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차는 못 하는" 한국 픽업트럭 홀로 만든 회사

연이은 성공에 자신감이 생긴 걸까요? 코란도 스포츠의 후속 모델로 플래그십 SUV 'G4 렉스턴'을 베이스로 한 '렉스턴 스포츠'가 출시됩니다. 뜬금없이 체급을 올려 차가 많이 거대해졌죠. 돈의 맛을 노린 쌍용의 큰 그림으로만 보였지만 그 속에는 쌍용에 나아지지 않는 집안 사정도 중요하게 작용했습니다.

코란도 스포츠가 슬슬 노후화되면서 모델 체인지에 대한 시장의 압박이 슬슬 느껴지는 가운데 티볼리의 성공으로 코란도 C의 후속 모델마저 철저한 도심형 SUV로 노선을 잡으면서 새로운 픽업트럭을 단독으로 개발하기에 여유가 없었던 쌍용은 결국 정통 보디 온 프레임 방식을 고수한 G4 렉스턴의 차체를 이용한다는 현실적인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출시된 렉스턴 스포츠는 고급 SUV G4 렉스턴을 이용해 만든 거치곤 가격이 예상외로 저렴하게 책정되면서 전작의 인기를 고스란히 이어받았습니다. 얼굴은 G4 렉스턴에서 고급스러움을 덜어내고자 노력한 흔적이 좀 보였지만 SUV의 듬직한 모습은 그대로였죠.

이전 코란도 스포츠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커졌습니다. 높아진 전고와 함께 시트 포지션도 덩달아 높아져서 웬만한 차들은 내려다 보일만큼 시원하죠. 타고 있으면 확실히 큰 차에 타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다만 비대해진 앞부분에 비해 적재함은 코란도 스포츠와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옆모습이 유난히 짤뚱해서 균형감이 떨어져 보인다는 이야기가 많았죠.

인테리어 역시 G4 렉스턴과 동일합니다. 고급 SUV를 표방하는 G4 렉스턴에서는 경쟁차에 비해 투박한 인테리어가 아쉬움으로 지적됐지만 픽업트럭 렉스턴 스포츠로 관점을 바꾸니 오히려 화려해 보이기까지 하죠.

심지어 SUV와의 판매 간섭을 막고자 의도적으로 하향된 편의 장비와 저렴한 소재로 채웠던 전작들과는 다르게 나파 가죽 내장재, 통풍 시트, 서라운드뷰 등 G4 렉스턴의 고급 사양을 상당 부분 그대로 옮겼죠. 한결 커진 차체만큼 넓어진 뒷좌석과 2열 에어벤트, 열선 시트 등 패밀리카로 사용하기 공간을 제공했습니다. 소비자의 반응도 상당히 좋았고요. 하지만 우려했던 대로 이 뛰어난 가성비가 G4 렉스턴의 발목을 잡는 결과를 낳게 됐죠.

파워트레인은 2.2L 디젤엔진과 6단 수동 및 자동변속기로 전작과 동일한 구성이지만 차가 커졌음에도 아쉬움 없는 힘을 제공했습니다.

이듬해에는 기존 모델이 약점으로 지속됐던 적재함을 개선한 롱바디 모델이 출시됐습니다. 파르테논 신전을 모티브로 한 세로형 그릴로 외관을 차별화했고 서브네임 '칸'은 몽골제국의 황제 '칭기즈 칸'에서 따왔다고 하죠. 큰 불만이 없던 승객석은 그대로 두고 적재함의 길이만 늘려 애매했던 적재 용량을 넉넉하게 키웠습니다. 덕분에 늘씬해진 차체로 겉에서 보기에도 숏바디에 비해 비율이 좋아졌다는 의견이 많죠.

탑을 씌우면 그 차이가 더 두드러집니다. 개인적으로는 하드탑이 없는 모델이 더 멋져 보이지만, 비가 오거나 도난이 우려될 때 하드탑이 상당히 유용하긴 하니까요.

가뜩이나 긴 전장이 더 길어져서 운전에 유의가 필요합니다. 좁은 코너 돌 때 특히요. 일반적인 주차장에 주차하면 툭 튀어나와서 본의 아니게 민폐가 될 수도 있죠.

후륜 서스펜션 방식을 주행 안정성, 승차감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5-링크 방식과 내구성 적재 최적화된 리프 스프링, 즉 화물차에 사용하는 판 스프링 방식으로 이원화해서 목적에 맞게 선택할 수 있게 했습니다. 적재량도 각각 다르죠.

다만 쉐보레 콜로라도와 비교해서 동일한 양의 짐을 적재했을 때 후륜 서스펜션이 주행에 지장을 줄 만큼 내려앉는 결과를 보여줘서 소비자들에게 실망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렉스턴 스포츠는 코란도 스포츠에 이어 군 지휘 차량으로 납품되면서 대대급 이상에서 운용되고 있습니다. 특장 모델도 여전해서 일부 콜밴과 렉카로 활용되고 있고, 적재 능력이 보강되면서 모터홈 캠핑카도 등장했죠.

간단한 페이스리프트를 진행하면서 G4 렉스턴과 인상이 거의 동일해졌고 요소수 장치를 추가해 최신 배출가스 규제에 대응했습니다. 기존 사각지대 경고, 차선 이탈 경고와 더불어서 긴급 제동 보조 같은 안전 사양도 추가돼 상품성이 더 좋아졌죠.

쌍용답지 않게 출시 3년 만에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내놨습니다. 앞서 SUV 렉스턴이 대대적인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면서 렉스턴 스포츠 역시 발을 맞춘 모양인데요. 스위트홈 등에 출연하면서 강인한 여성파이터 이미지를 가진 배우 '이시영'을 모델로 K-픽업이라는 타이틀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바다 건너온 경쟁차 쉐보레 '콜로라도'가 리얼 아메리칸 픽업트럭을 내세운 것과 대조적이죠.

새로운 외장 색상이 추가됐고 거대한 가로형 그릴과 넉넉하게 두른 스키드 플레이트로 인상이 한껏 과격해졌습니다. 속속 국내시장을 넘보는 미국산 픽업트럭에게 쫄지 않기 위해 이빨을 드러낸 모습 같죠.

칸 모델도 함께 변경됐는데 그릴 안쪽에 'KHAN' 레터링을 새겨 넣어 미국 감정을 한 스푼 추가했고 밋밋했던 후면부도 검은 플라스틱 장식을 넣어 전체적으로 차가 더 튼튼해 보이는 것이 특징이죠.

달라진 외관에 대한 반응이 꽤나 좋은 편인데 더욱 악화된 쌍용의 경영 사정으로 구매를 망설이는 소비자가 많은 모양입니다. 마음이 아프네요.

여기까지 국내시장의 '픽업'이라는 생소한 장르를 정착시킨 쌍용 픽업트럭 시리즈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3세대까지 이어져 왔지만 쉐보레 콜로라도나 포드 레인저 같은 동급 경쟁 모델과 비교하면 픽업트럭으로써의 본질은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저렴한 가격에 넉넉한 옵션, SUV의 라이프 스타일을 즐길 수 있는 한국인을 위한 '한국형 픽업트럭이 쌍용 픽업트럭 시리즈의 정체성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기울어진 집안의 스페어나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었던 그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모델을 만날 수 있을까요?

Copyright © 저작권 보호를 받는 본 콘텐츠는 카카오의 운영지침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