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슨의 길' 따르는 그들은 이방인 아닌 도전자
[경향신문] ㆍ차별과 편견 넘어 전설이 된 선수들

『매년 4월15일(현지시간) 메이저리그에선 ‘재키 로빈슨 데이’ 행사가 열린다. 미국 스포츠 전체에 인종차별의 벽을 허무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재키 로빈슨을 기리는 행사다.
모든 선수들이 이날만큼은 42번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선다. 42번은 로빈슨의 등번호로, 메이저리그 전 구단 영구결번이다.
로빈슨은 주위의 조롱과 차별에 정면으로 맞서 이겨낸 진정한 ‘챌린저’(도전자)였다. 로빈슨이 닦아놓은 길로 또 다른 도전자가 나왔다. 』

■ 피부색 - 메이저리그 재키 로빈슨
인종차별 정면으로 맞서…흑인 첫 MVP
불과 70여년 전만 하더라도 미국에서 흑인들은 화장실까지도 ‘흑인 전용’ 딱지가 붙은 곳만 써야 할 만큼 극심한 차별을 받았다.
로빈슨이 등장한 시기도 이때였다. 야구, 농구, 육상 등 여러 종목에서 두각을 드러낸 로빈슨은 군 제대 후 니그로리그 캔자스시티 모낙스에서 뛰다가 브루클린 다저스 단장 브랜치 리키의 눈에 띄었다. 리키 단장은 과거 선수로 데리고 있던 명예의전당 멤버 조지 시슬러에게 실력 있는 흑인 선수를 찾아봐달라고 부탁했는데, 시슬러가 점찍은 선수가 바로 로빈슨이었다.
리키는 로빈슨에게 일부러 시비를 거는 등 인내심을 시험하면서 메이저리그에 오르면 겪게 될 수많은 난관들에 대해 일러줬다. 로빈슨은 리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문제를 일으키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얘기는 모두가 다 알고 있다. 로빈슨은 1947년 처음 제정된 메이저리그 신인상 첫 수상자가 됐다. 1949년에는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MVP가 됐다. 은퇴 후 당뇨병으로 고생하다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이후 윌리 메이스, 어니 뱅크스, 프랭크 로빈슨 같은 흑인 선수들이 로빈슨의 길을 따라 메이저리그를 주름잡았다.

■ 선입관 - 미국프로농구 더크 노비츠키
유럽 출신 장신 편견 깨고 NBA 최고 슈터로
1998년 미국프로농구(NBA) 밀워키 벅스는 독일에서 온 213㎝의 장신 더크 노비츠키를 신인 드래프트 전체 9순위로 지명했다. 이후 트레이드로 노비츠키를 댈러스 매버릭스로 보냈다. 이는 밀워키에는 최대 실수였고, 댈러스에는 최고의 횡재가 됐다.
노비츠키는 핸드볼 선수였던 아버지, 농구 선수였던 어머니 유전자를 물려받아 독일 농구계를 평정하고 NBA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러나 노비츠키를 향한 미국인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노비츠키는 213㎝의 장신이었지만, 움직임은 슈터에 가까웠다. 당시만 하더라도 장신 선수가 외곽에서 움직이는 것은 흔한 장면이 아니었다. 미국인들은 노비츠키에게 ‘슛만 좋은 엉성한 유럽 선수’라고 조롱을 보냈다.
노비츠키는 NBA 2년차였던 1999~2000시즌 댈러스 구단주로 온 마크 큐반과 만나면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장신을 이용한 타점 높은 고감도 슛을 자신의 최대 무기로 만들었다. 노비츠키는 2006~2007시즌 역대 8명밖에 없는 ‘180클럽’(야투율 50%·3점슛 40%·자유투 성공률 90%)에 가입했는데, 이를 달성한 선수 중 신장이 210㎝를 넘는 선수는 노비츠키와 케빈 듀랜트뿐이다. 노비츠키는 NBA 최초 유럽 출신 MVP이자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오지 않은 순수 외국인 첫 MVP가 됐다.

■ 신체조건 - 복싱 매니 파키아오
‘작은 체구 동양인’ 한계 극복 8체급 석권
166㎝의 작은 키는 복싱 선수에게 불리함으로 작용한다. 키가 작으면 리치(팔을 뻗은 길이)도 짧기 마련이다. 매니 파키아오(필리핀)는 열정으로 단점을 극복했다.
파키아오는 6남매를 부양하느라 고생하는 어머니를 위해 14세 때 길거리 노점상을 했다. 마약에도 손을 댔다. 복싱을 접한 것은 이때다. 파키아오에게 복싱은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1998년 플라이급 챔피언에 오른 파키아오는 더 큰 도전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작은 체구의 동양인은 주목받지 못했다. 파키아오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마지막 한 곳을 찾아갔는데, 바로 파키아오 복싱 인생 최고의 조력자인 프레디 로치가 운영하는 체육관이었다. 파키아오에게서 알 수 없는 잠재력을 봤다는 로치는 체계적인 훈련법을 적용하며 파키아오의 기량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파키아오는 전설이 됐다. 웰터급까지 무려 8체급을 석권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동양에서 온 이방인에게 보낸 차가운 시선은, 2008년 12월 ‘골든보이’ 오스카 델 라 호야와의 대전에서 파키아오가 압승을 거두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 복싱계는 물론 조국 필리핀의 영웅이 돼 있다.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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