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튀르키예의 KAAN 5세대 전투기 개발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2025년 4월 10일, 앙카라를 방문한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이 한마디가 아시아-중동 방위산업 지도를 새롭게 그리고 있습니다.
한국과의 KF-21 보라매 사업에서 미지급금 논란을 빚고 있던 인도네시아가 갑작스럽게 튀르키예 쪽으로 선회하면서, 한국은 새로운 파트너로 UAE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 복잡한 외교 줄다리기 속에서 각국의 속내와 향후 전망을 살펴봅니다.
인도네시아의 도박
프라보워 수비안토는 국방부 장관 시절부터 항공우주 분야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습니다.
그가 튀르키예 에르도안 대통령을 만나 KAAN 참여 의사를 밝힌 것은 단순한 충동적 결정이 아닌, 치밀하게 계산된 전략적 선택으로 보입니다.

인도네시아 언론인 ZoneJakarta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육군 장성 출신인 프라보워는 군사력 현대화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내세웠습니다.
특히 싱가포르가 미국에서 F-35를 도입한 상황에서 인도네시아 공군의 노후화된 전력은 시급한 교체가 필요했다고 전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당초 러시아의 Su-35를 도입하려 했지만, 2022년 미국의 압력으로 이 계획은 무산되었고, 이 계획이 무산되면서 KF-21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하지만 KF-21 사업에서 인도네시아의 행보는 순탄치 않았습니다.
당초 약속한 1조 7천억 원 중 3천억 원만 납부했을 뿐,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지연과 조정 요구가 이어졌습니다.
2022년에는 인도네시아 기술자들이 허가 없이 중요 데이터에 접근하려 시도한 일이 발각되어 양국 관계에 금이 가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방위산업 전문매체인 Army Recognition는 "인도네시아는 지속적인 지역적 위협과 더 큰 전략적 자율성 확보를 위해 공군력 현대화가 필수적입니다."라고 분석했습니다.
또한 인도네시아는 전략적으로 항공 산업을 국가의 주요사업으로 육성하고 있습니다.
1만 7천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는 육상으로 방대한 국토를 연결하기보다는 자국의 항공산업을 키워 상공으로 국토를 통합하려는 전략적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도네시아가 항공산업을 국가 핵심 산업으로 적극 육성하는 근본적인 이유이며, 인도네시아의 항공 국영기업인 PTDI는 이러한 비전 아래, 장기적으로 글로벌 항공우주 산업의 주요 기업으로 거듭나려는 야심을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는 튀르키예와의 협력 과정에서 기술이전을 통해 항공우주 산업 육성이라는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한 전략적 기회로 KAAN 프로젝트 참여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갑작스런 UAE의 등장
인도네시아의 갑작스러운 변심으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던 한국에 희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바로 UAE가 KF-21 프로그램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Defense Blog에 따르면, UAE는 2022년 한국의 청궁 II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 도입 이후 한국과의 방위산업 협력을 꾸준히 강화해 왔습니다.
이미 UAE 군 관계자들은 KF-21이 참여하는 공중 훈련에 초대받아 참관했으며, KF-21의 성능과 잠재력에 깊은 인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UAE의 관심은 단순한 호기심 수준을 넘어섭니다.
중동의 군사 강국인 UAE는 'Vision 2030'이라는 국가 방위산업 육성 전략을 추진 중이며, KF-21 참여는 이 전략의 중요한 퍼즐 조각이 될 수 있습니다.
UAE는 단순히 완성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 이전과 현지 생산을 통해 자국 방위산업 역량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UAE가 인도네시아와 달리 재정적 부담을 충분히 감당할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석유 부국인 UAE는 이미 프랑스, 미국, 러시아 등 다양한 국가로부터 첨단 무기를 대규모로 도입한 경험이 있으며, KF-21 프로그램에 상당한 투자를 할 여력이 충분합니다.
또한 UAE는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쿠웨이트 등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과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KF-21의 중동 시장 확대에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TurDef의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도 KF-21에 관심을 보이고 있어, UAE의 참여가 더 큰 시장 확장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글로벌 방위산업 체스판의 복잡한 움직임
인도네시아의 KAAN 참여 선언과 UAE의 KF-21 관심은 단순한 무기 구매 결정이 아닌, 복잡한 지정학적 계산과 국가 전략이 얽힌 체스게임과도 같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전통적으로 비동맹 외교정책을 추구해왔으며,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 노력해 왔습니다.
튀르키예와의 방위협력 강화는 이러한 균형 전략의 일환으로,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프라보워 대통령은 "개발도상국의 지도자로서 우리는 전략적 동반자로서 새로운 세계 질서를 창출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지만, 이 화려한 수사 뒤에는 매우 실용적인 계산이 숨어 있습니다.
튀르키예는 서방의 기술적 제재에도 불구하고 자체 전투기를 개발할 정도로 방위산업 자립도가 높으며, 이슬람 국가라는 점에서 인도네시아와 문화적 친화성도 있습니다.
한편 UAE의 KF-21 관심은 중동에서 한국의 입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미 한국은 UAE에 원전을 수출하고, 천궁 미사일 시스템을 판매하는 등 긴밀한 경제·안보 협력 관계를 구축해왔습니다.
KF-21 협력은 이러한 관계를 한 단계 더 격상시킬 수 있는 기회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과 튀르키예가 사실상 경쟁 구도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양국은 모두 방위산업 자립화를 통한 국가 위상 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각자의 전투기 프로젝트인 KF-21과 KAAN을 통해 글로벌 방위산업 시장에서의 입지 확대를 노리고 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 확실한 변화
향후 상황은 여전히 유동적입니다.
인도네시아는 2026년이라는 KF-21 분담금 납부 기한을 앞두고 있으며, 한국과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것은 아닙니다.
석종건 방위사업청장은 "양국 간 소통을 강화하고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며 협력 관계를 더욱 강화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관계 개선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UAE의 KF-21 참여 역시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참여 형태, 재정적 기여 규모, 기술 이전 수준 등 협상해야 할 세부사항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또한 UAE는 전통적으로 다양한 국가로부터 무기를 도입하는 전략을 취해왔기 때문에, KF-21 외에도 다른 옵션을 계속 검토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인도네시아와 UAE의 움직임이 아시아-중동을 잇는 방위산업 협력의 새로운 축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단순한 무기 거래를 넘어, 기술 협력, 산업 발전, 지정학적 동맹 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21세기 국제 관계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전투기 개발 프로젝트라는 첨단 기술의 영역에서, 기존 강대국들이 아닌 아시아 국가들이 주도권을 쥐고 새로운 협력 구도를 만들어가는 모습은 글로벌 파워 밸런스의 중요한 변화를 시사합니다.
인도네시아의 프라보워와 UAE의 지도부가 던진 주사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세계는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