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하 스피릿' 가득 담긴 하와이 여행
The Aloha Spirit of Hawai‘i
이번 하와이 여행은 조금 특별하다. 휴양을 하거나 액티비티를 체험하는 것이 아닌, ‘알로하 스피릿’이 담긴 하와이의 문화를 체험해보는 여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O‘ahu
오아후
“‘Aloha’를 발음할 때는 ‘로~’를 길게 하시는 게 좋아요. 더 친근하다는 표시거든요.” 호놀룰루 다니엘 K. 이노우에 국제공항에서 만난 하와이관광청 한국 사무소 담당자 진(Jin)의 말을 듣자마자 ‘로~’에 라임을 넣어 하와이식 인사를 건넨다.
‘Aloha’ ‘Mahalo’ ‘‘Ohana’ ‘A hui hou’. 몇 마디 모르는 하와이 말이지만 하와이의 언어는 참 귀엽다. 마치 노래처럼. 밝게 웃으며 ‘로’를 길게 발음하다 보면 인사를 한 것뿐인데도 어느새 기분이 좋아진다. ‘알로하’는 단순한 인사 이상의 의미가 있다. 사랑과 연민, 존경의 의미를 담은 단어는 느긋하고 평화로운 섬 생활의 근본이 된다. 하와이가 특별한 이유는 해변, 산, 계곡, 동식물 등 아름다운 자연 때문만이 아니다. 하와이 문화를 형성하는 원칙이면서, 하와이가 세계 다른 곳과 차별화되는 이유는 하와이 땅과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별한 관계 때문이다. 이번 하와이 여행은 조금 특별하다. 휴양을 하거나 액티비티를 체험하는 것이 아닌, ‘알로하 스피릿’이 담긴 하와이의 문화를 체험해보는 여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Street
카카아코
오아후에 도착해 처음 향한 곳은 카카아코(Kakaʻako). 알라모아나와 다운타운 사이에 위치한 카카아코는 하와이 토착민의 거주지다. 2010년에 시작한 스트리트 아트 페스티벌 ‘파우와우’는 어둡고 칙칙했던 카카아코에 활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매년 100여 명에 이르는 아티스트가 이 지역 담벼락에 그림을 그려 넣으면서 거리 전체가 하나의 미술관처럼 변했다. 파우와우는 예술 봉사 활동과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데 일조했다. ‘솔트 앳 아워 카카아코’는 식당, 숍, 문화 공간이 한데 모여 있는 복합몰로 카카아코가 현지인과 여행객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이후부터 쭉 카카아코의 랜드마크 역할을 해왔다. 솔트 앳 아워 카카아코의 벽에 그려진 그림은 하와이의 아름다움을 포착한 대규모 벽화와 그림을 그리는 아티스트이자 파우와우의 공동 감독인 카메아 하다르의 작품 <나우파카(Naupaka)>로, 불의 여신 펠레의 여동생인 나우파카와 그녀의 연인 카우이를 놀랍도록 생생하게 묘사했다.
작품이 한 곳에 모여 있진 않지만 이곳을 시작으로 천천히 걸으며 벽화 구경을 시작한다. 작품마다 개성이 있지만 어떤 아티스트의 작품인지 알고 보면 흥미가 배가된다. 다채롭고 컬러풀한 일러스트로 유명한 킴 시엘벡의 푸른 호랑이가 정글을 헤치고 다니는 그림이나 뉴욕, 파리, 도쿄, 밀라노 등에서 볼 수 있는 시그너처 몬스터 캐릭터로 알려진 케빈 라이언스의 <알로하 몬스터> 앞에는 기념 촬영을 하려는 여행객들이 모여든다.
Aloha spirit
레이 만들기
하와이 여행 중 공항이나 호텔 체크인을 할 때, 혹은 하와이 사람들을 만날 때 꽃으로 만든 목걸이를 선물로 받은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하와이 사람들이 ‘환영’의 의미로 걸어주는 꽃 목걸이 ‘레이(Lei)’는 단순히 장식적 효과를 위한 소품이 아니다. 고대 폴리네시안으로부터 시작된 레이는 ‘만남, 이별, 축하’ 등 특별한 날 사용된다. 레이는 하와이말로 ‘목이나 머리에 거는 장식품’이라는 의미인데, 궁극적인 ‘사랑의 표현’이다. 그래서 하와이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레이를 줄 때 마음으로 깊이 포옹하듯 걸어준다. 레이를 건네는 하와이안의 손길에는 다정한 환대가 담긴 ‘알로하 스피릿’이 담겨 있다.
누군가에게 받기만 했던 레이를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다. 플라워숍 파이코(Paiko)에서는 레이 만들기 클래스를 운영한다. 플로리스트 마이테(Maite)가 꽃처럼 환한 미소로 취재진을 맞이했다. “레이를 만들 때는 멸종 위기에 처한 식물은 지양하고, 하와이에서 모은 신선한 재료로 만들어요.” 목걸이, 화관 등 다양한 종류의 레이가 있는데 우리는 머리에 쓰는 하쿠 (Haku)를 만들기로 했다. 먼저 각자 머리둘레를 잰다. 그다음 마음에 드는 꽃과 소재를 선택한 후 짚으로 꼬아 만들어진 줄 사이에 재료를 넣고 교차하면서 줄 꼬기를 반복하면 완성.
