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퀴' '화이트워싱'..K팝, '인종주의' 덫을 놓았나 덫에 걸렸나
[경향신문]

#장면 1. “화장 했을 땐 러시아 엘프 같았는데 화장 지우니 그냥 태국 여자네.” 지난 1월 국내 포털사이트에 게재된 그룹 블랙핑크의 멤버 리사의 기사 사진에 이 같은 익명의 댓글이 달렸다. ‘베스트 댓글’에 오른 이 댓글은 곧바로 태국을 포함한 동남아시아 K팝 팬들에게 번역돼 알려졌다. 태국 방송과 해외 K팝 유튜브 채널 등은 이 댓글을 소개하며 리사가 태국인이라는 이유로 한국에서 인종차별 피해를 겪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고, 분노한 해외 팬덤은 트위터에서 “#리사를 존중하라(#RespectLisa)”는 해시태그 운동을 펼쳤다. 이후 E뉴스 등 해외 언론들은 앞서 그룹 미쓰에이의 중국인 멤버 페이, 영국인 가수 샤넌 등의 피해 사례를 언급하며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 연예인이 겪는 인종차별에 대해 새롭게 조명했다.
#장면 2. 방탄소년단 팬 문모씨(24)의 취미는 트위터로 다른 팬들이 올린 방탄소년단 관련 게시물을 훑어보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 눈살이 찌푸려진다. 국내 팬들이 방탄소년단의 사진을 하얗고 밝게 보정한 것을 두고 해외 팬들이 ‘화이트워싱(White Washing)을 하지말라’는 댓글을 남기거나, 되레 멤버들의 얼굴을 실물보다 노랗게 보이게 보정한 뒤 “이것이 아시아인의 피부색”이라고 말하는 것을 목격할 때다. ‘화이트워싱’이란 해외 팬들이 K팝 아이돌의 피부를 원래보다 밝게 보정하는 다수의 국내 팬들을 인종주의적이라며 비판할 때 쓰는 용어다. 어째서 황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인하고 백인의 피부색을 좇느냐는 비판이다. 문씨는 “해외 팬들은 전통적으로 밝고 결점 없는 피부를 선호하는 한국의 사회·문화적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들의 기준으로 인종차별을 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종주의’라는 암초를 만나다
K팝의 세계 시장 진출이 나날이 활발해지면서 K팝 팬덤뿐만 아니라 아이돌 멤버의 구성원 역시 ‘세계화’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데뷔한 아이돌 26팀(유닛 포함)을 대상으로 살펴본 결과 40%에 달하는 10팀이 외국인 멤버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K팝 소비 문화를 둘러싼 인종·국적·문화적 갈등이 점차 빈번해지고 있다. 인종적 다양성에 익숙하지 못한 한국 대중과 인종주의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해외 팬덤이 만나 때때로 충돌을 빚는 것이다. 그 충돌의 양상 역시 단순히 ‘외국인 비하’로 요약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지고 있다.
이러한 충돌을 함축한 단어가 바로 ‘외퀴’다. ‘외국인’과 ‘바퀴벌레’를 합성한 이 단어는 국내 팬들이 해외 팬을 이르는 멸칭이다. 처음에는 아이돌·팬덤에 해악을 끼치는 극성 해외팬들을 꼬집는 말이었지만 점차 해외 팬 전체를 이르는 일반 명사로 변모했다. K팝 아이돌 그룹의 팬인 이민지씨(29·가명)에게 외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를 물으니 “공연 때마다 기획사가 마련한 해외팬 전용 좌석을 꿰차고 앉아 몰래 사진을 찍는 등 ‘비매너’로 일관하거나, 멀쩡한 사진 보정을 두고 화이트워싱이라며 문제 삼는 해외 팬들을 볼 때 화가 났다”고 말했다. 한편 같은 그룹을 좋아하는 김선화씨(28·가명)는 “요새 외퀴는 해외 팬들을 이르는 일반적인 용어가 돼서, 스스로를 ‘한퀴’라고 부르는 국내 팬들도 생겼다”면서 외퀴가 딱히 차별이나 혐오적 의도를 가진 표현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해외 팬들의 시각은 다르다. 자신들을 ‘외퀴’라 부르며 적대감을 갖는 국내 팬들이 생기는 이유는 이들이 ‘인종차별’ 이슈를 문제 삼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룹 방탄소년단의 팬인 인도네시아인 아나야(18·가명)는 “해외 팬들이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은, 화이트워싱이나 사생팬 등 한국 팬덤 문화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룹 NCT를 좋아하는 파키스탄인 레마(23) 역시 “아이돌 멤버나 팬덤이 인종차별적 행동을 했을 때 ‘한국 문화’라면서 감싸는 한국 팬들이 많다”면서 “K팝 걸그룹 멤버가 인도인을 모욕하는 춤을 췄을 때 한국 팬들이 그를 변호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많은 한국인들이 인종주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그렇다는 걸 알지만 변명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일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같은 국내외 팬덤 갈등이 인종주의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한 한국 사회 전체의 문제와 결부돼 있다고 지적한다. 