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 갈 길이 먼 이륜차 문화 가운데 주차 문제는 가장 일상에서 쉽게 부딪히는 부분이다. 시정돼야 할 부분도 많고 인식의 변화도 필요하겠지만, 그전에 최소한의 라이더가 누릴 권리를 찾아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애매하기만 했던 이륜차 주차 문제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는 기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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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라면 주차장 앞에서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한 마디. 바이크보다 몇 배나 더 큰 자동차는 주차공간이 보장되면서 막상 바이크로 주차장을 들어가려면 차단봉은 올라갈 기미가 안 보인다. 물론 과거보다 조금씩 인식의 변화가 생기면서 전용 주차구 획선은 아니지만 적당한 공간에 불편을 주지 않을 정도로 눈치껏 세우도록 허용해주는 대형 마트나 백화점도 있고, 지역 구청에서 작게나마 전용 주차 구역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아직도 바이크 주차를 거부하는 비중이 훨씬 높으며 전용 주차구역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만 하다. 이런 문제로 심심치 않게 차단봉 앞에서 관리자와 언성을 높이거나 구청에 민원을 넣는 등 일이 커지기도 한다. 점차 늘어나는 라이더와 이륜차 문화를 위해서라도 더욱 정확한 법률적 정의와 이해, 시스템 개편 그리고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정의(Definition)를 통한 정의(Justice)
바이크가 주차장에 주차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는 바이크의 ‘정의’부터 확실히 해야 한다. 바이크 즉 이륜차는 주차장법 제2조 5항에 따르면 “자동차”란 「도로교통법」 제2조 제18호에 따른 자동차 및 같은 법 제2조제19호에 따른 원동기장치자전거를 말한다. 쉽게 말해 모든 이륜차(125cc 이하 포함)는 자동차에 속한다는 의미다. 물론 자동차라는 정의는 도로 교통법이나 자동차 관리법처럼 각기 다른 카테고리에서 조금씩 다르게 분류되기도 하지만, 우리가 지금 살펴봐야 할 것은 ‘주차장법’과 관련된 사안이기 때문에 주차장 법에서 정의하는 내용을 따르면 된다. 이륜차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았다면 다음으로는 주차장에 대한 정의 또한 짚어 봐야 한다. 주차장 법 제2조 1항에 따르면 “주차장”이란 자동차의 주차를 위한 시설로서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종류의 것을 말한다. 라고 명시돼있다. 너무 당연해 보이지만 주차장은 자동차 주차를 위한 시설 다. 이 정의를 앞서 이야기한 이륜차의 정의와 함께 묶어본다면 답은 간단하다. 주차장은 자동차의 주차를 위한 시설물이고, 륜차는 자동차에 속하기 때문에 이륜차는 떳떳하게 주차장에 주 차를 할 수 있다. 이렇게만 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간단 해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법률적 정의다. 현실적으로는 이러한 조항과 관계없이 이륜차와 사륜차를 구분 짓는 인식과 애매한 기준 덕분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라이더들은 계속해서 생겨난다.



현실적인 문제
위에서 확인했듯이 법률적 정의와 근거에 의하면 이륜차를 주차장에 세우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왜 주차를 거부당하는 것일까? 이를 위해서 현실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들을 살펴봐야 한다. 현재 이륜차가 주차장에서 거부 받는 원인은 크게 3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번째로는 인식과 법률에 대한 이해 부족이 크다. 상용 바이크의 이미지가 강한 국내 정서상, 바이크 를 차와 동일하게 여기지 않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가뜩이나 비좁은 주차장에 바이크를 세운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또한 도로교통법에 속한 이륜차에 관련한 법률적 정의를 대다수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편협한 인식을 기준으로 바이크를 제지한다.
두 번째로는 배상과 관련한 문제가 있다. 주차장에 바이크를 주차하더라도 구획선 안에 주차시키는 것이 아니라 남는 공간에 세우게 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주차장 내부에서 발생하는 도난, 사고 등과 같은 문제 발생 시 주차장이 가입한 보험사로부터 보험금을 받지 못한다. 즉 주차장 내에서 바이크와 관련된 문제로 발생한 금액은 전부 주차장 측에서 부담해야 된다. 따라서 주차장은 바이크를 받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는 이러한 사태를 규합하지 못하는 애매한 법률이다. 이륜차를 자동차로 정의하고 주차장에 주차를 할 수 있다는 내용만 있을 뿐, 현실적으로 이륜차 주차공간을 따로 구획해야 한다거나 문제 발생 시 보다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명확하고 자세한 지침이 없다. 한 예로 서울시 주차관리 조례에 있는 주차 거부에 대한 항목을 보면 “1. 자동차의 구조상 주차가 불가능하거나 곤란한 경우” 라는 내용이 있다. 주차장 입장에서는 ‘이륜차의 구조상 전용 주차구 획선이 없으니 주차가 불가능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애매한 기준이다.



또한 현행 주차장법 등에 따르면 민영주차장을 주차장 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지 않아 민영주차장의 경우에도 동일한 규정이 적용될 것으로 보이지만, 민영 주차장의 관리자가 도난을 염려하여 이륜차의 주차를 거부하는 것은 사업자 경영의 자유에 해당될 여지가 있어 논란이 될 수 있다. 특히, 주차장법 시행령 별표 1에 따르면, 대형마트 등의 부설주차장에서는 승용차 외의 자동차를 주차할 경우 승용차 외의 자동차 주차가 가능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규정만 있을 뿐, 사업자에게 이륜차의 주차구역을 별도로 설치할 것을 강제하고 있지는 않다. 이러한 점에서 이륜차의 주차난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주차장법 시행령 별표1 등에 일정 규모 이상의 주차장에서는 이륜차 주차구역 설치를 의무화하는 등의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해결의 실마리
주차장에서 거부를 당하면 당연히 인도나, 불특정한 공간에 바이크를 주차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엄연히 도로교통법 위반이 되며 범칙금을 부과하는 경우도 생긴다. 또한 통행하는 사람들에게 불편을 초래하고 아끼는 바이크는 위험에 노출된다. 물론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 모든 지역 곳곳에 이륜차 전용 주차 시설을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상권이 발달해있거나 유동인구가 많은 곳, 대형마트나 백화점 같은 장소는 시설 마련이 시급하다. 서울시에서는 몇 년 전부터 이러한 상황에 대한 방안으로 상용 바이크들의 왕래가 많은 지역부터 이륜차 전용 주차 구역을 시범적으로 설치했다. 대표적으로 중구 남대문 시장 주변, 종로 동대문 시장, 영등포구 당산역 앞 주변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용 주차장은 대체로 상용 바이크들이 이용할 뿐, 일반적인 라이더들에게는 크게 해당되지 않는다.
서울시 주차계획과는 이륜차의 특성상 목적지에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하려는 라이더의 성향 때문에 개선된 방안이나 추가적인 설치 계획을 내놓기 어렵다는 입장을 전했다. 물론 같은 라이더로서 공감이 가는 동시에 창피한 대목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바이크라도 최대한 지정된 공간에 주차할 수 있는 인식이 라이더에게도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인식이 성숙해져야만 일반적인 시민들의 관점에서도 바이크라는 이동 수단이 더 이상 위험천만한 제멋대로 기계가 아닌, 엄연한 자동차의 기준에 부합하는 건강한 이동 수단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글 김기범 자문 법무법인 신원 박정헌 변호사 취재협조 서울시 주차계획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