“레이를 잘 만들기 위해선 1년여의 시간이 걸리지만 방법을 터득한 후엔 만드는 데 15분밖에 걸리지 않는답니다.” 엉성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완성된 레이는 내 맘에 쏙 들었다.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과 초록색 식물을 손으로 직접 만지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는데, 레이의 의미를 생각하며 만들다 보니 이 시간이 더 소중해졌다.
Polynesian Culture
폴리네시안 문화
기원전 3000년 무렵, 동남아시아의 여러 민족이 남쪽과 동쪽으로 이주를 시작했다. 항해술이 발달하면서 이들은 솔로몬과 피지 그리고 뉴질랜드를 기점으로 동쪽으로는 이스터섬, 북쪽으로는 하와이제도를 연결하는 거대한 삼각형의 폴리네시아 문화권을 형성했다. 하와이 비숍 박물관에 따르면 하와이제도에 처음으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마르키즈섬(타히티의 북동 지역)에서 쌍둥이 카누를 타고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이 서기 750년경 이곳에 정착하면서부터다
. 폴리네시안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오아후섬 북동쪽 라이에(Laie) 지역으로 향한다. 와이키키에서도 훌라나 우쿨렐레, 레이 만들기 등을 체험해볼 수 있지만 폴리네시안 문화를 더 깊이 체험하고 싶다면 폴리네시안문화센터만 한 곳이 없다. 거대한 야외 테마파크는 하와이를 포함한 6개의 폴리네시안 부족마을로 나뉘어 있으며 다양한 볼거리와 공연을 제공한다. 하와이, 사모아, 통가, 타히티, 아오테아로아, 피지. 6개 부족마을마다 가옥 형태부터 고유의 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쇼와 액티비티가 준비되어 있다. 사모아 빌리지에선 코코넛 잎으로 물고기 만들기 체험을 하고, 아오테아로아 마을에서는 하카 쇼를 관람한다. 피지 빌리지에선 계급에 따라 다른 모양의 타투를 몸에 붙이는 체험을 할 수 있다. 타히티 빌리지에선 무릎과 엉덩이를 흔드는 화려한 춤을 관람하며 함께 출 수도 있다. 남녀노소 함께 어우러져 흥겨운 춤사위에 몸을 맡기면 내 몸에 폴리네시안의 피가 흐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5만여 평의 넓은 테마파크에서 마을을 탐험하며, 카누를 타고 유람하듯 한 바퀴 돌고 나니 어느새 반나절이 훌쩍 지나갔다.
History 태평양 전쟁의 시작과 끝
하와이는 주로 휴양 목적으로 찾지만 미국 내에선 현대사에 있어서 의미 있는 지역이다. 나의 부모님 세대(어린 시절 6·25전쟁을 겪은 세대)만 해도, 하와이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으로 꼽는 곳이 바로 진주만이다. 진주만 해상에는 애리조나호 기념관과 박물관 선박 미주리호가 마주보고 있다.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기습 공격 당시 이곳에 정박해 있던 애리조나호는 일본 함재기의 공습을 받아 침몰했고, 약 1천100명의 선원이 사망했다. 미국 당국은 이 배를 인양하지 않고 바다 위에 그대로 둔 채 추모 기념관을 지었다. 일정상 애리조나호 기념관은 생략하고 미주리호만 둘러보기로 한다. 윤희주 가이드의 안내와 함께 시간 여행이 시작된다. “애리조나호는 태평양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기념물, 미주리호는 승리로 전쟁을 마친 사실을 증언하는 기념물입니다. 격침된 애리조나호는 바다 아래서, 미주리호는 물 위에서 서로 뱃머리를 마주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 애리조나호의 마지막 생존자가 사망했어요. 지금까지도 애리조나호 아래 해저에선 매일 기름이 1갤런씩 나와 바다에 퍼지면 무지갯빛이 도는데, 사람들은 이를 죽은 선원들이 흘리는 눈물이라고 생각해 ‘애리조나의 검은 눈물’이라고 부른답니다.”
미주리호는 제2차 세계대전 말에 건조되어 곧 일본과의 전쟁에 투입되었다. 길이는 270m로 미식축구장 3개의 크기, 높이는 66m, 배수량 4만 5천 톤의 거구에 구경 40cm 주포 9문과 고각포 20문 그리고 많은 기관총을 장착한 이 전함은 당시엔 역대급 규모로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선체의 바닥은 뒤틀림, 습기, 불에 강한 티크우드로 만들어졌는데, 노쇠한 바닥은 그 후 몇 차례의 보수 작업 끝에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됐다. 기념품 숍에서는 보수 작업 때 갑판에서 뜯어낸 티크로 만든 책갈피 기념품 등을 판매한다. 전함의 일부를 간직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미주리호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맥아더 총사령관이 일본 측 대표로부터 항복 문서에 서명을 받던 자리다. 이 자리에는 일본 외에도 중국, 소련, 오스트레일리아, 프랑스, 뉴질랜드, 캐나다 등 연합국의 각 대표가 참석해 서명을 했다. 맥아더 장군이 서명을 받은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세계사의 한가운데 있는 듯 가슴이 뜨거워졌다. 작전실, 사관실 등 전쟁영화에서나 보아왔던 곳들을 둘러보는 재미도 있다. 캡틴 투어를 신청하면 추가로 캡틴이 사용하던 방을 볼 수 있다.