아이돌 전문 웹진 아이돌로지의 미묘 편집장은 “최근까지도 자신이 조선족이나 다문화 출신임을 알리지 못한 아이돌이 있었고, 이국적 외모를 가진 연예인을 두고 ‘동남아스럽다’라는 표현이 통용됐을 정도로 우리 사회는 아직 인종 다양성에 대한 인권 감수성이 떨어진다”면서 “사진을 하얗게 보정하는 것은 화이트워싱이 아닌 극동아시아의 자연스러운 미적 선호라는 국내 팬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지만, 앞서 한국 사회의 인종주의적 문제를 경험한 해외 팬들로서는 우려할 수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물론 K팝의 세계화로 국내외 팬덤 모두 인종주의 이슈 대한 민감도가 최근 1~2년 새 급상승 한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방탄소년단의 팬덤 ‘아미’는 해외 팬들을 ‘외퀴’ 대신 ‘외랑둥이(해외 팬+사랑둥이)’로 부르며 이들의 활동에 감사를 표했고, 해외 팬들은 국내 팬들을 ‘K다이아몬드’라고 부르며 이들의 활동 방식을 배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국내외 팬덤이 인종적·문화적 편견 없이 화합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다양성 아이콘’ 된 K팝, 함정 피해가자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K팝 소비 문화에서 인종주의 이슈가 지금처럼 계속 돌출된다면 이는 K팝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최근 북미를 비롯한 세계 시장에서 방탄소년단 등 K팝 그룹이 ‘(인종적) 소수자가 이룬 쾌거’ ‘다양성의 아이콘’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미묘 편집장은 “실제로 K팝 그룹의 해외 공연장에 가보면 다수의 팬이 유색인종과 성소수자들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이 소수 인종에 차별적인 K팝 소비 문화의 일면을 본다면 K팝 전체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실제 그룹 세븐틴을 좋아하는 영국인 앙가라드 토마스(16)는 “세븐틴의 멤버 버논이 다문화 가정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다는 것을 듣고 가슴이 아팠다”면서 “K팝 팬덤에서도 이같은 인종차별 행위가 이어진다면 해외 팬들은 등을 돌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키스탄인 레마 역시 “K팝이 세계의 주류로 확대되려면 인종적·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민감도를 높여야만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낸 ‘2019 해외한류실태조사’에 따르면 K팝의 호감을 저해하는 요소에 대해 응답자의 7.6%가 ‘한국 가수·관계자의 부적절한 언행’, 6.2%가 ‘자국 사회, 도덕적 가치에 반하는 내용 포함’을 꼽았다. 일부의 해외 팬들은 이미 K팝에서 국가·인종·문화적 갈등에서 기인하는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K팝은 어떻게 ‘다양성 아이콘’으로서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을까? 김영대 음악평론가는 “아티스트의 평소 발언이나 태도, 뮤직비디오나 가사 등 음악 콘텐츠에서도 신경을 써야 될 부분이 많아졌다”고 말한다. 이는 사실 K팝이 산업적으로 세계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먼저 알고 시정해온 문제이기도 하다. 취재 결과 국내의 주요 아이돌 기획사들은 해외 공연에 임할 때마다 해당 국가의 문화적 금기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 등을 미리 수집해 정보를 공유하는 정도의 매뉴얼을 갖춘 것으로 확인됐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해외 공연 때마다 아이돌 멤버들에게 정치·사회·역사적 관점에서의 개인 의견 발언을 금하고 있고, 인종차별적·성차별적·장애인 비하로 비춰질 수 있는 발언 등에 대해 수시 교육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19일 첫 번째 미니 앨범 리패키지 <[X X]>를 발매한 그룹 이달의 소녀. 멤버 비비는 중국인이다. 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 제공.](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903/04/khan/20190304195058073lped.jpg)

단순히 ‘말실수를 조심하자’는 대응을 넘어서 음악 콘텐츠를 통해 인종적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생산자 입장에서 K팝이 포용할 수 있는 다양성의 한도를 넓히고자 한 것이다. 2017년 그룹 B.A.P는 일찌감치 6번째 싱글앨범의 타이틀곡 ‘웨이크 미 업(Wake Me Up)’의 뮤직비디오에서 흑인·황인·백인 등 다양한 인종 출연자가 한 데 어우러지는 장면을 연출한 바 있으며, 지난달 19일 컴백한 그룹 이달의 소녀의 미니1집 리패키지 활동곡 ‘버터플라이(Butterfly)’ 뮤직비디오에는 다양한 유색 인종 소녀들이 등장하는 가운데 히잡을 쓴 소녀가 맹렬히 달리는 모습이 담기기도 했다.
