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쌍용자동차... 이제는 KG 모빌리티로

곽재선 회장이 KG모빌리티 사명과 CI를 선포했다  사진 KG모빌리티

SUV 명가로 사랑받아온 쌍용자동차의 역사가 2023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지난 2022년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KG 그룹이 올해 3월 30일 열린 2023 서울 모빌리티쇼에서 KG 모빌리티로 사명 변경을 선포한 것이다. 이날 KG 그룹은 'Think Great'이라는 자사의 슬로건을 전면에 내세우며, "KG 모빌리티가 급변하는 자동차 시장의 흐름에 발맞춰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미래 비전을 제시할 것"이라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경영적자에 허덕이며 언제나 미래가 불투명했던 쌍용자동차가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게 됐다니. 잘됐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론 가슴 한편이 시원섭섭하다. 이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70년 가까이 명맥을 이어왔던 쌍용차를 아직 가슴 속에서 보내주지 못한 감정의 소용돌이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동환 자동차 제작소에서 제작된 대형버스  사진 KG모빌리티

쌍용차의 시작과 마침표

쌍용차의 첫 시작은 1954년 하동환 자동차 제작소에서 시작됐다. 현대자동차의 설립연도가 1967년이니, 현대차보다 13년이나 일찍 자동차 산업에 뛰어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하동환 자동차 제작소에서 완성차를 뚝딱 만들어냈던 것은 아니고, 1960년대에는 대형버스를 생산, 1970년대에는 신진자동차로 법인을 등록한 후 미국 카이저 기반의 지프를 수주 받아 생산·수출하며 종합자동차회사가 되기 위한 기틀을 다졌다.

거화 지프 코란도  사진 KG모빌리티

거화 지프 코란도(1983~1988)

쌍용자동차의 첫 번째 모델은 1981년 신진자동차에서 ㈜거화로 상호를 변경한 뒤 1983년부터 생산된 지프 형식의 코란도다. 이 차량은 전기(1기형), 후기(2기형) 모델로 나뉘는데 1기형 모델은 2.8ℓ 디젤 엔진이 탑재됐으며, 1985년 출시된 후기 모델에는 이스즈제 2.2ℓ 디젤 엔진이 탑재돼 1986년 거화자동차가 동아자동차에 인수합병되고, 1988년 동아자동차가 쌍용자동차로 사명을 변경할 때까지 판매됐다.

쌍용 코란도 훼미리  사진 KG모빌리티

코란도 훼미리(1988~1996)

1988년 쌍용자동차 설립 이후, 코란도 훼미리가 출시됐다. 쌍용의 이름을 달고 나온 첫 번째 모델이기도 하다. 이 차량은 일본의 자동차 기업 이스즈의 트루퍼 모델을 기반으로 만든 사륜구동 방식의 SUV 자동차로, 엔진은 거화 자동차 시절 이스즈의 2.2ℓ 디젤 엔진이 장착됐고, 여기에 자동 4단, 수동 5단 변속기가 조화를 이룬다. 1988년 11월에 출시돼 12월부터 정식 판매에 들어갔으며, 1993년 무쏘 출시 후 지속적인 판매량 감소로 1996년 단종 됐다.

쌍용 무쏘  사진 KG모빌리티

무쏘(1993~2005)

1993년 8월에 출시된 무쏘는 쌍용자동차에 SUV 명가 이미지를 심어준 몇 안 되는 명차로 손꼽힌다. 무쏘는 당시 경쟁차종인 현대 갤로퍼와의 차별화를 위해 출시 전부터 벤츠 엔진 탑재 내용을 광고 마케팅 전략의 주요 내용으로 내세웠다. 효과도 톡톡히 봤다. 실제 장착됐던 벤츠의 2.9ℓ 직렬 5기통 OM602 디젤 엔진은 품질과 내구성이 뛰어나 2005년 단종 될 때까지 약 25만 대의 차를 판매하는 기염을 토했다. 출시 이후 뜨거운 반응에 1994년에는 변속기도 벤츠의 4단 자동 변속기 모델도 출시됐다. 또한, 국산 사륜구동 차량 중 처음으로 ABS와 사륜 전환 전자식 스위치를 탑재한 점이 특징이다.

