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시승] 화끈한 네모, 기아 쏘울 부스터



호탕하다. 아기자기했던 네모 자동차 쏘울이 과감하게 표정을 바꿨다. 심장부터 다르다. 이전보다 72마력을 더한 204마력 엔진으로 답답함 없이 내달린다. 네 개 렌즈로 가늘게 노려보는 인상처럼 쏘울 부스터는 화끈한 네모가 되어 돌아왔다.

글 윤지수 기자, 사진 이병주, 윤지수 기자



감정을 덜다

어릴 적 봤던 <로보캅>이 떠올랐다. 붉은 일자 눈 아래 무표정이었던 영화 속 로봇 경찰 로보캅. 수평으로 이은 헤드램프와 네모난 안개등이 붙은 쏘울 부스터도 마찬가지다. 감정이 줄었다. 무표정을 지으니 한층 기계적이고 미래적인 분위기다.

위쪽이 헤드램프, 아래쪽은 방향지시등과 안개등이다


실루엣은 이전과 같다. 길이 55㎜, 높이 15㎜, 휠베이스 30㎜를 늘렸지만 비율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수직에 가깝게 세운 트렁크와 각지게 꺾인 A-필러(앞 유리창 옆 기둥)를 유지해 박스카 정체성을 지킨다. 단지 비행기 꼬리를 닮은 유리창 뒤쪽 모양과 음각을 더한 펜더 정도가 다르다.



뒤쪽은 과감히 손봤다. 세로형 테일램프를 천장까지 네모나게 둘렀다. 다만 양옆만 조명이 들어가, 디자인 포인트가 눈에 띄지 않는 점은 아쉽다. 천장까지 모두 빛났다면 ‘꽃게 다리’ 같다는 소리는 듣지 않았을 텐데. 범퍼 가운데 아래엔 고성능을 암시하는 두 개의 배기구가 들어간다.



기분만큼은 SUV

시트는 낮지 않고 앞 유리창은 곧추섰다. 시야 아래는 네모난 보닛이 든든하게 채운다. 마치 SUV에 앉은 기분이 드는 이유다. 1세대부터 이어온 쏘울만의 매력 포인트는 여전하다.

8인치 헤드업디스플레이가 들어간다
10.25인치 모니터는 공간을 3개로 나누어 쓸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대형 모니터. 대각선 길이 10.25인치로 현대 팰리세이드와 맞먹는 크기다. 내비게이션 지도만 화면 가득 채워 볼 수 있고 3개 구역으로 나눠서 볼 수도 있다. 다만, 큰 건 좋은데 위치가 송풍구 아래여서 주행 중 시선 이동이 짧진 않다. 기아차도 이를 알았는지 8인치 헤드업디스플레이를 따로 장만했다.

무선충전부터 통풍, 열선까지 편의장치는 풍부하다
크렐 사운드 시스템이 들어간다

소재는 평범하다. 차급을 인정하듯 플라스틱 소재가 널리 쓰였다. 시승차는 괜히 실내 아랫부분을 갈색으로 칠해 저렴한 소재가 더 적나라했다. 대신 편의사양이 아쉬움을 달랜다. 열선, 통풍, 무선 충전은 물론, 한 번에 2대 기기를 연결할 수 있는 블루투스 기능을 넣었다. 음악에 맞춰 조명이 바뀌는 사운드 무드 램프도 특징이다.

364L 트렁크 공간. 바닥 공간을 2단으로 나누어 쓸 수 있다
2열 시트를 접은 모습. 트렁크 열리는 면적을 이전보다 키웠다

네모난 스타일 강점은 공간이다. 네모난 공간을 바탕으로 공간 활용성이 무척 좋다. 시트를 모두 폈을 때 공간은 이전보다 10L 늘어난 364L(유럽 VDA 기준)에 머물지만, 2열 시트를 접으면 작은 가구 하나쯤 넣을 수 있는 네모반듯한 공간이 펼쳐진다. 큰 물건을 쉽게 넣기 위해 트렁크 열리는 면적도 이전보다 25㎜ 늘었다.

변속 레버 왼편에 스타트 버튼이 있다

터보 쏘울

운전대 뒤를 만지작거리다, 변속 레버 옆에서 스타트버튼을 찾았다. 시동 후 진동과 소음은 매우 적은 편. 운전대를 잡고 집중하지 않으면 진동을 느끼기 어렵다. 시간이 흐른 나중까지 장담할 순 없으나, 공장에서 막 나온 신차 상태 공회전 정숙성은 흠잡을 데 없다.



