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화 전 한신대 교수/작가]
최근 OTT 글로벌 차트 최상위권에 진입한 두 편의 작품이 있다. 하나는 이미 세계적인 드라마로 자리잡은 '오징어 게임3' 이고, 다른 하나는 슈퍼스타급의 K-Pop 걸그룹이 악귀를 사냥하는 특이한 내용의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이하 '케데헌')다. 장르도 분위기도 다르고 제작된 국가도 다르지만 두 작품엔 공통점이 보이는데, K-콘텐츠만의 개성과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메시지의 포착이라고 할 수 있다.

K-콘텐츠의 글로벌 신드롬: 시스템의 양면성과 한국적 요소
두 작품의 두드러진 공통점은 '시스템'의 양면성을 비판적으로 조명한다는 점이다. '케데헌'의 주인공인 아이돌 그룹 ‘헌트릭스’는 저승의 악귀로부터 인간세상을 지키는 보호막인 '혼문(魂門)'의 수호자다. 이들의 음악으로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고 희망의 에너지를 얻는다. 반면 경쟁 그룹인 '사자 보이즈'는 저승의 지배자가 이승에 잠입시킨 위장부대로, 맹목적 추종과 자아상실 같은 K-Pop 팬덤의 어두운 면을 은유한다. 또한 아이돌 세계관의 완벽한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재능있는 청년들의 영혼을 압박하고 갉아먹는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의 그늘을 보여주는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
모두가 아는 '오징어 게임'은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막대한 상금을 위해 목숨을 건 생존 게임에 참여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의외로 주최측은 참가자들이 다수결로 게임을 지속할지를 결정할 '선택 권한'을 부여하는데, 일견 자유롭고 민주적으로 보이는 제도 속에서 ‘죽거나 죽이거나’의 잔혹경쟁을 강요하는 사회의 이중적 면모를 폭로한다.
방식은 다르지만 두 작품 모두 희망적이고 합법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의 착취구조와 모순성을 드러내며, 극한의 대결구조 속에서도 자신의 가치와 연대의 필요성을 증명하고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인물들의 외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또 다른 공통점은 지극히 한국적인 소재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전 인류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문화적 코드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오징어 게임'은 딱지치기, 줄넘기, 공기놀이 등 한국인에게는 익숙하고 즐거운 추억이자 향수 어린 전통놀이들을 죽음의 게임으로 변주하여 신선한 충격을 안긴 것과 동시에, 드라마에 등장하는 놀이들을 세계인의 유희로 만들었다. 작품 속 놀이와 노래, 율동을 집에서 학교에서 거리에서, 심지어 나이트 클럽에서 한국말로 즐기는 전 세계인의 영상이 유튜브에 넘쳐난다. 없던 국뽕도 생길 지경이다.
'케데헌'은 현재 지구촌에서 가장 트렌디한 K-Pop스타의 삶과 음악을 중심으로, 한국의 전통 문화와 - 복식이나 건축물, 문양, 민화 속 동물, 저승사자같은 민간설화 및 신명나는 무속요소 - 서양의 데몬 헌터 장르를 기발하게 결합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귀여운 호랑이 더피와 까치의 인기가 치솟으며 관련 굿즈들은 입고 즉시 품절되는 상황이고, 박물관 문화상품 온라인 샵의 일평균 방문자도 과거 한 달 방문객에 가까운 26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K-Food, K- Movie, K- Game, K- Cosmetic, K- Beauty 등에 이어 이제 K-무속과 K-귀신까지 난리라는 우스개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청년들의 현실 이슈: 디지털 문화와 자아 찾기
특히 '케데헌'은 애니메이션이지만 청년 세대가 직면한 현실 이슈들을 보여준다. K-Pop 아이돌은 팬들에게 단순한 연예인이나 음악인을 넘어, 삶의 구심점이자 희망, 위로의 존재로 자리잡고 있다. 개인적인 욕망이나 감정을 중시하고 때로 공격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는 서구의 아티스트들보다 자아성찰 및 치유와 희망의 가치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고, 팬들과의 정서적 유대감도 높기 때문이다. 이는 긍정적인 측면이기도 하지만, 팬심 이상의 몰입이 그룹의 세계관으로 연결되며 맹목적인 추종과 헌신, 과도한 경쟁심으로 이어지는 위험성도 내포한다. 악귀들이 팬들의 영혼을 흡입하는 모습이나, 스타에게 팬의 영혼까지 내주기를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사자 보이즈’의 ‘Your idol’ 가사는 자칫 '종교화', '교주화'될 수 있는 팬덤 문화를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스타를 향한 열광과 집착, 악성 댓글이나 루머, '좋아요'나 '조회수' 같은 수치에 대한 강박과 사재기 등이 오히려 아티스트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스스로 '역(逆)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전달하고 있다. ‘헌트릭스’ 멤버들이 악귀들로 대변되는 시장 시스템 및 혼탁한 디지털 세상에 맞서 싸우며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성장하는 서사는, 청년들이 겪는 '자아 분열'이 '자아 찾기'로 발전하는 여정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케데헌’의 주인공들은 ‘개인’의 고뇌를 넘어 ‘우리’라는 공동체성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혼란 속에서도 서로를 지지하고 함께 나아가는 연대의 가치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K-Pop 특유의 개성을 잃지 않는다. 작품에 등장한 주요 곡들도 대단히 훌륭해서 다양한 글로벌 음원차트 순위의 K-컨텐츠 기록을 최단시간에 갱신중이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두 작품 모두 '다소 고립적이고 의심 많은 남성 청년상'과 '강인하고 협력적인 여성 청년상'을 대비시킨다는 점이다.
