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관승의 리더의 여행가방] (26) 우리는 모두 돈키호테

손관승·언론사 CEO출신 저술가 2019. 1. 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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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 영웅 돈키호테는 400년 뒤 디지털 시대에 영원히 살아있다

1955년 돈키호테 제1권 출간 350주년 기념해 프랑스 문예주간지 표지 그림으로 그린 피카소의 작품 ‘돈키호테’./사진=위키피디아

북위 40도는 뜨거운 창조의 공간인가. 18세기 후반 조선의 연암 박지원이 북경으로 가는 길 신의주와 압록강을 건너 요동반도에서 뜨거운 문체로 ‘열하일기’를 남긴 것은 북위 40도였다. 비슷한 시기 로마로 향했던 괴테도 북위 40도에서 ‘이탈리아 기행’을 쓰고 있었다.

마드리드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작가 세르반테스는 바로 그 북위 40도에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을 창조해냈다. 돈키호테다.

여기 한 장의 전설적인 그림이 있다. 뜨거운 태양에 달아오른 건조한 라만차 대평원 위를 걷는 ‘돈키호테’, 흰색 배경에 잉크만을 사용해 흑백으로 단순화한 피카소의 드로잉이다. 피카소는 초기의 청색시대와 이어지는 장미 빛 시대, 그리고 큐비즘 양식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로 자기 모국 스페인의 영웅을 그려냈다.

"나는 대상을 그릴 때, 눈으로 본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머리 속으로 생각하는 대로 그린다."

평소의 예술관처럼 피카소는 이 그림에서도 주인공 돈키호테를 삐쩍 마르고 볼품없지만 애마인 로시난테에 올라탄 모습으로 매우 크게, 그를 따르는 부하 산초 판사는 화면 왼쪽에서 중간 크기로 그를 올려다 보고 있다.

스페인의 뜨거운 태양은 크게, 반면에 거대한 풍차는 매우 작게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 그림은 피카소가 1955년 8월 세르반테스의 명작 ‘돈키호테’ 제 1권 출간 35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 문예 주간지의 요청을 받고 표지화로 그린 것이다.

돈키호테만큼 예술가들에게 사랑 받는 캐릭터가 또 있을까? 동상으로, 조각으로, 인형으로, 뮤지컬로, 영화로, 그림으로, 엽서 속에서 ‘불가능한 꿈’(the impossible dream)을 꾸는 존재로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으니까.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한복판에 있는 넓은 에스파냐 광장은 이 도시를 찾는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찾는 방문 1번지다. 그 옆에 왕궁이 있고, 주축도로인 그란비아가 시작되는 이곳에 돈키호테와 그를 창조해낸 작가 세르반테스의 동상이 기다리고 있다.

마드리드 에스파냐 광장에 있는 세르반테스 기념비. 그가 앉아있는 앞에 말을 타고 창을 든 돈키호테와 그 뒤에는 노새를 탄 부하 산초 판사의 조각이 서있다./사진=손관승

돈키호테 제 2부 발간 300주년과 작가 미구엘 데 세르반테스 사망 300주년을 기념해 1915년과 1916년에 만들어진 거대한 동상 프로젝트다. 세르반테스는 의자에 앉아 자신이 창조한 돈키호테가 로시난테를 올라타고 있는 모습과 노새를 탄 산초 판사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시간에 여유가 있고 조금 더 적극적인 사람들은 라만차 대평원을 도는 ‘돈키호테의 길’(ruta de don quijote. 영어로는 The Don Quixote trail) 약 1천km의 코스를 따라간다. 마음속 수호성인인 가공의 인물과 함께 작품의 배경을 따라 가는 순례 방식이다.

사람들은 왜 젊지도 않고 미친 중년의 남자 돈키호테에 열광하는가? 거대한 풍차 앞으로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모습 속에서 비록 차가운 현실 속에 살고 있지만 숨겨둔 자기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싶은 것이다.

세르반테스가 불후의 명작 돈키호테를 쓴 것은 1603년, 머리카락이 회색으로 변한 만 56세의 나이였다. 그리고 책으로 세상에 나온 것은 1605년, 환갑직전인 만 58세의 나이였다. 그는 이 책을 평화로운 서재가 아닌 열악한 감옥에서 썼다.

평생 불운이 떠나지 않았던 이 작가는 아무 죄도 짓지 않았지만 무고하게 감방에 갇혀야만 하였다. 그를 행복하게 해줄 유일한 길은 글을 쓰는 것뿐이었다.

그 이전까지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젊고 잘생긴 청년이었다. 그런데 세르반테스가 창조해낸 주인공은 늙고 초췌하였으며 게다가 비현실적이고 은퇴한데다 머리까지 이상한 이달고(hidalgo: 시골 귀족)였다. 영락없이 세르반테스 자기자신의 복사판이었다.

