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있어요"..묵묵히 꿈 키우는 '변방의 해외파들' 황문기 박정빈 김기희[신년특집]

박효실 2019. 1. 7.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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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아카데미카의 황문기. 출처|아카데미카 홈페이지

[스포츠서울 김대령기자] 19명. 이번 2019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명단 발표를 앞두고 지난 1년간 국가대표팀에 한 번이라도 소집됐던 유럽파, 혹은 전직 유럽파의 숫자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23명의 선수 중 설기현과 안정환만이 유럽에서 뛰던 선수였던 것을 돌이켜보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주말 밤이면 축구팬들은 유럽 무대를 누비는 한국 선수들의 경기를 시청하기 위해 TV 앞으로 모여든다.

여러 선수의 경기가 동시에 열리다보니 모든 경기를 챙겨보기 힘들 정도다.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면 그 이야기는 다음 날까지 소비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쌍방향 소통 역시 활발해져 선수의 일상 등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화제가 된다. ‘차세대 빅리거’ 역시 각광을 받는다. 국내를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유망주로 꼽히는 발렌시아의 이강인, 바이에른 뮌헨의 정우영 등은 이미 스타덤에 올랐다. 지로나의 백승호도 최근 1군 공식 경기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며 힘찬 비상에 앞서 예열을 하고 있다.

같은 시간 스타 선수들에게 쏟아지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의 뒤편에서 묵묵히 꿈을 키워가고 있는 해외파들도 있다. 축구계에서 조금은 변두리로 여겨지는 곳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변방의 해외파’들이 바로 이들이다. 국내 무대에서 외면 받아서, 유럽 빅리거의 꿈을 이루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위해, 혹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등 각양각색의 이유로 해외 무대에 발을 디딘 이 선수들은 의지할 곳 없는 타지에서 조용히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들에게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야 하는 ‘새해’는 더 특별할 수밖에 없다.

◇ 황문기, 혈혈단신으로 입성한 포르투갈에서 ‘어느덧 4년차’
4년째 포르투갈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 선수가 있다. 울산 현대 산하 18세 이하(U-18) 팀인 현대고등학교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중원을 누볐던 황문기(22)는 지난 2015년 포르투갈로 건너가 1부리그 아카데미카에 입단했다. 각급 청소년 대표팀을 거쳤지만 프로 무대 경험은 없었던 그는 B팀 소속으로 진행된 약 6개월간의 입단 테스트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2015~2016시즌을 앞두고 바로 프로 계약을 체결했다.

데뷔 시즌 주전 경쟁은 쉽지 않았다. 시즌 말미에야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그러나 팀의 강등이 전화위복이 됐다. 2016~2017시즌을 2부리그에서 시작한 아카데미카는 강등으로 생긴 전력 누수를 메우기 위해 황문기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하기 시작했다. 황문기도 1년간 갈고닦은 기량을 선보이며 플레잉타임을 늘려나갔다. 그 결과 지난 시즌까지 두 시즌 간 리그 36경기에 출전했고 프로 데뷔골도 터뜨렸다.

김동현, 김병석, 이형상, 석현준 등이 활약한 바 있는 포르투갈은 독일, 스페인 등과 함께 어린 국내 선수들의 유럽 도전 무대로 각광받는 나라 중 하나다. 하지만 2부 리그까지 통틀어도 아직 1군에서 자리 잡은 선수는 많지 않다. 황문기는 자신의 능력으로 입지를 구축하며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거듭났다.

덴마크 비보르의 박정빈(왼쪽). 출처|비보르 홈페이지
◇ 부상 시련 이겨낸 박정빈, 다시 날개 달까
손흥민이 독일 함부르크SV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하던 2010년. 또 다른 한 명의 한국 선수가 독일 볼프스부르크 입단 소식을 전하며 한국 축구 팬들을 설레게 했다. 박정빈(24)이다. 전남 드래곤즈 유소년 팀과 각급 청소년 대표팀을 오가며 뛰어난 활약을 펼쳐 이미 유소년 축구계에선 ‘라이징 스타’로 이름을 날리던 그는 2010년 9월 볼프스부르크와 유소년 계약을 체결하며 독일 무대에 발을 디뎠다.

