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온실가스 79%는 G20이 배출…‘슈퍼리치’ 배출량은 하위 50%의 100배
윤석열 정부는 2024년 12월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의 석유·천연가스 매장 예상 지역에서 해저 바닥에 구멍을 뚫는 시추 작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석유는 최대 4년, 천연가스는 최대 29년간 사용할 수 있는 양이 매장됐을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자원안보(석유, 천연가스, 석탄과 같은 자원의 안정적인 공급) 강화와 경제발전 기여가 정부가 말하는 채굴 효과다.
하지만 시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은 해양생물 활동을 방해한다. 생명 유지에 필수인 먹이를 먹을 수 있는 지역을 못 가게 한다. 시추에 필요한 중장비 건설은 해양생물 서식지를 파괴한다.
영일만 ‘천공’이 파괴할 해양 생태계
시추 공정에서 배출되는 중금속, 탄화수소와 같은 오염물질은 해양생물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특정 종의 번식을 촉진하는 반면 다른 종의 희생을 초래할 수 있다. 이는 해양 먹이사슬 붕괴의 원인이 된다. 만일 기름이 유출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산소의 50%를 생산하고 대기 중으로 배출된 이산화탄소의 25%를 흡수하는 바다가 자정 작용을 잃는다.
“해저 자원 채굴은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는 일입니다. 파괴된 생태계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바다는 지구 기후를 안정화하는 중요한 자정 능력을 가졌습니다. 그걸 손댔다가는 우리에게 더 큰 피해로 돌아올 겁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생물다양성을 고려하지 않는 해양자원 개발을 우려하는 엘리사 모르제라 유엔 기후변화와 인권 특별보고관이 한 말이다.
특별보고관은 중대한 인권침해를 예방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유엔 총회가 설립한 부속기구인 유엔 인권이사회가 임명하는 독립 전문가다. 임기 3년 동안 특정 인권 사안 또는 특정 국가 인권 상황을 살피는 임무를 수행한다. 직위명에 있는 ‘기후변화와 인권’, 즉 기후변화가 인권에 미치는 영향이 모르제라 특별보고관이 다루는 주제다. 이 직위는 2021년 10월 신설됐다.
영국 스트래스클라이드대학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서 국제환경법 교수로 재직 중인 모르제라 특별보고관은 인권과 환경, 원주민, 생물다양성 등을 주제로 많은 연구를 수행한 인물로, 2024년 5월부터 특별보고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를 2024년 10월14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회의실에서 직접 만나 기후위기 악화를 막기 위해 각국 정부와 기업, 개인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물었다.
―국제사회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어떻게 보고 있나.
“(2015년 12월12일 당시 196개국 대표가 모여 채택한) 파리협정에서 전세계는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전 지구적 목표를 설정했다. 하지만 이 1.5도라는 마지노선도 인간에게 매우 위험하다. 파리협정 이후 각국이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설정해 이행하고 있는데, 그 목표가 기후위기 완화에 충분한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1.5도’로는 부족하다는 뜻인가.
“1.5도 이내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시민들의 문제 제기가 여러 나라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국 하와이주에 사는 아동·청소년들은 (2022년 6월) 주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주정부가 고속도로 건설을 우선시하며 깨끗한 환경에서 생활할 헌법상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것이다.”(이후 하와이주정부는 2024년 6월25일 열릴 예정이었던 첫 공판을 앞두고 2030년까지 전기자동차와 대중교통 이용을 늘리기 위한 예산을 투입하고 2045년까지 탄소 배출을 ‘0’으로 만들겠다며 청구인단과 합의했다. 법원은 이 합의를 받아들였다.)
위험한 마지노선 ‘1.5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오이시디) 회원국 38개국의 평균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세계 평균 온실가스 배출량보다 많다. 2022년 기준 오이시디 회원국의 평균 온실가스 배출량은 1인당 7.78t이다. 같은 해 세계 평균 온실가스 배출량은 1인당 4.66t이다.
“세계 모든 국가가 똑같이 기후변화에 책임이 있지는 않다. 어떤 나라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반면, 어떤 나라는 그렇지 않다. 에너지로 쓸 수 있는 자원이 많아 이를 토대로 많은 상품을 생산하면서 기후에 악영향을 미친다. 오이시디 각국은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기업 생산 활동에 더 긴급하게 대응해야 한다. 또 자국에 있는 (초국적) 기업이 다른 나라에 진출할 때 그 나라(진출국)의 기후위기를 악화시키지 않도록 공동으로 노력해야 한다.”
분야별로 보면 철강, 경공업, 광물, 시멘트, 화학을 포함한 ‘산업’ 분야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크다. 2022년 기준 전세계 연료 연소 배출량의 38%를 차지한다. 그다음이 ‘건설’ 분야다. 공간 냉난방, 조명, 데이터 센터와 데이터 전송 네트워크 구축을 포함한 건설 분야의 온실가스 배출량 비중도 26%로 높다. 자동차, 항공기, 기차, 국제배송 등 ‘교통’ 분야 비중은 24%다. 나머지 22%는 농업, 임업, 어업 등에서 배출된다.(국제에너지기구)
―유럽연합(EU)은 2022년 원자력 발전 투자를 친환경으로 분류했다. 원자력 발전이 기후변화 완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한국도 2022년 원자력 발전을 녹색 경제활동으로 분류했다.)