■한국인 없는 K팝? 산업은 벌써 앞서가고 있다
K팝을 소비하는 한국의 대중문화가 여전히 인종 다양성면에서 ‘지체 중’인 가운데 산업으로서의 K팝은 나름 약진을 해온 셈이다. 그러나 일부 K팝 산업 종사자들은 이미 더 먼 미래를 그리고 있다. K팝 확산에 걸림돌이 되는 국적과 인종의 문제를 아예 뛰어넘는 것이다. 현지의 인재와 ‘K팝 제작 노하우’를 결합해 제작한 아이돌로 현지 시장을 공략하는 ‘한국인 없는 K팝’에 대한 구상이다. 다양한 의상과 비주얼 요소, 메이크업, 뮤직비디오, 안무 등에 대한 종합 예술 솔루션으로서의 K팝만 남기고 한국이라는 국가적 정체성을 지워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현지화 아이돌’은 이미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1월 SM엔터테인먼트는 한국 국적인 멤버 없이 중국·태국인 등으로만 구성된 그룹 WayV(웨이션브이)를 선보였다. JYP엔터테인먼트 역시 일본 소니뮤직과 공동으로 진행하는 ‘니지 프로젝트’를 통해 오는 7월 전원 일본인으로 구성된 걸그룹 데뷔를 계획하고 있다. JYP는 지난해 중국인 6인으로 구성된 보이그룹 ‘보이스토리’를 중국 시장에 정식 데뷔시키기도 했다. 이들 그룹은 모두 K팝을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음악과 외양, 구성 등 모든 면에서 K팝의 요소를 갖추고 있다.
지난달 23일에는 아시아 7개국 출신 남녀 아이돌 그룹 Z-Girls(지걸즈)와 Z-Boys(지보이즈)가 서울 잠실올림픽경기장에서 데뷔 무대를 가졌다. 소규모 기획사 제니스미디어콘텐츠의 ‘지팝 드림 프로젝트(Z-POP Dream Project)’의 일환으로 나온 것이다. 제니스미디어콘텐츠의 강준 대표는 “K팝을 선망하는 아시아 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프로젝트”라면서 “각국에서 오디션을 거쳐 뽑은 멤버들을 한국식 트레이닝·프로듀싱을 통해 K팝 스타와 닮은 아티스트로 키워냈다”고 설명했다.


K팝은 이미 인종과 국가를 초월한 하나의 산업 ‘모델’로 변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K팝과 한국의 관계는 앞으로 발레와 러시아의 관계처럼 변해갈 것이다. 한국이 ‘종주국’이 되지만 K팝을 독점하지는 못할 것”(미묘), “이제 K팝은 국가에 종속된 산업이 아닌 일종의 ‘공식’이 됐다”(김영대)고 말한다. K팝은 이제 ‘한국에서 유래한 팝의 문법’을 의미하는 용어로 변모해 갈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이들 그룹 중 기존의 K팝 그룹만큼 성공을 거둔 이들은 없다. 그러나 미묘 편집장은 “K팝이라는 서브 컬처의 특성상 해외 팬들 사이서는 자국에서도 ‘K팝 스타’를 배출하고 싶다는 열망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앞으로는 ‘한국인 없는 K팝 그룹’ 중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사례가 하나둘 나올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영대 평론가 역시 “이러한 형태도 K팝의 한 모델로 자리잡을 것”이라면서 “K팝에서 이제 중요한 건 한국이 얼마나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느냐가 된다”고 분석했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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