뉴 코란도 밴  사진 KG모빌리티

뉴 코란도(1996~2005)

쌍용차는 1996년 무쏘에 이어 뉴 코란도를 출시하며 전성기를 맞이하게 됐다. 199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인 뉴 코란도는 지프의 남성적인 외관을 유지하면서도 곡선을 적절히 사용해 젊은 고객층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파워트레인도 무쏘의 엔진과 변속기를 공유해 벤츠의 엔진과 변속기가 장착돼 판매됐다. 하지만 1997년 IMF가 터지면서 뉴 코란도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쌍용차는 결국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대우그룹에 인수됐다. 그렇게 쌍용차의 황금기는 막을 내렸고 이후 배출가스 제한과 경쟁사의 유니바디 SUV 출시 등의 악재로 뉴 코란도 역시 2005년 단종됐다.

쌍용 체어맨  사진 KG모빌리티

체어맨(1997~2018)

쌍용자동차에서 1997년 처음 출시된 체어맨은 1984년 출시됐던 벤츠 E 클래스의 플랫폼으로 설계된 후륜·사륜 구동 기반의 최고급 대형 세단이다. 이 차는 1993년 체결된 벤츠와의 기술 협약의 결과물로 만들어졌으며 무쏘와 뉴 코란도의 우수한 품질을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를 바탕으로 출시 직후부터 2,000년대 말까지 매년 1만 대 내외의 판매량을 유지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델의 노후화와 높은 유지비용의 문제로 점유율이 하락하기 시작해 결국 2018년을 마지막으로 단종됐다.

쌍용 렉스턴  사진 KG모빌리티

렉스턴(2001~)

2001년 선보인 1세대 렉스턴은 IMF 이후 침체기를 겪고 있었던 쌍용차를 2010년까지 버틸 수 있도록 견인한 효자 모델이다. '대한민국 1%'를 슬로건으로 고급 SUV를 표방한 쌍용차의 마케팅 전략은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했고, 실제로 2001년 152억 원의 최대 성과를 이룩하며 10년 만에 흑자를 달성하게 됐다. 2003년 현대 테라칸과 기아 쏘렌토가 출시되는 등 경쟁사들의 견제에도 꿋꿋하게 쌍용의 매출을 담당했다.

파워트레인은 무쏘의 2.9ℓ 엔진과 4단 자동 변속기를 그대로 채용했다. 외관과 차대도 2017년 G4 렉스턴이 출시되기 전까지 거의 변경되지 않았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사골처럼 우려먹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17년에 2세대 풀체인지 모델로 출시된 G4 렉스턴은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1세대 모델부터 이어진 덩치에 걸맞지 않은 낮은 출력으로 인한 비판이 아직까지 이어지는 상황이다.

쌍용 로디우스  사진 KG모빌리티

로디우스(2004~2013), 액티언(2005~2011), 카이런(2005~2011)

2000년 4월 대우그룹에서 다시 분리된 이후 채권단 주도 하에 독자운영을 통해 사업을 이어가던 쌍용차는 2004년 중국의 국영 기업인 상하이 자동차에게 인수됐다. 중국의 자본을 통해 발전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합병 이후 신차 개발에 관련된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이후 2006년 상하이차의 기술 유출이 의심되는 부분이 발견됐고, 2009년 결국 상하이자동차의 기술유출 여부가 사실로 밝혀졌다. 혹자는 이 시기를 쌍용차의 암흑기라고도 부른다.

쌍용 로디우스, 카이런, 액티언은 쌍용차가 2010년 인도 마힌드라 그룹에 인수되기 전까지 암흑기를 함께한 차종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모델들이 암흑기 때문에 판매량이 저조했던 것은 아니다. 일정 부분 영향은 있었겠지만, 이 모델들이 부진한 주된 이유는 못생긴 외관 디자인 때문이다. 특히 2004년 출시된 로디우스는 영국 텔라그라프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못생긴차' 3위에 오르는 불상사를 겪었다.