예상외로 승차감은 단단하다. 네 바퀴가 노면 정보를 솔직하게 전달한다. 특히 뒤 서스펜션이 팽팽하다. 성인 남자 넷이 탄 상황에서도 마치 혼자 탄 차처럼 과속방지턱에서 힘없이 눌리지 않았다. 다른 동급 세단이 꾹꾹 눌려가며 달린다면, 쏘울은 툭툭 치면서 달린달까.

최고출력 204마력 1.6L 가솔린 터보 엔진

서스펜션 조율이 성능에 치우친 이유는 바로 엔진. 공차중량 1,375kg에 불과한 덩치에 최고출력 204마력, 최대토크 27㎏·m 1.6L 터보 엔진이 들어간다. 가속은 역시 가뿐하다. 1,500rpm부터 4,500rpm까지 최대토크를 끌어내, 저속에서 고속까지 고르게 가속을 이어간다. 속도계 바늘은 시속 100km를 거침없이 지나 3시 방향까지도 무난하게 오르내렸다.

가속감도 좋다. 7단 듀얼클러치가 치솟는 엔진 회전을 절도 있게 잘라낸다. 더욱이 운전대 뒤 패들시프트가 달려 마음껏 변속을 주무를 수 있다. 그러나 주행모드에 따른 차이는 다소 미미하다. 주행모드 ‘노멀’에서 ‘스포츠’로 바꿔도 둔감한 기자는 운전대가 무거워지는지, 가속 페달이 예민해지는지, 또는 저단 기어를 더 오래 무는지 그 차이가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렇게 고속으로 달리는데 운전대 잡은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다. 시속 100km까진 안정적이었는데, 그 이상을 달리니 운전대가 가볍고 차는 좌우로 흔들린다. 고속에서 만난 너울에서도 자세를 추스르는 시간이 짧지 않다. 무게 중심이 높고 휠베이스가 짧은 탓일까? 네모난 공간과 함께 세단처럼 안정적인 주행을 바란 건 처음부터 욕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서스펜션 구성은 앞 스트럿, 뒤 커플드 토션빔 액슬이다.

인상적인 점은 방음이다. 18인치 큼직한 휠을 신었음에도 바닥 소음과 엔진 소리가 중형 세단 못지않게 멀리서 들려온다. 실내 바닥과 엔진 격벽에 흡·차음재를 꼼꼼히 둘렀다더니 괜한 소리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위쪽 풍절음은 적은 편이 아니다.

네모난 차체 덕분에 널찍한 뒷좌석

뒷좌석도 잠깐 앉아봤다. 역시나 네모난 창문과 높은 천장 덕분에 개방감이 좋다. 공간도 수치상으로나 느낌상으로나 스포티지보다 넉넉하다. 승차감은 앞에서 느꼈던 대로 뒤 서스펜션이 다소 팽팽하게 느껴진다.



두 가지 재미

첨단 운전자 보조 기능(ADAS)은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과 차로 이탈 방지 보조 기능을 함께 켜면 잠깐이나마 반자율주행이 가능하다. 기술이 제법 무르익은 만큼, 넓게 도는 코너 정도는 알아서 돌아갈 정도로 안정적으로 작동한다.

공인 연비는 18인치 휠 기준 L당 12.2km. 자연흡기 1.6L 엔진을 얹던 이전세대(10.8km/L, 18인치 휠)보다 높은 수치다. 실제 주행에서도 정속 주행 때는 이보다 높은 효율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터보 엔진답게 가속 페달을 맘껏 밟으면 평균 연비가 L당 6km대까지 뚝뚝 떨어지기도 한다.



쏘울 부스터는 이제 두 가지 재미를 품는다. 과거 쏘울이 개성 강한 박스카였다면, 신형 쏘울은 빠르고 개성 강한 박스카다. 최고출력 204마력은 다른 차에선 ‘GT’나 ‘스포츠’를 붙일 만큼 충분한 힘. 1세대부터 이어온 개성 역시 더더욱 짙다. 가격은 1,914만~2,346만 원. 평범한 파워트레인 선택지를 지운 고성능 쏘울이 저조한 국내 시장 인기를 넘어설 수 있을까? 기아차는 연간 2만대를 국내 판매 목표로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