"이 세상에 전례 없었던 기괴한 망상에 사로잡힌 늙은이는 그가 책에서 읽은 무용담을 실천에 옮기고자 갑옷을 입고 마을을 떠나 출정 길에 나서게 되었다."

작가 세르반테스는 세상의 어떤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보다 더 극적인 일생을 살았다. 떠돌이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스페인 방방곡곡을 떠돌아다녀야 했으며, 로마 바티칸에서 비서로서 생활을 하다가 군인으로 참전하였다. 오스만 터키와 스페인을 필두로 한 기독교 함대가 일대 격전을 치렀던 역사적인 레판토 해전에 참가했지만 얻은 것은 부상과 평생 왼손을 제대로 못쓰는 불구의 처지였다.

1605년 세르반테스 나이 58세에 출간한 돈키호테. 근대소설의 효시로 평가 받는다./ 사진=위키피디아

그게 불행의 전부는 아니었다. 돌아오는 길에 이슬람 해적에 납치되어 알제리에서 노예생활을 해야했다. 그는 여러 번 탈출을 시도했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본국에서 가족들로부터 건네진 거액의 합의금으로 간신히 귀국했지만 그 이후 생활도 처연함 그 자체였다.

돈키호테를 쓰던 당시 감방에 투옥된 것도 세금 징수원으로 일하던 도중 세금을 맡긴 은행의 직원이 거액을 갖고 줄행랑을 치는 바람에 공모혐의로 투옥되었다. 소설은 처음부터 먹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점심에는 쇠고기보다 양고기를 더 많이 넣은 음식이 고급 요리였다. 저녁에는 대부분 낮에 먹다 남은 고기에 양파 등을 잘게 썰어 넣은 샐러드, 토요일에는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에 달걀을 넣어 버무린 것, 금요일에는 렌즈콩, 일요일에는 작은 비둘기 요리를 곁들여 먹는데, 그것만으로도 수입의 4분의 3이 사라졌다."

그는 실제로 본적도 없는 처녀 둘시네아를 죽도록 동경한다. 돈키호테는 빵에 굶주렸을 뿐 아니라 사랑에 굶주렸고 세상에 대한 정복에 굶주렸으며, 삶에 굶주리고 자유에 굶주린 자의 이야기다.

그가 살던 당시 스페인은 종교재판이 최고조에 달할 때였다. 돈키호테 탄생을 전후로 310년 동안 종교재판의 이름으로 스페인에서는 모두 3만 2천명이 화형에 처해졌고, 1만 7천명이 교수형을 당했으며 29만 1천명이 투옥되었다. 그런 연유로 돈키호테 작품 안에는 수많은 알레고리와 풍자, 메타포, 비밀스런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

"산초, 자유란 하늘이 우리 인간에게 준 가장 값진 재산 중의 하나다. 우리는 하늘이 내려 준 빵 한 조각을 하늘 이외에 어느 누구에게도 감사할 필요없이 떳떳하게 먹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야."

[미니정보] 돈키호테의 내용과 한국소개과정

1616년 4월 22일 새벽 미구엘 세르반테스가 숨을 거뒀을 때 임종의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일생을 통해 그래왔던 것처럼 마지막 순간에도 그는 혼자였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 바로 다음 날 영국의 셰익스피어도 숨졌다.

마드리드 에스파냐 광장에 있는 세르반테스의 조각./사진=손관승

셰익스피어가 영국이 자랑이고 근대 영어의 근간을 만들었듯이, 세르반테스 역시 스페인의 자랑이고 근대 스페인어의 토대가 되었다.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 괴테가 죽기 1년 전 불후의 명작 ‘파우스트’를 완성하였던 것처럼, 세르반테스도 사망 1년 전에 돈키호테 2부작을 완결하였다. 우연치고는 대단한 우연이다.

그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큰 수입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글을 써서 먹고 사는 것은 힘든 일이다.

스페인의 거의 모든 도시나 마을, 그리고 거리나 광장에 그의 이름을 붙여 기념하고 있지만 그는 사실 스페인에서 오랫동안 잊혀진 인물이었다. 그가 어디서 출생을 했는지, 심지어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세르반테스는 자신이 창조해낸 인물 돈키호테를 통해 영원히 살아있다. 2부 말미에 세르반테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돈키호테는 나를 위해 태어났고 나도 그를 위해 태어났소. 그는 행동을 하고 나는 기록을 하는 것이오... 그리하여 우리 둘은 하나인 것이오. 안녕히!"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은 언제나 돈키호테 취급을 받았다. 현실감각 없는 허무맹랑한 존재로 비춰졌던 돈키호테는 디지털 시대, 스타트업의 영웅으로 다시 태어났다.

"Stay hungry, Stay foolish"(새로운 것에 지속적으로 배고픔을 느끼고, 우직하게 살자)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남긴 명연설도 따지고 보면 돈키호테 정신에 다름 아니다. 돈키호테는 아무리 힘들어도 좌절하지 않고 도전하는 리더들에게 바치는 응원가인 것이다. 돈키호테는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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