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인의 평화찾기]'정상적인' 한·일관계란 무엇인가

서승 동아시아평화연구소장·우석대 석좌교수 2019. 4. 28.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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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한·일관계가 비정상이고 최악이라고 한다. 국교정상화 이래 한·일관계는 계속 풍파를 겪어왔으나, 작년 가을부터 극도로 악화되었다.

최근 크게 부각된 쟁점은 ‘징용공’(강제동원 노동자) 문제다. 작년 10월30일, 한국 대법원이 일본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의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금 지불을 명령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일본 총리와 외무대신은 한일조약과 청구권협정으로 이미 해결된 문제를 재삼 들고나왔다며 크게 반발했다. 일제의 강제동원 문제는 제기된 지 오래다. 근로정신대 피해자와 유족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해 2018년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고, 신일철주금(구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도 같은 해 최종 승소했다. 이에 앞서 신일철주금은 2012년 주총에서 한국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통해 화해하려고 했고, 이전부터 일본 전범기업의 불리했던 상황에 영향받은 독일은 2000년 연방정부와 6000개의 전범기업들이 총 101억마르크의 절반씩을 부담하여 나치에 의한 강제노동에 대한 배상을 위해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란 이름의 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2007년까지 100여개국 7700만 강제노동자들에게 배상했다. 하지만 아베 정부는 한국의 근로정신대 피해자인 원고와 화해하려는 일본 기업에 제동을 걸었다. “버릇이 되어 다른 기업들에도 악영향을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렇게 아베가 문제를 꼬이게 만들었고, 이후 대법원 판결로 ‘최악의 한·일관계’에 이른 것이다.

다음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2017년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12·28 한·일 합의’에 의해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의 해산 문제다. 이 문제도 박근혜가 무책임하게 국회 비준도 없고, 문서 공개도 없이 이면 합의까지 더하여 구두로 합의를 발표한 것이다. 국제적 비난을 면하기 위해 아베는 이 합의를 이용했으니 작년 11월21일 한국 정부의 화해·치유재단 해산 발표에 크게 반발했다. 속임수로 상대로부터 받은 증서를 가지고 모질게 빚 독촉을 하는 아베의 행동은 정의의 집행인인 양 행세하는 악독한 고리대금업자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게다가 웃기는 것은 작년 12월20일 한국 구축함이 일본 자위대기에 레이더를 조사(照射)했다고 하여 일본이 난리를 떤 일이다. 누가 먼저냐는 진실공방은 차치하고, 레이더를 쏘았다는 게 대단한 문제라고? 독도 근해에서 북한의 표류선에 대한 구조활동을 하던 한국 해군함정에 일본 초계기가 위협적으로 근접 비행한 것은 외교 범절에도 벗어나고 ‘평화헌법’을 가진 전후의 일본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행동이다. 일본의 군사적인 존재감을 과시하려 하는 도발로밖에 볼 수 없다. 그런데 이 사건들에서 기인한 일본에서의 ‘한국 때리기’ ‘혐한’ 풍조는 절정에 올랐다.

이런 상태를 두고 “한·일관계가 비정상”이라면서 국내 일부 정치인과 관료, 학자들은 한국도 잘못을 뉘우치고 한·일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한·일관계는 정상이었는데, 한국의 잘못으로 비정상화가 되었는가? 정작 ‘도대체 정상적인 한국과 일본의 관계라는 것은 무엇일까?’란 물음에 대한 답은 별로 본 적이 없다. 일단 이론적으로는 정상적 국가관계란 독립된 주권국가로서 대등한 외교관계를 맺고 교류함을 말하는데, 각 나라가 독립적이고 자주적이어야 한다.

한·일관계는 일본과 한국이 미군 지배하에서 외교주권을 가지지 못한 시기에 식민지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청산도 없이 어물쩡 시작되었다. 그런데 한국은 애초부터 분단으로 인해 강제적으로 미국 지배권에 편입되어 동서냉전의 한 축이 되었고, 한국과 일본은 모두 ‘반공’ 우방국의 틀에 묶였다. 미국은 베트남전쟁 수행의 필요성 때문에 1965년 한일조약으로 ‘국교정상화’를 양국에 강요했다. 1960~1970년대 한국에는 일본에서 생산한 전자제품 등이 쏟아져 들어왔고 거리에는 기생관광을 온 일본인들이 활보했다. 한국인들의 인식 속에서 일제(일본 제품)가 일제(일본 제국주의)를 압도하고 회자되었다. 거시적으로 보면 미국의 동아시아 지배구도 속에서 한국은 일본의 하위에 자리하면서 ‘대공산주의 방파제’의 구실에 안주했다. 그리고 ‘한강의 기적’ 속에서 목숨을 마멸시키는 장시간 저임금의 고한(苦汗) 노동으로 원색적인 욕망들만이 요동치는 야만의 시대를 겪었다. 일제에 충성을 맹세한 일본군 출신의 독재자의 나라에서 일본은 대접을 받고 돈벌이도 실컷 하면서도 기술적 우위를 무기로 한국을 계도하는 교만을 즐기는 시대가 ‘정상적인 한·일관계’의 시대였던 셈이다.

그런데 중국과 한국의 경제적 도약은 일본의 ‘아시아 넘버 원’ 자리를 위태롭게 했다. 여기에 한국의 민주화, 특히 촛불집회로 탄생한 문재인 정권이 평화와 통일의 눈부신 아이콘이 되고, 그래서 과거 일본의 지배를 받던 조선이 국제적으로 각광을 받자, 일본 극우세력들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시기와 질투, 증오심을 느끼며 극단적인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일본을 상전으로 모시는 한·일관계로 결코 되돌아갈 수도 없고, 되돌아가서도 안된다. 민주적 주권국가인 한국 그리고 새로운 남북의 ‘평화시대’에 걸맞은 한·일관계를 열어나가야 할 것이다.

서승 동아시아평화연구소장·우석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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