미주리호는 한국전, 걸프전에도 참여했으며 1991년 ‘사막의 폭풍 작전’을 마지막으로 퇴역했다. 세 번의 전쟁을 겪은 미주리호는 사람으로 치면 백전노장. 파란만장한 20세기사를 증언하는 기념물인 만큼 여행객, 특히 미국 본토에서 온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Art 호놀룰루 미술관
하와이에서 미술관이 우선순위였던 적은 별로 없다. 하와이가 예술의 불모지라고 생각했던 이들의 편견을 단숨에 지워주는 곳이 호놀룰루 미술관이다. 고대 예술부터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의 5만여 작품을 소장한 호눌룰루 미술관은 대도시의 대형 미술관과 비교하면 규모는 작지만 전시 내용과 소장 컬렉션이 제법 알차다. 하와이-태평양관에서 하와이 탄생의 역사와 시티 뷰, 자연경관을 담은 회화, 설치 작품을 감상하며 관람을 시작한다. 하와이 원주민의 역사, 바다를 매립해서 만든 1970년대 하와이 공항의 모습,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로맨틱한 하와이 모습을 작품을 통해 만나본다는 건 하와이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흐, 클로드 모네, 앙리 마티스, 알렉스 카츠 등 인상파부터 현대 아티스트까지, 거장의 작품도 볼만하지만 여기서 꼭 들러야 할 곳이 한국관이다. “1927년 개관했을 때부터 한국관이 존재했어요. 미국에서 가장 먼저 한국관을 오픈한 미술관이 호놀룰루 미술관이랍니다.” 아시아 담당 큐레이터 숀 아이크만(Shawn Eichman)의 설명을 듣고 나니 호기심이 증폭된다. 설립자인 앤 라이스 쿡(Anna Rice Cooke) 여사는 자신이 수집한 104점의 한국 예술품을 미술관에 기증했다. 고려청자와 분청사기, 조선백자 등 한국의 도자기 등을 주로 감상할 수 있는데, 일제강점기 시절 머나먼 타국에 한국관이 처음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깊다. 전시 내용은 4개월마다 바뀌지만 상설 전시관이니 언제든 관람할 수 있다. 전시 내용도 흥미롭지만 미술관 곳곳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정원은 호눌룰루 미술관을 다시 찾고 싶게 만드는 이유다. 코발트 빛깔의 타일과 작은 분수, 붉은 꽃과 잘 가꾸어진 나무 그늘 아래서 새소리를 들으며 숨을 돌리니 이곳이 오아후에서 가장 고요한 공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TASTE
진짜 하와이 초콜릿
하와이는 미국에서 카카오를 재배하는 유일한 주다. 카카오나무는 추운 기후에선 잘 자라지 않기 때문에 미국 50개 주 중에서는 연중 온화한 기후를 가진 하와이에서만 상업적 재배가 가능하다. 로노하나 이스테이트 초콜릿(Lonohana Estate Chocolate)은 오아후 북쪽 노스쇼어에서 카카오나무를 키우고 호놀룰루에서 초콜릿을 생산한다. 카카오 재배와 초콜릿 생산 모두 하와이에서 이루어지는 진짜 ‘하와이 초콜릿’인 것. 호놀룰루에 위치한 초콜릿 테이스팅 바가 있는 건물은 1938년부터 극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로노하나 초콜릿은 카카오 재배부터 초콜릿 생산까지 지속 가능한 방식을 지향합니다. 건강한 토양을 가꾸고 윤리적인 방식으로 생산하죠.” 로노하나 이스테이트 초콜릿의 설립자, 세네카 클라센(Seneca Klassen)의 설명과 함께 공장 투어를 시작했다. 공장에는 극장이었던 시절 처음 상영되었던 영화 포스터가 남아 있다. 1918년 스페인에서 온 기계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수집한 빈티지한 기계들로 초콜릿 가공을 하는데, 오래된 극장 건물과 빈티지 기계가 왠지 잘 어울린다. 카카오 열매의 씨앗인 카카오빈을 열풍으로 볶아 외피를 분리한 후 으깨어 반죽을 만들고 여기에 설탕, 우유, 버터 등을 섞어 초콜릿을 완성한다. 공장 투어를 마친 후 카카오빈부터 시그너처 다크 초콜릿바와 비건 초콜릿, 하와이 커피와 바다 소금이 들어간 초콜릿 등 다양한 풍미의 초콜릿을 맛보았다. 쌉쌀한 카카오빈이 초콜릿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니, 달콤 쌉싸래한 초콜릿의 여운이 더 깊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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