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무형문화재를 찾아>깎고 다듬고 굽기 100번.. "365일 걸려 화살 하나 완성"


⑩ 박호준 궁시장 보유자
서해안 해풍맞은 1~3년생 靑竹
겉은 강하고 속물러 가장 적합
일직선으로 다듬는데도 며칠
15세부터 생계위해 부친 도와
지금은 아들까지 4대째 가업
“요즘엔 대량생산 화살만 써
공들여 만들어도 외면 당해”
궁시(弓矢)에서 궁(弓)은 활을 말하고 시(矢)는 화살을 말하는데 이 두 가지는 기교가 서로 다르다. 궁시장 중에서도 화살을 만드는 박호준 보유자는 조부 박희원 씨와 부친 박상준(1914~2001·전 보유자) 씨로부터 화살 만드는 법을 익혔다. 증조부는 조선 말기 무과에 합격한 무인이었으며, 조부도 지방의 궁수로 지내다가 화살을 제작하는 일을 가업으로 이어갔다. 또 부친은 17세에 가업을 이어받아 70년간 화살을 만들었고, 1978년 국가무형문화재 초대 궁시장으로 인정받았다.
박호준 보유자는 선대부터 이어져 온 화살 제작을 자연스럽게 접하며 2008년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화살을 하나 만드는 데는 1년의 시간과 100번 이상의 손길이 가야 합니다. 서해안에서 해풍을 맞고 자란 신우대(靑竹)로 제작해야 겉은 강하고 속이 물러 최상품이 됩니다. 화살에 사용하는 재료는 금속제 토리, 꿩깃, 도피(복숭아나무 껍질) 등이며 그 같은 재료들을 부레풀로 붙이죠. 수작업 과정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됩니다.”
인천 미추홀구 관교동에 있는 인천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에서 만난 박호준 보유자는 화살 만드는 방법에 대해 먼저 설명했다. 화살을 만드는 데는 무게와 직경이 일정한 살대를 골라 깎아 다듬고, 불에 구워 길이와 굵기를 일정하게 하는 ‘졸잡이’ 기술과 색상을 일정하게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대나무를 일직선으로 곧게 다듬는 데도 며칠이 걸린다.
도피로 오늬(화살을 활시위에 끼도록 에어 낸 부분)를 감싸 터지거나 습기가 엄습하는 것을 막고 살대의 끝에는 꿩깃을 달아 마무리 짓는데 이렇게 해야 원하는 방향으로 화살이 날아간다.
화살의 구조는 꽤 복잡하다. 각부 명칭만도 여러 가지다. 맨 앞의 촉부터 토리, 상사, 상사목띠를 지나, 화살의 몸통으로 부위가 나뉜다. 깃을 몸통과 연결하는 깃간띠에도 오늬와 마친가지로 도피를 씌우고, 깃이 매달린 깃간에는 이름을 쓰는 자리도 있다. 화살촉의 모양도 다양하다. 화살표 모양, 곤봉 모양, 표창 모양, 끝이 양쪽으로 벌어진 촉도 있다.
우리나라 전통화살에는 목전(木箭), 철전(鐵箭), 예전(禮箭), 편전(片箭), 유엽전(柳葉箭) 등 종류가 많다. 화살은 모두 같은데, 촉만 다르다.
박호준 보유자는 1944년 강원도에서 태어났다. 원래는 1941년생이다. 예전에는 유아사망률이 높아 출생신고를 늦게 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3세 무렵 인천 계양구 병방동(당시 병방리)으로 이사 오면서 지금까지 인천에서 살고 있다.
그는 15세 무렵 생계를 위해 부친의 일을 도왔다. 처음에는 하기 싫었다고 한다. 그러나 집안일이었기에 돕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여태껏 화살을 만든다.
박 보유자는 “재료를 구하는 일이 화살 만드는 것 못잖게 어렵다”고 했다.
“특히 신우대가 그래요. 1년생은 키만 큰 채 제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하며 말을 안 듣고 3년 이상 자란 것은 고집이 있어서 잘 움직이지 않죠. 신우대에서 철도 좀 들고 적당한 연령이 2년생입니다. 화살 재료로 최적합의 신우대죠.”
이렇게 공들여 화살을 만들어도 정작 찾는 이가 없다고 한다. 올림픽 종목인 양궁에 모든 관심이 쏠려 있기 때문이다. 박 보유자가 만든 화살을 소모품으로 사가는 사람은 없고 액자로 만들어 전시용이나 소장용으로만 구매한다. 이마저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국궁 동호인들도 대량생산한 화살을 씁니다. 장인이 만든 화살은 장식용으로 쓰일 뿐이죠. 다섯 촉을 액자에 표구해 350만 원 정도에 판매하는데 1년에 1∼2점을 파는 게 고작입니다.”
현대사회로 오면서 화살에 대한 수요가 없어져 전승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박 보유자는 꾸준히 화살을 제작하고 아들인 박주동(49), 박주봉(47) 이수자 형제까지 4대에 걸쳐 100여 년이 넘도록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예전에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대를 이어 한다는 자부심과 궁시장 기능보유자로서 명예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죠. 우리나라의 유구한 역사처럼 전통기술이 후대까지 잘 전수되기를 희망하며 무형문화재를 지켜나갈 수 있게 관련 정책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글·사진 =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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