적응은 순조로웠다. 차근차근 한 계단씩 올라선 박정빈은 2013년 1월 퓌르트로 임대됐고 이어진 바이에른 뮌헨과의 리그 경기에서 바로 1군 데뷔전을 치렀다. 손흥민에 이어 최연소 분데스리가 데뷔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그러나 이후의 행보는 순탄치 않았다. 2부리그 칼스루에와 3년 계약을 체결했으나 주전 경쟁을 이겨내지 못했고 잔부상도 이어졌다. 결국 2015년 여름 덴마크로 적을 옮겼다.

덴마크 1부리그 호브로에 입단해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1군 주전 생활을 경험한 박정빈은 팀의 강등에도 경쟁력을 인정받아 비보르로 이적해 최상위 리그에 잔류했다. 그리고 비보르에서의 두 번째 시즌에 데뷔 후 가장 큰 위기가 찾아왔다. 시즌 개막 직후 십자인대가 파열되면서 시즌을 통째로 날리게 된 것. 앞선 시즌 강등의 쓴맛을 본 비보르의 승격을 위해 잔류를 택한 그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피나는 재활 끝에 다시 축구화 끈을 동여매고 그라운드에 선 박정빈은 더 무섭게 뛰기 시작했다. 비보르도 단독 1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채 겨울 휴식기에 돌입했다. 여기엔 리그 12경기에 출전한 박정빈의 기여도도 컸다. 큰 부상을 딛고 일어선 박정빈이 팀에 우승 트로피를 안길 수 있을까. 우승팀과 승격팀을 가를 후반기는 3월에 시작한다.

미국 시애틀 사운더스의 김기희. 출처|시애틀 사운더스 홈페이지
◇ 유럽도, 아시아도 아닌 ‘제3의 땅’ 미국서 명예회복 노리는 김기희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MLS)는 “미국에서 축구를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평가를 깨고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여전히 유럽에 비하면 축구 변방으로 평가받지만 상업적인 측면에선 이미 유럽의 빅 리그 못지않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김기희(29)는 이곳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앞선 두 선수와 달리 김기희는 태극마크를 달고 이미 전 국민적으로 이름 세 글자를 각인시켰던 스타 선수다. 황문기나 박정빈이 차근차근 유럽에서 꿈을 다지고 있는 선수라면 김기희는 절치부심해 명예회복을 노리고 있는 선수다.

김기희는 상하이 뤼디 선화에 몸담고 있던 2017년 위기를 맞았다. 시즌을 앞두고 중국 슈퍼리그 외국인 선수 출전 규정이 갑작스럽게 축소되며 아시아 쿼터 신분으로 팀에 입단한 선수들은 출전 기회가 대폭 줄었다. 김기희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아시아 쿼터로 출전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다. 리그 15경기 출전에 그친 채 시즌을 마쳤다. 팀에서 입지가 흔들리자 대표팀과도 멀어졌다. 상하이에서 미래가 없다고 판단한 김기희는 빠르게 새 팀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K리그 복귀나 J리그 이적을 예상했으나 그가 선택한 곳은 미국이었다. 초반엔 쉽지 않았다. 능력을 입증해야 할 시즌 초반 부상을 당하면서 4월 말에서야 첫 선발 출전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컨디션이 올라오니 주전 자리는 자연스레 따라왔다. 시즌이 끝날 때까지 수차례 라운드 베스트 11에 선정되기도 했다. 시애틀 사운더스는 지난 11월 일찌감치 “내년에도 김기희와 함께한다”고 발표하며 기량을 인정했다. 소속팀에서 안정을 찾은 김기희가 아직 되찾지 못한 것이 있다. 바로 태극마크다. 그의 눈은 아시안컵 이후 새롭게 재편될 벤투호를 향하고 있다.
김대령기자 daeryeo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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