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쓰레기 [만화로 본 세상]
ㆍ흉악범·성범죄자를 벌하는 ‘복수의 쾌감’
권선징악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세상이라면 이런 복수극이 무의미할 수도 있겠다. 그런 완벽한 제도가 가능하리라 기대도 하지 않는다.

강남의 한 클럽 앞에서 시작된 폭행사건은 마약유통, 성폭행, 경찰 유착 비리, 불법촬영과 유통으로 하루가 다르게 범죄의 크기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정말 어디서부터 문제인지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사건의 경과를 보면서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그들에겐 어째서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지 의아했다. 특히 사건에 연루된 이들 중에는 방송에 나와 대중에게 친근하게 접근했던 다수의 남자 연예인과 아이돌 가수도 포함되어 있어 더욱 배신감이 크기도 했다.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사건의 중심에 있기에 대중의 관심이 많고, 덕분에 조금은 더 철저하고 공정하게 조사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하지만 마약 양성반응에도 불구하고 용의자인 클럽 대표의 구속영장은 기각되고, 과거 동일인물의 불법촬영물 수사에서 경찰 측이 증거인멸을 시도했던 정황도 밝혀졌다. 이런 뉴스를 읽고는 이 시스템에서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기란 힘들지 않을까에 대해 의심되기 시작했다. 화가 났다.
비슷한 고민을 하게 했던 만화 한 편과 그 만화에 대해 예전에 썼던 글이 떠올랐다. 와타나베 다이스케의 〈선악의 쓰레기〉라는 만화를 읽고 나는 복수가 마련해 주지 않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했었다. 당시 이 만화의 복수서사가 통쾌한 지점은 있지만, 피해자를 부각하고 복수의 방식이 지나치게 잔혹하며 분노하기 위해 사건을 만들어내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 생각이 변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그 ‘복수의 쾌감’에 조금 더 공감해 보고 싶다.
만화 〈선악의 쓰레기〉는 복수를 대행해주는 청부업자들을 중심으로 한 옴니버스 형식을 취하고 있다. 주로 여성 피해자들이 흉악범죄와 성범죄 가해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해당 복수대행업자를 이용하는 내용이다. 이 대행업자들은 건장한 남성 두 명으로 나름의 이유가 있어 이런 일을 하게 되었다는 설정이다. 범죄의 피해자는 사회적 약자로, 가해자와 이것을 응징하는 역할은 남성이라는 점에서 〈선악의 쓰레기〉의 한계는 뚜렷해 보인다. 이런 불만은 있지만, 복수의 카타르시스는 유효하다.
한 번은 이 만화를 읽은 지인과 짧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분은 성폭력 문제를 상담하고 피해자에게 도움을 주는 분야에서 일하던 분이라 생각이 더욱 궁금했다. 여기에 나온 방식과 표현이 거북하지 않았을지 물었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다르게 그분은
〈선악의 쓰레기〉의 복수가 너무 통쾌하다고 했다. 당시 나는 놀랐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피해자의 목소리와 마음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듣기에 그 감정에 더 공감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나만 멀리서 이성만 가지고 판단을 했다. 현행 제도에서 성범죄의 처벌 범위와 수위, 그리고 수사과정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안다면 이런 사적 복수에 열광할 수 있겠다고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런 방식조차 간절한 이들이 실제로 얼마나 많을까.
권선징악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세상이라면 이런 복수극이 무의미할 수도 있겠다. 그런 완벽한 제도가 가능하리라 기대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경찰이 범죄자의 편에 서고 주변의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지금의 사회는 너무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다. 이럴 때, 대중문화를 통해 잠시 복수의 쾌감에 젖는 것을 누가 탓할 수 있을까. 팽개쳤던 만화를 다시 폈다.
황순욱 초영세 만화플랫폼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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