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가' 강민 "높아진 게임위상, 지금 태어나 스무살이면 싶을때도"[응답하라! 스타크]

1990년대 전세계 게이머들을 열광시키며 PC방 좀비를 양산했던 스타크래프트를 기억하시나요? '응답하라! 스타크'는 전설의 프로게이머들의 근황을 인터뷰로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스타크래프트와 함께했던 추억을 공유하겠습니다.<편집자주>
[스포츠서울 박준범기자] 상상도 못할 전략을 펼친다고 해서 붙은 별명 '몽상가'. 강민은 과거 박용욱, 박정석과 함께 스타크래프트 '3대 프로토스'로 맹위를 떨친 전설 중 한 명이다. 프로토스 유저로는 최초로 양대리그 우승컵을 거머쥐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고 수비형 프로토스 전략의 토대를 만들어 기발한 전략으로 팬들을 전율케 한 장본인이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는 이제는 여엿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면서도 해설위원, 개인방송 BJ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스타크래프트는 내 인생의 전부"라고 말하는 그는 여전히 스타크래프트와 함께였다.
-예전엔 '프로게이머'라는 직업 자체가 없던 시절도 있었다. 프로게이머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재밌어서 하게 됐을 거다. 프로게이머를 생각하고 시작한 게 아니라 하다 보니까 너무 재밌고, 재밌으니까 며칠씩 밤을 새우고, 그러다 자연스럽게 고수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사실은 초창기에 많이 하다가 집안 사정 때문에 관뒀던 적이 있다. 그때 쉬다가 임요환, 홍진호의 결승전을 보며 다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게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한 계기다.
-스타크래프트에는 세 가지 종족이 있다. 테란도 저그도 아닌 '프로토스'를 선택한 이유가 따로 있나.
프로토스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프로토스를 하게 되면 파일론을 짓고, 그 주위에 건물을 짓게 되는데 파일론이 예뻐 보였다. 또 프로토스를 할 때 나는 외계인 소리가 마음에 들어서 하게 됐다. 그렇게 계속하다 보니, 프로토스가 나에게 맞는 종족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강민하면 '광(光)민', '몽상가' 등 별명이 많다. 가장 마음에 들거나 특별히 애착 가는 별명이 있을 것 같다.
가장 많이 알려진 건 엄재경 해설위원이 말한 '몽상가'인데, 지금 생각하면 '광민'이 됐던 '광렐루야' '궁물토스'가 됐던 다 정겹다. 팬분들이 가끔 '몽상가'가 아닌 '몽정가'라고 재미삼아 불러주시는데 그것조차도 듣기 좋다(웃음). 옛날에 들었던 얘기들이다 보니 정겨운 것 같다.
-'몽상가'라는 별명답게 차별화된, 기발한 전략으로 상대는 물론, 팬들을 놀라게 했다.
남들과 차별화된 플레이로 이기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 플레이를 할 때 이길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상대 선수들이 연습하고 나와도 대회 때 나오면 처음 보는 전략이었기 때문에 장점이었던 것 같다.
-강민만의 차별화된 전략으로 수비형 프로토스, 더블 넥서스 전략의 선구자로 불린다. 하지만 '선구자'라는 게 위험도 있고 어려운 길이다. 처음 시도하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나.
그런 생각은 전혀 안 했다. 저만의 이기는 방식이 다른 선수들과 달랐던 거다. 사고방식이 다르다 보니 기존에 없는 독특한 플레이를 했다. 당시에 많은 사람이 저그를 상대로 '투 게이트'가 정석이라고 할 때, 저는 '원 게이트 플레이나 더블 넥서스가 정석이 될 거다'라고 일찍이 깨우쳤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존 플레이 스타일이 저와 맞지 않았다.
-그런 독특한 전략을 위해선 연구와 생각에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자나 깨나 연구했다. 맵이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플레이를 해야 장점이 있는지. 그리고 최대한 들어오는 경로를 좁혀서 편하게 막을 수 있는 심시티 연구도 많이 했다. 그러다 생각이 나면 바로 실험해보고 그런 것들이 습관이 됐던 것 같다.
-선수 시절, 셀 수 없이 많은 경기를 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나 아쉬움이 짙게 남는 경기가 있나.
기억에 남는 경우는 두 번의 우승이고, 아쉬운 건 역시 두 번의 준우승이다. 조금 더 욕심을 내서 '한 번 더 결승을 가야했는데'라는 막연한 아쉬움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MSL '명경기 100선' 1위에도 오른 2004년 이병민(테란)과의 대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기기 위해서 연습을 했기 때문에 그런 빌드가 나온 것이다. '이길 수 있는 확률이 최소한 90% 이상이 될 수 있는 빌드가 뭐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상대가 1%라도 예상하지 못하는 전략이 필요했다. 연습을 엄청나게 많이 했다. 그 경기를 준비하면서 1주일 넘게 밤을 새웠을 정도다. 빌드를 계속해서 수정하고 다듬는 과정이 10번도 넘었던 것 같다.
-그렇게 꾸준히 좋은 활약을 펼치다 2008년, 돌연 해설위원을 시작한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가.
