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레이크를 밟자 시트가 몸을 움켜쥐듯 반응하고, 좌우로 핸들을 돌리면 시야 전체가 움직였다. 무릎 아래에선 차량 섀시가 진동을 따라 리듬을 탔고, 눈앞 191도 커브드 스크린에는 레이싱 서킷이 펼쳐졌다. 어느새 시험차 시트에 앉은 것이 아니라, 진짜 서킷 위를 질주하는 레이싱 선수처럼 몰입하게 됐다.
이 모든 경험이 펼쳐진 곳은 서울 강남 한복판. 현대자동차그룹이 세계 최초로 일반 고객에게 상시 개방하는 사용자경험(UX) 연구소 'UX 스튜디오 서울'이다. 지난 1일 정식 개관 이틀 전 진행된 프리 오픈 행사에서 먼저 이 공간을 경험했다. UX 스튜디오 서을은 강남대로 사옥 1·2층을 개조해 누구나 자유롭게 방문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든 UX 전용 연구 플랫폼이다. 완성차 브랜드 중 일반 고객을 상시적으로 UX 개발에 참여시키는 체계는 전 세계 최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공간은 2층에 위치한 시뮬레이션 룸이다. 준중형 세단부터 대형 SUV까지 차체를 바꿀 수 있는 '가변 테스트 벅'에 탑승해 고속 주행부터 서킷 주행, 복잡한 도심 정체 상황까지 다양한 환경을 체험할 수 있었다. LED 730개로 구성된 커브드 디스플레이는 서울, 샌프란시스코, 델리 등 전 세계 도시의 실도로 데이터를 반영해 시야를 가득 채웠고, 6축 모션 시뮬레이터는 급가속과 제동, 코너링의 압력을 섬세하게 전달했다.
모든 조작은 실시간으로 데이터화됐다. 시선은 어디로 향했는지, 페달을 얼마나 깊게 밟았는지, 핸들에서 손을 얼마나 오래 떼고 있었는지까지 내부 센서가 기록했다.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는 자율주행, 고성능 차량 UX, 운전자 보조 시스템 개발에 반영된다.

1층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오픈랩'이다. 입구에서는 현대차·기아 UX의 변천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UX 아카이브'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1990년대 그랜저의 아날로그 클러스터와 최신형 그랜저의 디지털 계기판이 나란히 전시돼 있었고, 시각 외에도 향후 청각, 촉각 등 오감 기반 전시로 확대될 예정이다.
가장 붐비는 공간은 UX 테스트 존이었다. 나무로 만든 실물 크기의 '스터디 벅'에 탑승해 도어 위치나 콘솔 동선 등을 바꿔보며 직접 UX 콘셉트를 설계할 수 있고, '검증 벅' 시뮬레이터에 올라 주행 시나리오를 실행하면 아이트래커가 시선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한다.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존에선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플레오스 커넥트'를 체험할 수 있었다. 음성 어시스턴트 '글레오'에게 "트렁크 열어줘"라고 명령하자 정확하게 작동했고, "창문 닫아줘" 같은 복합 명령도 매끄럽게 인식됐다. 플레오스 커넥트는 스마트폰처럼 직관적인 UI를 갖춘 시스템으로, 내년부터 양산차에 탑재될 예정이다.

남신 현대차그룹 UX전략팀 팀장은 "고객의 목소리를 차량 설계의 앞단에서부터 반영할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며 "여러 의견을 정제해 UX 콘셉트를 완성하는 데 실질적으로 반영한다"고 말했다.
2층 '어드밴스드 리서치 랩'은 보안 구역이다. 사전 리쿠르팅된 고객이 연구원들과 함께 자율주행, 고성능 차량, 엔터 앤 엑싯(탑승·하차) 등 세분화된 테마에 따라 UX 콘셉트를 논의하고 실험한다. 예컨대 "문이 잠긴 상태에서도 테일게이트를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제안은 실제로 시스템 조건을 수정하는 실험으로 이어졌다.
양주리 현대차그룹 UX전략팀 책임은 "기술 업데이트는 6개월에서 1년 주기로 이뤄진다"며 "1층 오픈랩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지만 2층은 서약서를 제출한 고객만 참여할 수 있는 보안 구역으로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모든 피처 개발은 시뮬레이션 룸에서 검증된다. 실제 차량처럼 구성된 테스트 벅은 사용자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변경된 콘셉트를 즉시 평가할 수 있는 구조다. 날씨, 시간, 도로 조건 등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고, 테스트 중 운전자의 시선, 반응 시간, 페달 조작 패턴까지 정밀하게 분석돼 데이터베이스로 축적된다.
김효린 현대차그룹 피처전략실 상무는 "현대차가 지향하는 UX는 편의성을 넘는 감동의 경험이며, 이 경험의 출발점은 고객의 목소리"라며 "UX 스튜디오 서울은 고객이 미래차 기술의 주체로 참여하는 새로운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UX 스튜디오 서울을 3일 정식 개관한다. 향후 미국 얼바인, 독일 프랑크푸르트, 중국 상하이 등으로도 개방형 UX 스튜디오를 확장할 계획이다. 경쟁사들이 기술 유출 우려로 철저히 비공개 전략을 고수하는 상황에서, 현대차는 실사용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술 완성도를 높이는 정공법을 택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