‘오징어 게임3’에는 자신의 아이와 여자친구를 구하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결코 주변의 선의를 믿지 못하는 남성과, 이와 반대로 주위의 도움을 받거나 자신을 희생하며 아이를 지켜내는 여성이 등장한다. ‘케데헌’ 역시 과거의 트라우마에 갇혀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남성과, 반대로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고 동료들과 함께하는 주체적 여성을 보여준다. 이는 현대 사회의 급격한 변동, 여성들의 위상변화와 함께 남성들이 겪는 사회적 불안을 반영하는 것이며, 젠더성에 대한 재정의를 질문하는 것이기도 하다. 두 작품 모두 신뢰사회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점에서 동일하면서도 결론의 희비극성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적 코드'의 힘: 탈권위적 시선과 민주주의의 유산
이러한 세대변화와 K-컨텐츠의 특징은 ‘케데헌’에 등장하는 남녀 아이돌 그룹의 상징에서도 드러난다. 저승사자 그룹인 ‘사자 보이즈’의 심볼은 중의적 의미가 담긴 동물 사자다. 사자는 서구에서 권력, 위엄, 지배, 때로는 제국주의적 정복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반면 걸그룹 ‘헌트릭스’의 주인공이자 퇴마사인 루미가 애착하는 동물은 한국의 민화 ‘호작도’에 등장하는 귀여운 호랑이로, 남자 주인공 진우와 루미를 이어주는 매신저다. 호랑이는 예로부터 나쁜 기운이나 귀신을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를 가진 영물이자 산신령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존재로 여겨졌기에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인물들의 메신저로 매우 적절한 선택이었다.
사실 호랑이는 전세계 어느 나라든 위풍당당하고 범접 못할 아우라로 인해 수호신적 존재로 추앙받고 있는데, 한국 민화 속 호랑이는 특이하게도 익살맞고 다소 어리숙한 표정으로 그려지거나 까치같은 작은 새와 함께 노는 친근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이는 권위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과도한 권력은 비웃고 견제하려는 민초들의 양가적 감정과 풍자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라 느껴진다.
우연이겠지만 처음 루미 앞에 등장한 호랑이가 넘어진 작은 화분을 일으켜 세우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지난 겨울 계엄령 지시를 받고 국회에 난입한 군인이 창문 틀에 세워진 화분을 조심스럽게 옮기던 모습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지구촌에서 가장 빠른 시간에 성장한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러한 탈권위와 해학적 정서의 산물이 아닐까 추측해보게 된다.

'케데헌'과 '오징어 게임'은 전혀 다른 장르와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지만, 현대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무한 경쟁 속 생존 이슈, 한국 문화의 차별성과 보편성 전달, 감각적인 연출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전세계 관객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특히 '케데헌'은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을 가진 한국계 캐나다인 감독 메기 강의 통찰력과 글로벌 제작 시스템의 기술력이 결합된 결과라서 더욱 주목할만하다.
한국 문화의 깊이와 다양성, K-Pop의 또 다른 가능성을 융합적 시각으로 접근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적인 것, 혹은 나 다운 것이 어떻게, 왜 세계적인 것일 수 있고 보편적인 메시지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빛나는 사례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길 기대한다.
※ 필자인 박선화는 LG전자와 LG U+에서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고 커뮤니케이션하는 일을 했다. 업무를 통해 마케팅이 심리학임을 깨닫고, 이후 이와 관련된 공부를 하며 소통에 관한 책을 쓰고 강의도 하고 있다. 현재는 한신대학교 평화교양대학에 재직중이다. 전공과 관심분야가 다양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