2005년 무쏘의 후속 모델로 개발된 카이런도 로디우스와 함께 디자인으로 비판을 받으며 저조한 판매량을 기록했다. 같은 해 출시된 액티언도 디자인으로 인해 평가가 절하된 케이스다. 사실 액티언은 후면부가 매끄럽게 떨어지는 최근 SUV 트렌드인 쿠페형 SUV 모델의 창시자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못생긴 외관 디자인에 묻혀 빛을 보지 못했다.

쌍용 코란도 C  사진 KG모빌리티

코란도C(2010~2019)

마힌드라 그룹에 인수된 후 2011년 출시된 코란도C가 출시됐다. 당시 회사가 생사의 기로를 오가는 상황이었기에 전성기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을 담아 코란도로 차명을 정했다. 사활을 걸었던 만큼 제조 차량의 스타일도 많은 변화를 줬다. 가장 큰 변화는 프레임 온 바디 형식을 고집했던 기존의 방식을 버리고 경쟁사들과 같은 유니바디 형식을 채택한 것이다.

파워트레인도 긴 시간동안 사용한 벤츠 OM60X 기반 엔진이 아닌 새로 개발한 2.0ℓ e-XDi 디젤 엔진을 탑재했다. 이런 변화들로 인해 지동변속기 기준 이륜구동 모델 12.8km/ℓ, 사륜구동 모델 12.0km/ℓ로 이전 모델보다 연비가 대폭 상승했다. 덕분에 쌍용차는 2011년 한 해 3만 8,651대를 판매하며 전년보다 19.1% 판매량이 증가했다. 그중 코란도C만 1만 615대가 판매됐다.

쌍용 티볼리  사진 KG모빌리티

티볼리(2015~)

2015년 출시된 티볼리는 쌍용이 마힌드라 그룹에 인수된 후 독자적으로 만든 첫 번째 모델이자 현재까지 월 3,000대 내외의 꾸준한 판매량으로 자사를 먹여 살리고 있는 모델이다. 파워트레인은 쌍용차와 FEV 그룹이 공동 개발한 1.6ℓ 가솔린 MPI 엔진과 아이신 6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했다. SUV 시장이 커지고 있는 추세와 기존에 없던 소형 SUV 시장의 급성장에 힘입어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2015년 한 해에만 국내에서 4만 5,021대가 팔리며 쌍용차의 전체 판매대수 중 45%의 비중을 차지했다. 2016년에는 인기에 힘입어 실용성을 강조한 티볼리 에어를 출시하는 등 가성비를 앞세운 정책으로 소형 SUV 시장에서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렉스턴 스포츠 칸  사진 KG모빌리티

렉스턴 스포츠(2018~)

2017년 세대 변경 모델인 G4 렉스턴의 미지근한 반응과 달리 픽업트럭 기반의 렉스턴 스포츠의 출시는 소비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렉스턴의 고급 SUV를 추구한 이미지와 픽업트럭의 실용성을 강조한 부분이 남성들에게 제대로 먹혀든 것이다. 가격도 기본트림이 2,300만 원부터 시작해 구매에 대한 부담도 적었다. G4렉스턴과 큰 차별 점 없는 편의·안전사양도 소비자들의 선택에 많은 도움이 됐다. 파워트레인은 G4 렉스턴과 같은 2.2ℓ e-XDi 220 LET 엔진이 탑재됐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2019년에는 기존 모델보다 전장을 310mm 늘려 적재공간을 늘린 렉스턴 스포츠 칸을 출시했다.

