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수소충전소 만들려면 철도법까지 바꿔야 한다

전수용 기자 2019. 2. 13.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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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샌드박스' 승인됐지만.. 건별 승인 등 산 넘어 산

작년 10월 프랑스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파리 도심 에펠탑에서 1㎞ 정도 떨어진 알마광장에 있는 수소충전소를 찾아 수소택시 운전자가 직접 연료를 충전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수소경제'를 선언한 우리 정부가 지난 11일 서울 시내에 4개의 수소충전소를 설치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이렇게 설립될 수소충전소에서는 '셀프 충전' 광경을 볼 수 없다. 정부가 신기술이 적용된 제품이나 서비스에 규제를 면제·유예해 주는 제도인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도심 수소충전소를 허용하긴 했지만, 이는 엄연히 임시 조치일 뿐 규제는 여전히 실타래처럼 얽혀 있기 때문이다. 수소차 확산을 위해 2022년 301개소, 2040년 1200개소로 충전소를 늘리겠다는 정부의 목표 달성도 건별 승인 방식인 규제 샌드박스로는 불가능하다. 법령 개정 등 실질적인 후속 조치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보여주기식, 반쪽짜리 규제 개혁에 끝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도심에 수소충전소 세우려니… 국토법, 교육법, 철도법 등 겹겹 규제

서울 도심에 수소충전소를 지으려면 부지 선정에서부터 각종 규제에 부닥치게 된다. 상업지역이나 준주거지역, 1종 일반거주지역에는 애초 설치가 불가능하다. 50m 이내에 유치원이나 학교가 있어도 안 된다. 200m 내에는 지방자치단체 심의를 받아야 한다. 철도 시설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산업부는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도심 입지를 허용했지만 충전소 운영 과정에 적용되는 규제는 그대로다. 충전소 운영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셀프 충전 서비스가 필요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수소차 운전자가 직접 충전하는 것은 충전소에 고용된 사람만 충전할 수 있도록 한 고압가스안전관리법상 불법이다. 안전 관리 책임자가 충전소에 상주해야 하는 규제도 있다.

규제 샌드박스는 개별 기업과 특정 상품, 서비스에 국한된다. 관련 규제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 한 충전소 사업자는 매번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하고, 건건이 승인을 받아야 한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은 "규제 샌드박스는 한시적으로 시범 사업을 허가해 준 것에 불과하다"며 "경제 활성화나 신산업 육성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규제 자체를 없애는 연계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규제 샌드박스 승인 심사 과정, 부처 입장 따라 이견도

생명윤리법 관련 고시는 병원이 아닌 비(非)의료기관이 직접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유전자 검사 항목으로 혈당, 혈압, 탈모 등 12가지만 규정하고 있다. 나열된 항목 이외를 하려면 복지부 고시를 그때마다 바꿔야 하는데 쉽지 않다. 그래서 국내 유전자 검사 업체는 고객에게 한정된 서비스밖에 제공할 수 없었다. 산업부는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검사 항목 13가지를 추가해 규제를 과감히 풀었다고 했지만, 특정 지역(인천경제자유구역)에 거주하는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실증 작업을 거친 뒤 다시 검토해보자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외국에서 허용된 사업에 대해 기간과 적용 범위, 검증 조건까지 붙여 놓은 것은 또 다른 규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심의 과정 부처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것도 한계로 꼽힌다. 유전체 검사 항목을 어디까지 확대할지를 두고 '질병과 유전체 검사 간 인과관계가 검증되지 않았다'는 복지부와 '일단 풀어주고 지켜보자'는 산업부 간에 이견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규제 샌드박스, 대상·승인 대폭 늘려야"

기술과 아이디어가 급변하는 상황에 분기 한 차례 정도 심의회를 열어 3~4개씩 규제를 완화해 혁신적 제품·서비스가 시장에 얼마나 나올지도 의문이다. 규제 샌드박스는 신청 첫날만 19건이 몰렸지만, 승인을 받은 사업은 4건에 불과하다. 버스 외부에 동영상 광고를 할 수 있게 한 특례 허용처럼 미국·영국·아일랜드·홍콩 등 해외에서 이미 상용화된 사업을 심의하는 데 한 달 넘게 걸렸다. 정영석 대한상의 규제혁신팀장은 "샌드박스 승인 대상을 확대하고, 건수도 대폭 늘려 기업에 실질적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임시 조치가 끝난 이후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있도록 관련 법률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위로부터 전면적인 규제 혁파가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규제 샌드박스가 미흡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한 걸음이라도 떼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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