은퇴를 공식적으로 발표한 건 아니다. 해설위원은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였다. 나이는 들고 실력은 저하되는 과정이었다. 하고 싶은 게 없었으면 팀에 남아서 뭐라도 했을 텐데. 프로게이머 시작할 때부터 해설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코치 제안도 있었지만, 해설이 더 하고 싶었기 때문에 결정하게 됐다.
-게임을 하는 것과 그걸 또 말로 전달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인데 어렵지는 않았나.
처음엔 당연히 어려웠다. 갑자기 방송을 해야하는 입장이니까 쉽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하고 싶었던 일이었기에 재밌었고 즐거웠다. 그래서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영광의 시기도 잠시, 2012년에 여러 가지 이유로 스타 리그가 폐지됐다. 예전 스타크래프트의 시대를 이끌었던 장본인으로서 마음이 좋지 않았을 것 같다.
(잠시 생각한 뒤) 사실 리그가 없어지는 상황에서는 아쉽고 착잡하기도 했다. 저처럼 프로게이머를 어렸을 때부터 한 사람들한테는 인생의 대부분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당시엔 아쉽고 그랬다.
-그럼에도 리그가 계속해서 열리고 있고, 예전 스타크래프트를 그리워하고 향수를 느끼는 분들이 아직도 많다. 많은 분이 여전히 스타크래프트를 떠올리는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나.
예전의 추억이 많이 담겨 있는 게임이라서 아직도 많은 사랑을 받는 것 같다. 아무래도 추억을 공유했다는 측면이 큰 것 같다.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함께 공유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가끔 어린 친구들을 만나면 '아버지도 강민 선수를 좋아해서 같이 봤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팬들에게는 그 시절이 좋은 추억인 거고,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는 그때를 기억해주는 팬들이 있었다는 게 좋은 추억인 것 같다. 그런 추억이 없었다면, 금방 잊히고 사라졌을 거다.
-여전한 팬들 때문인지, 블리자드가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버전을 발표했다. 또 ASL에서는 본선에 오른 이윤열이 '핵'을 선보이며 팬들을 설레게 했다. 보면서 참여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나.
(이)윤열이는 예전에도 워낙 대단한 선수였는데, 지금도 아재들한테 이렇게 한 번씩 자극을 준다. ASL에 대해선 지금 제가 '무조건 나가겠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윤열이를 보며) 참여 생각을 해보게 되는 거 같다.
-현재 유튜브, 아프리카 TV 등 개인방송을 하고 있다. 프로게이머의 삶과 지금의 삶을 비교해보면 어떤가.
일과 관련된 것만 봤을 땐 프로게이머 시절이 치열했지만 좋았던 것 같다. 승리 아니면 패배밖에 없었던 시절이지만 지금도 생각나는 걸 보면. 현역시절에 배고프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성과를 올렸을 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짜릿한 쾌감이 있었다. 전쟁터에 있는 기분이었지만, 그때가 어떻게 보면 잘 어울렸다는 생각이 든다.
일과 관련된 걸 빼면 지금은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예쁜 딸이 있어서 지금이 훨씬 좋다. 그때가 좋은 것도 있고, 지금이 좋은 것도 있다. 가족이 소중하니까 가족만 놓고 보면 지금이 더 좋다.
-'행복'이라는 단어와 더 가까운 건 어느 쪽인가.
행복의 기준이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예전에도 하고 싶었던 일을 했던 거라서 불행하다고 느낀 적은 없다. 게임을 하고 싶었고, 하고 싶은 게임을 해서 행복했다. 지금의 행복은 가족이 있고 딸이 있으니 그때와는 다른 것 같다. 해설도 하고 싶었던 일이었는데, 어떻게 생각해보면 지금이 나을 수도 있겠다(웃음)
-이야기를 듣다 보니 '몽상가'라는 별명처럼 계속해서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바라봐 주시는 분들도 있는데,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한 건 없는데 시간만 훌쩍 지나간 것 같고, 나이만 먹은 것 같아서 애매할 때가 많다. 더 잘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도 있고. 주변에서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이뤄내지 않았나', '잘하고 있다'라는 얘기를 하지만, 스스로는 사실 꿈을 이루면서 사는 건지 잘 모르겠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아시안게임에서 하나의 종목으로 채택될 만큼 '게임'이라는 장르가 많이 격상됐다. 예전과 비교해보면 어떤 거 같나.
(임)요환이형을 비롯한 여러 선수들이 함께 만든 거라 생각한다. 그중에 제가 있다고 얘기해주면 감사한 일이다. 옛날과 비교하면 인식도 많이 달라졌고, 다른 종목 선수들도 빛을 볼 수 있는 시대다. 지금 태어나서 스무 살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인기 있는 게임들은 예전보다 훨씬 즐기는 유저가 많으니까 좋을 텐데.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는 생각도 든다(웃음)
-마지막으로 강민에게 스타크래프트란 어떤 의미인가?
인생의 전부였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뭔가를 꾸준하게 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는데 유일하게 스타크래프트만 끈덕지게 해서 20년째 하고 있다. 스타크래프트를 통해 사람을 만나왔고, 인생에서 가장 많은 추억이 생겼고, 지금 아내와 딸을 만난 것과 다름이 없다. 제 인생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일이 스타크래프트로 인해 생성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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