뷰티풀 코란도  사진 KG모빌리티

뷰티풀 코란도(2019~)

2019년 2월 쌍용차가 풀체인지된 코란도를 선보였다. 새 코란도는 새로운 1.6ℓ e-XDi 디젤엔진과 1.5ℓ e-XGDi 터보 엔진이 장착돼 이전 모델보다 주행감이 크게 개선됐다. 티볼리와 비슷한 패밀리룩으로 외관도 변경됐다. 하지만 경쟁사 대비 부족한 편의사양과, 선호도 높은 옵션을 패키지로 묶어 필요 없는 옵션까지 구매하게 유도하는 부분으로 인해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소비자들의 외면은 곧 판매량으로 이어졌다. 출시 효과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2019년 3월 판매량은 2,202대에 그쳤고 2019년 한해 총 1만 6,885대를 판매하며 3,000억 원을 투자한 기댓값에 못 미치는 결과를 보였다.

2020년에는 경쟁사의 공격적인 SUV 시장 진출과 코로나19 등의 악재가 겹치며, 쌍용차의 경영 악화가 심화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4월 쌍용차의 최대주주였던 마힌드라 그룹도 투자 철회를 발표하며 새로운 투자자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쌍용 토레스  사진 KG모빌리티

토레스(2022~)

경영난뿐만 아니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휩쓸면서 존폐의 기로에 섰던 쌍용차가 KG그룹의 인수 확정으로 기사회생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2022년 7월 정식 출시를 알린 토레스도 powered By Toughness라는 쌍용차의 새로운 디자인 콘셉트에 입각해 제작된 내·외관과 제3종 저공해 자동차 인증을 취득한 1.5ℓ 직분사 가솔린 엔진과 6단 아이신 변속기가 조합의 파워트레인, 상품성 대비 매력적인 가격으로 고객들에게 많은 선택을 받고 있다. 토레스는 사전계약 첫날부터 계약대수 1만 2,383대를 기록했으며, 이후 국내 판매량도 계속 순위권을 유지하며 쌍용차의 대들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내연기관 70여년 역사 뒤로하고, 이제는 친환경 모빌리티 기업으로

이처럼 긴 시간 헤리티지를 쌓아온 쌍용차는 이번 서울모빌리티쇼를 기점으로 역사를 마무리하게 됐다. 쌍용차가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내연기관의 역사를 써내려 왔고, KG 모빌리티가 유지를 이어 미래 모빌리티 시장의 역사를 써내려갈 준비를 마쳤다. 이를 대변하듯 모빌리티쇼 부스에는 O100, F100, KR10 등의 콘셉트 모델과 새로운 전기차 플랫폼이 전시됐다.

KG 토레스 EVX  사진 KG모빌리티

올해 하반기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는 토레스의 전동화 모델인 토레스 EVX는 수평형으로 디자인된 LED 주간주행등으로 내연기관 모델과의 차별화를 꾀한 것이 특징이다. 실내도 디지털 계기판과 센터 디스플레이가 연결된 파노라마 듀얼 디스플레이와 플로팅 타입의 센터콘솔을 적용했으며, 배터리는 리튬인산철 배터리가 탑재된다.

KG모빌리티 O100 콘셉트  사진 KG모빌리티
KG모빌리티 F100  사진 KG모빌리티
KG모빌리티 KR10

토레스 EVX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전기 픽업트럭 모델인 O100은 도시와 아웃도어를 아우르는 고객을 위해 실용성을 강조했으며, F100은 렉스턴 전동화 모델이라는 수식어답게 정통 SUV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미래적인 이미지를 가미한 디자인이 눈에 띈다. 특히 전면부의 키네틱라이팅 블록 콘셉트는 향후 디지털 제스처 프런트 디자인을 통해 KG 모빌리티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또한, KG 모빌리티는 2026년까지 새로운 EV 플랫폼을 개발해 적용할 것이라 전했다. 행사장에 전시된 EV 플랫폼은 전륜과 후륜에 모터가 탑재되고 중앙에 배터리가 탑재된 스케이트보드 형태로, 주행 환경에 따라 전륜과 후륜구동의 전환을 선택할 수 있으며, 부품의 개수를 최적화해 프렁크를 구성할 수 있도록 공간 효율까지 신경 쓰는 등 다양한 신기술을 도입해 플랫폼을 개발할 예정이다. 과연 쌍용차의 유지를 이어받은 KG모빌리티는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어떤 성과를 보여주게 될까.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