”며 “마을 인구조사를 하면 담당 직원이 ‘이 마을은 사람이 늘어난다’고 말할 정도로 편안한 느낌을 주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또 국토순례를 하는 나그네들의 출발점이기도 한 해남에서 현산면 인근을 지날 때면 초호의 표지판을 잘 살펴봐야 한다. 초호는 도보 여행을 하는 ‘땅끝순례객’에게 1박1식을 제공한다고 써놨기 때문이다. 강 대표는 “도보여행자들과 얘기해 보면 다들 사연이 있더라”며 “그런 사람들에게 휴식을 제공하고 싶었다. 해남에 오면 따뜻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기억시켜 주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김 대표는 1박1식 표지판에 대해 “잘 보면 ‘무료’라는 얘기는 없다. 무료로 할지 감농원에서 무언가를 해야 할지는 우리와 사전에 얘기를 잘해야 한다”며 웃었다.
가을·겨울철 해남을 찾으면 만날 수 있는 체험의 백미는 ‘김치’다. 해남의 배추는 전체 김장배추 소비량의 약 25%를 차지할 정도의 전국구 작물이다. 그런 면에서 김치를 소재로 한 체험마을이 해남에 생겨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북평면 ‘동해김치마을’이 김치 체험으로는 대표적인 곳이다. 이곳에서는 산지 야채로 김장 양념을 만들어 준비된 절임배추로 김치를 담그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물론 김치 판매도 병행한다. 마을 사무장 최은경(49) 씨는 “해남 지역은 배추가 좋고, 이곳 마을 어머님들은 솜씨가 좋다”며 “그래서 김치에 대해 관심이 높았던 마을위원장이 김치 체험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설명을 하는 와중에도 최 씨의 휴대폰은 김치 구매를 문의하는 전화가 걸려 왔다.
사실 김치는 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해 가져가는 것보다 마트에서 구매하는 것이 더 싸다. 그럼에도 이곳의 체험프로그램에는 매번 체험객들이 몰린다. 최 씨는 “내가 만든 김치는 색다른 체험이기 때문”이라며 “재작년에는 10번의 체험 행사 중에 9번이나 계속 참가한 체험객도 있다”고 말했다. 이곳의 체험프로그램은 1주일 전 단체 사전예약을 통해 참여할 수 있다.
김치 체험이 잠잠한 한여름에는 마을에서 계곡물로 조성한 물놀이 체험장도 인기다. 뜨끈한 온돌방이 마련된 한옥 민박과 물놀이·김치 체험은 전국에서 이곳으로 체험객들을 불러 모은다. 특히 동해김치마을은 각종 체험프로그램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노인회·부인회·청년회 등을 통해 마을 주민들에게 돌려주는 수익 구조를 지니고 있다. 최 씨는 “체험프로그램과 김치 판매로 수익을 내고 마을 주민들 수혜로 돌아가는 구조”라며 “지난해엔 농식품부 행복마을 콘테스트에서 동상을 수상했다”고 말했다.
해남군은 이 같은 체험프로그램을 한데 묶어 ‘땅끝마실’이란 농촌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해남을 상징하는 ‘땅끝’에서 마실을 다닐 수 있도록 짜인 프로그램으로 현지 체험업체 14곳과 관광마을 1곳이 참여하고 있다. 당일형, 1박2일형 등 일정도 다양하며 전남관광플랫폼 ‘JN TOUR’를 통해 예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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