“유엔 유해물질 특별보고관은 2023년 보고서에서 원자력 발전을 ‘친환경'으로 잘못 분류하는 것은 방사성 폐기물 처리의 심각한 문제를 경시한다고 지적했다. 생물다양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후위기 해결책은 있을 수 없다.”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산업구조를 친환경 산업구조로 바꾸기 위해 대두한 개념이 ‘정의로운 전환’이다. 1970년대부터 에너지·화학산업처럼 환경에 유해한 산업의 축소와 친환경 산업으로의 대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등장했다. 어떤 업종이나 지역에서 환경 보호를 위해 급속한 산업구조 전환이 일어날 때, 그 과정과 결과도 정의로워야 한다는 의미다. 파리협정 조문에도 “국가별로 규정된 개발 우선순위에 따라 노동력의 정의로운 전환과 좋은 일자리, 양질의 직업 창출이 매우 필요함을 고려”한다는 문구에 ‘정의로운 전환’이 반영돼 있다.
―‘정의로운 전환’ 과정에서 무엇을 신경 써야 할까.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산업구조 전환으로 노동자는 직장을 잃을 수 있고 다른 직장으로 옮겨야 할 수도 있다. 이때 노동자들이 그런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이를테면 어떤 기업이 기후변화를 막겠다며 공장 문을 닫기로 결정할 때 그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이야기를 우선 들어야 한다. 고용주가 노동자와 계속 대화하고 소통해야 한다. 단, 대화에 필요한 조건이 있다.”
노동권 보장하는 ‘정의로운 전환’
―그 조건은 무엇인가.
“기업이 노동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동안 기업 활동이 기후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기업이 그 활동을 언제까지 유지할지, 만일 그 활동의 종료가 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실직 또는 이직이 불가피한 노동자들에게 어떤 선택권이 있는지, 노동자의 희생이 뒤따르더라도 그 희생이 공동체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에 관한 정보에 노동자가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정보접근권은 인권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노동자와의 대화 없이 혼자 내린 결정을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한다. 인권침해다.”
―인권 존중뿐만 아니라 환경 보호를 위해 기업은 어떤 책임을 다해야 하나.
“에너지뿐만 아니라 수송, 건설, 농업 분야 기업도 다 관련이 있다. 나를 포함한 다양한 전문가들이 정의로운 전환을 계속 강조해왔다. 그런데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정의로운 전환에 해당하는지를 제시하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현재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이것이 내가 임기 중에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다.”
우리나라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은 ‘정의로운 전환’을 ‘탄소중립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적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지역이나 산업의 노동자, 농민, 중소상공인 등을 보호하여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을 사회적으로 분담하고 취약계층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책 방향’으로 정의한다. 모르제라 특별보고관은 정의로운 전환이 산업구조 전환과 고용보장 문제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여성(소녀 포함)과 선주민, 아동, 노인, 장애인, 난민, 이주민 등 취약계층에 미칠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기후위기 영향은 평등하지 않다. 젠더 불평등이 대표적이다. 개발도상국에서 생활하는 여성들은 기후위기에 민감한 농업, 관광업과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비율이 높아 기후위기에 더욱 취약하다. 농작물 생산량 감소로 빈곤과 식량 불안에 시달린다. 또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교육받을 기회가 적고, 유급노동을 하지 못한 채 무보수 돌봄노동에 갇혀 있다. 기후위기로 가뭄이 지속하는 나라에서는 생활에 필요한 장작을 찾으러 깊은 산속으로 가는 여성들이 성폭력에 노출된다. 모르제라 특별보고관은 “정의로운 전환은 기후변화가 여성에게 미치는 불균형적인 영향을 고려해야 하며 ‘젠더 전환적 접근’을 개발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젠더 불평등을 초래하는 법과 정책, 사회규범, 고정관념, 관습, 관행을 바꾸는 일이 젠더 전환적 접근이다.
기후위기의 영향만 불평등한 것이 아니다. 원인 제공 정도도 평등하지 않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나라에 그 책임이 있다. 200개국이 넘는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85%를 차지하는 주요 20개국(G20)이 2021년 배출한 온실가스는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79%를 차지한다.(유엔환경계획) 개인에게도 책임이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개인은 부자들이다. 2019년 기준 소득 수준이 세계 하위 50%인 사람들의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1.4t이고, 중간 40%인 사람들의 배출량은 6.1t이다. 상위 10%인 사람들은 1인당 28.7t의 온실가스를 배출했다. 그런데 ‘슈퍼리치’로 불리는 상위 1%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1인당 101t에 달했다.(네이처) 상위 0.1%의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2022년)은 그보다 많은 200t이다.(국제에너지기구)
기후위기 영향과 책임의 ‘불평등’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부추기는 산업 자본주의가 지금의 기후위기를 초래했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많은 사람이 과소비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살아간다. 하지만 상위 1%, 10%에 해당하는 부유층이야말로 문제다. 상위 0.1% 안에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요트와 전용기, 저택을 소유한 억만장자와 백만장자가 있다.(전세계 인구의 90%는 1년에 한 번만 비행기를 타거나 비행기를 전혀 타지 않는다. 1%는 1년에 다섯 번 이상 비행한다. 비행기 좌석 공간을 고려했을 때, 비즈니스석과 같은 프리미엄 승객은 이코노미 승객보다 3배 더 많은 석유를 소비한다.) 일단은 제품 생산을 지금보다 줄여야 하고, 이런 슈퍼리치들의 소비를 제한하는 것이 기후위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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