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매좌석 13개, 관객은 1명?.. "여성영화 응원하고 싶어 몸 대신 영혼만 보냅니다"

이영빈 기자 2019. 5. 1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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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어벤져스 누른 걸캅스, 비결은 '영혼 보내기'?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걸캅스 '영혼 보내기' 인증 게시물. 예매 확인창 위에 "저는 못 보지만 제 영혼은 보냅니다"라고 쓰여 있다. / 인스타그램 캡처

지난 9일 개봉한 영화 '걸캅스'를 두고 '영혼 보내기' 논란이 일고 있다. '걸캅스'는 여자 형사들이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영혼 보내기'란 영화관이나 공연장에 가지 않고 예매만 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직접 보지는 못하지만, 지지하는 작품이 흥행하길 바라며 표를 사는 것이다. 지난해 말 영화 '미쓰백'에서도 '영혼 보내기'가 벌어진 적이 있다.

논란은 10~20대 남성이 주로 이용하는 'DC인사이드 국내 야구 갤러리'에서 점화됐다. 개봉 한 달 전, 이 사이트에 '걸캅스'의 내용을 예상한 게시물이 올라왔다. "여경들이 범죄자를 제압하고 뒤늦게 온 남자 경찰이 놀랄 것" "사건 덮자고 하는 경찰 고위 간부 무조건 등장한다" 같은 내용이었다. '걸캅스 시나리오 유출'이라는 제목으로 소셜미디어(SNS)에서 수십 차례 공유됐다. "영화 한 편 다 봤네"라며 이 게시물을 공유한 어느 20대 남성은 "반복되는 상업 영화 클리셰(상투적 표현)를 비꼬고 싶었다"고 했다.

이런 조롱에 여초(女超) 인터넷 카페 '여성시대' 등은 "'걸캅스'가 여성 중심 서사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있다"며 맞불을 놨다. 그리고 영화 개봉 후 '영혼 보내기'로 이어지며 산불로 번졌다. 영화관에 가지 않고 티켓만 3장을 샀다는 서모(여·24)씨는 "오랜만에 나온 여성 주인공만의 영화인데, 놀림 거리만 되고 상영 종료되면 앞으로 여성 중심 영화는 더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영화에 출연한 걸그룹 소녀시대 출신 배우 최수영(29)은 한 매체 인터뷰에서 '영혼 보내기'에 대해 "응원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 14일 아침 서울 대학가의 한 영화관을 찾았다. '영혼 보내기'는 저렴한 조조 영화 시간대에 더 많다고 한다.

'영혼 보내기' 기술은 두 종류다. 첫째는 예매하고 가지 않는 방법이다. 판매량에 집계되기 때문에 관객 수에 포함된다. 둘째는 예매하고 상영 직전에 취소하는 것이다. 관객 수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예매율은 올라간다.

오전 7시 10분 영화는 첫째 방법이 두드러졌다. 인터넷 예매 사이트로 확인한 예매 좌석은 13개였다. 그러나 영화관에는 1명만 앉아 있었다. 8시 20분 영화에는 두 번째 방법을 쓴 사람이 더 많아 보였다. 상영 30분 전 확인한 예매는 19석이었지만, 5분 전 3석으로 줄어들었다. 영화관 직원은 "평소에도 영화 예매 수보다 관객 수가 적다"고 했다.

이런 현상은 영화 '미쓰백'에서도 있었다. 한 여성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미쓰백을 위한 영혼 보내기 팁'이라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오랜만에 나온 여성 주인공의 영화를 응원해야 한다"며 방법을 전수했다. "조조나 심야 영화를 사면 할인받을 수 있다" "사람들이 잘 앉지 않는 앞 두세 번째 줄로 예매한다" 등이었다. '미쓰백'은 관객 72만명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한지민은 그해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영혼 보내기'에 대한 분석은 엇갈린다. 차우진 대중문화 평론가는 "'걸캅스'가 영혼 보내기로 흥행에 성공한다면 여성 주인공 영화가 더 많이 나올 수 있다. 장르가 다양해지는 결과를 낳는 셈"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영화를 만들 때 간섭받을 여지가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영화에 대한 평도 갈린다. 한 평론가는 "그동안 왜 라미란이 누군가의 엄마나 아내로만 나왔는지 충무로에 죄를 묻고 싶을 만큼 통쾌하다"고 한 반면, "성별 이분법적 구도로 캐릭터를 배치하고 범법과 막무가내식 수사로 일관하는 플롯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는 평도 있다.

지난 14일 '걸캅스'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누르고 일일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16일 누적 관객은 80만명을 돌파했다. CGV에 따르면 이 영화 예매자의 74.5%는 여성이고 20대가 45.7%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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