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를 잃은 연출가가 낯선 운전기사와 빨간 차를 타고 다닙니다. 두 사람은 한동안 거의 말을 섞지 않습니다. 그 침묵이 이 영화의 중심입니다.
빨간 사브 한 대
일본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이야기입니다. 연극 연출가이자 배우인 가후쿠는 아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 그가 남긴 말들을 끝내 듣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몇 년 뒤 그는 히로시마의 연극제에 초청돼 다국어 연극을 연출하게 되는데, 주최 측 규정에 따라 전속 운전기사를 배정받습니다. 스무 살 남짓한 운전기사 미사키와 매일 같은 차를 타고 오가는 동안 두 사람은 각자가 안고 있던 상실을 조금씩 꺼내 놓습니다. 세 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의 대부분이 차 안과 연습실에서 흘러갑니다. 원작은 단편소설이고, 영화는 그 뼈대에 여러 겹을 더해 길이를 늘렸습니다.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이 작품은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장편영화상을 받았습니다. 아시아 영화가 이 부문을 가져간 것은 2년 전 한국 작품 이후 처음이었고, 일본 영화로는 2009년 수상작 이후 13년 만이었습니다. 작품상을 포함해 네 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는 점도 함께 화제가 됐습니다. 영어권이 아닌 작품이 작품상 후보에 오르는 일 자체가 흔치 않습니다.

칸 각본상에서 시작된 흐름
앞서 2021년 제74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으며 흐름이 시작됐습니다. 이후 전 세계 영화제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외국어영화상을 이어서 받았고, 골든 글로브 외국어영화상 후보에도 올랐습니다. 국내에서는 2021년 12월 23일 개봉해 예술영화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고, 좌석 판매율이 높아 상영관이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이 작품으로 세계적인 이름을 얻었습니다.

여러 언어가 섞인 연극
극 중 연극은 배우들이 각자 모국어로 대사를 하는 방식으로 올려집니다. 일본어와 중국어, 한국어에 수어까지 섞여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상태로 연기가 진행됩니다. 뜻이 통하지 않는데도 감정이 전달되는 장면들이 영화의 주제와 겹치고, 한국 배우가 중요한 역할로 출연해 국내 관객에게도 익숙하게 다가옵니다.

긴 러닝타임이 필요한 이유
사건이 거의 없고 대화와 운전 장면이 반복되지만, 그 반복이 쌓여야 마지막 장면이 성립합니다. 처음 볼 때 느리다고 느꼈던 관객도 끝까지 본 뒤에는 길이를 문제 삼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고 보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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